[Research Lounge_11] 질문에서 확신으로_리서치에 불빛을 비추는 가설
조사라는 일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왜 요즘 변화를 보이는 것일까?”
“이 변화는 진짜 현상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현상일까?”
리서처의 하루는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질문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세상은 너무 넓고, 데이터는 무한하다.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까지 파야 할지를 결정해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가설이다.
가설은 단순한 추측도 아니지만, 맞거나 틀리는 진리의 명제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한 줄의 ‘확신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설’이라는 단어를 마주치면 언제나 숨이 턱턱 막혔던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두 음절의 단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지. 가설이란 도대체 어떤 놈이고,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허공에 손을 내저어 보지만 잡히는 것이 없을 때의 막연함을 그때의 기억으로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지금이야 가설이란 과학적 탐구와 연구의 핵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가설의 구성요소가 되는 변수(변인)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가설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리서치 리포트를 건네받은 적이 있었다. 리포트를 좀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리서처가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리포트여서 따로 언급할 부분은 없었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만약 이 리포트를 가설을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구성했다면, 훨씬 클라이언트나 대중에게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더 잘 전달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평소에도 리서치 업무에 가설을 활용하는 것이 양질의 결과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도 높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리서치 업무에서 가설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방대한 현실을 하나의 탐색 경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 정보 없이 숲을 헤매는 대신, 나뭇잎의 방향과 바람의 냄새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가설이 없어도 조사는 원만하게 진행된다. 설문을 만들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 숫자와 그래프는 결과를 그려준다. 하지만 그 조사가 누군가의 판단을 돕거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단순한 통계로는 부족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해석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설을 세우지 않은 조사는 풍경 사진을 찍는 일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모든 걸 담지만 초점이 없다. 반면 가설이 있는 조사는 렌즈의 조리개를 한 번 더 조정해, 그 풍경의 빛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풍경을 담는다는 점에서 둘 다 사실을 기록하지는 하지만, 후자에는 의미의 깊이가 생긴다. 우리는 그 의미의 깊이를 흔히 통찰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가설은 통찰로 이어지는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가설이 리서치에 도움을 주는 세 가지 정도의 역할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선, 가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방향을 잡는 사고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리서치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을 때’이다. 이때 가설은 그 혼란을 줄인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의 무알코올 음료 소비는 건강보다 ‘자기통제 이미지’ 욕구에서 비롯된다.”라는 가설이 있다면, 리서처는 응답 속에서 자연히 ‘통제’라는 단어를 유심히 읽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니게 되면 조사결과를 해석하는 눈에도 힘이 생긴다.
두 번째 역할은 ‘팀의 사고를 한 축으로 응집’하는 것이다.
조사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 분석가, 클라이언트가 각기 다른 지도를 펼쳐놓고 각자의 빨간 색연필로 지도를 칠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이럴 때, 명확한 가설이 존재한다면 논의의 초점이 그 가설에 맞춰지게 된다. 관련자들의 모든 대화는 가설을 중심으로 돌고, 각자의 지도가 아닌 하나의 지도를 펴놓고 같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것처럼.
그때 비로소 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은 ‘같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설은 ‘리서치를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 초기 단계에서 “직장인들이 조용한 퇴사를 꿈꾸는 이유는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자율성 상실’ 때문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
이 한 문장으로 조사 설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질문지에는 ‘피로도’ 대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들어가고, 인터뷰에서는 일과 자율성에 관한 정서적 표현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들다’라는 평범한 데이터 뒤에 감춰진 조사 대상자가 지닌 감정의 결이 드러나게 된다.
그럼 한번 가상의 실제 사례를 떠올려보자.
한 식품회사가 ‘자기관리형 소비자’를 타깃으로 새로운 브랜드의 간편식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처음엔 단순히 인지도나 가격 문제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팀 내부에서는 ‘혹시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다르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래서 팀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리곤 아래와 같은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건강식’이 아니라 ‘하루를 달래는 위로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 진행되는 조사 설계도 이 가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실제 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하루가 끝난 후 이 제품을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를 묻자, 놀랍게도 ‘휴식’, ‘보상’, ‘자기 위로’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식품회사는 해당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건강’에서 ‘오늘을 마무리하는 부드러움’으로 선회했고,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공감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팀은 가설을 “현상을 해석하는 문학적인 도구”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위의 사례는 가상적인, 그리고 가설을 상당히 긍정적인 도구를 본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요즘 같은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리서처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가설의 긍정적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데이터 과잉의 시대에는, 오히려 ‘무엇을 믿어야 할지’가 더 모호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그래프가 의미 없이 쌓이는 가운데, 리서처가 지녀야 할 것은 분석 기술이 아니라 의도 있는 시선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가설은 바로 그 시선을 문장으로 바꾼 결과물인 것이다.
“20대 남성의 65%가 비대면 결제를 선호한다.”라는 조사결과는 물론 팩트로써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유는 여전히 숨겨져 있다.
이때 “그 선호는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관계 피로감 때문일 수 있다.”라는 한 줄의 가설이 등장하는 순간, 데이터는 해석력을 얻고, 리서치는 통찰이 된다.
가설은 데이터의 침묵을 깨는 첫 번째 언어인 셈이다.
이렇게 가설을 추앙하는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리서치 초보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물론 이런 질문은 석박사 논문지도를 할 때도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도 역시 연구의 초보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가설이 틀리면 실패 아닌가요?”
그러나 리서치에서 가설은 맞히지 못하면 아웃이 되는 게임의 언어가 아니다. 여기에 가설에 대한 많은 사람, 심지어 석사 과정을 마친 리서처도 하는 오해가 작동한다.
가설은 세울 때는 충분히 공부하고 심사숙고해서 ‘내가 공부하고 조사한 바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지만, 100% 진리라는 확신이 가설이 아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통계 검증을 통해 가설을 기각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대학원생들도 그리고 초보 리서처들도 그래서 궁금해한다.
“기각되는 가설은 쓸모없는 거 아닌가요? 제 조사나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증명이 되는 셈 아닌가요?”
가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 새로운 질문을 낳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기각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시 더 참에 가까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기각된 가설은 수용되는 가설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고, 배양토가 되어준다.
다시 말해 가설은 가능하면 틀리지 않게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가설이 맞든 틀리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탐색의 결과가 통찰을 낳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틀린’ 가설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로 향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자.
리서치의 세계는 냉철하다. 하지만 그 냉철함 속을 걸어가는 사람인 리서처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가설은 리서처의 감정이 다음과 같이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문장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서 리서치의 첫 불빛이 켜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가설은 정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
데이터가 모호해도, 응답이 엇갈려도, 가설이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확신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이 세상을 이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라고 말이다.
그 한 줄의 문장이, 방대한 조사 현장을 통찰의 길로 바꾸어놓는다.
가설을 리서치에 활용한다는 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일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오늘도 리서처들이 다시 ‘다음 질문’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