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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옷은 더 자주 사는데 지출은 줄었다… 패션 소비 '잦고 가볍게'로 출처: 코리아스타트업포스트

픽플리 25~26년 3개 분기 추적조사, 3회 이상 구매 54.2% → 60.0%로 상승 외투·신발 구매는 네이버로 이동… 쇼핑 중 AI 활용 41.4% 국내 패션 소비가 '한 번에 크게'에서 '자주, 가볍게'로 옮겨가고 있다. 옷을 사는 횟수는 늘었지만 한 번에 쓰는 돈은 오히려 줄었고, 단가가 높은 외투 대신 상·하의로 장바구니 구성이 바뀌었다. 데이터 트렌드 플랫폼 픽플리가 조사연구컨설팅 올림과 함께 패션 제품 구매 경험자를 대상으로 세 차례(1회차 지난해 10~12월, 2회차 올해 1~3월, 3회차 4~6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다. 픽플리는 지난달 31일 '패션 산업 26-3Q 소비 여정 리포트'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13일 공개했다.구매는 잦아지고 씀씀이는 가벼워졌다… 3회 이상 구매 60% 최근 3개월간 패션 제품을 3회 이상 구매했다는 응답은 2회차 54.2%에서 3회차 60.0%로 5.8%포인트 올랐다. 반면 지출은 뒷걸음쳤다. 같은 기간 10만 원 미만을 썼다는 응답이 27.5%에서 31.5%로 4.0%포인트 늘었다. 구매 빈도와 1회당 지출이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패션 소비가 "한 번에 크게 지출하기보다 비교적 자주,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품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 픽플리의 분석이다.   최근 3분기 패션 제품 소비자들의 구매 경험 및 여정 지표 변화 (사진제공 - 픽플리)외투 지고 상·하의 뜨고… 4050 남성 '고액 소비' 이탈 가장 커 품목 구성도 달라졌다. 3개 분기 연속으로 외투 구매 비중은 줄고 상·하의 비중은 늘었다. 겨울에서 봄·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변화와 함께, 단가가 높은 외투 자리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하의가 채운 결과다. 변화의 폭은 집단별로 갈렸다. 2030 여성은 3회 이상 구매 비율이 69.6%에 달해 구매 빈도 상승이 가장 뚜렷했다. 2030 남성 역시 4050보다 빈도 확대 흐름이 두드러지며 실용적·반복적 구매 구조로 이동했다. 반대로 4050 남성은 횟수보다 금액에서 변화가 컸다. 30만 원 이상 고액 소비 비중의 하락 폭과 상·하의 구매 비중의 증가 폭이 모두 전 집단 중 가장 컸다. 4050 여성은 기존 구매 패턴을 대체로 유지하면서 품목 구성만 실용적인 방향으로 옮겨갔다. '필요해서 직접 찾는다'… 외투·신발 결제는 네이버로 여정의 출발점은 콘텐츠가 아니라 필요였다. '필요에 따른 직접 탐색'으로 제품을 인지했다는 응답은 신발 71.8%, 외투 68.7%, 상·하의 67.8%, 패션 잡화 58.1%로 모든 품목에서 절반을 크게 웃돌았다. 광고·콘텐츠를 통한 관심 형성은 상·하의와 신발, 패션 잡화에서 일제히 줄었다. 다만 외투만은 추천·노출 광고를 통한 인지가 25.3%로 함께 늘어, 계절 상품 특유의 광고 반응성을 보였다. 채널에서는 네이버의 존재감이 커졌다. 외투는 정보 탐색이 네이버 검색·네이버 쇼핑 중심으로 옮겨간 데 이어, 구매도 네이버 쇼핑과 쿠팡 중심으로 이동했다. 상·하의는 탐색과 구매 모두 패션 플랫폼이 1위 자리를 지켰지만, 네이버 쇼핑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신발에서 나타났다. 정보 탐색에서는 네이버 검색이 1위를 유지한 가운데 패션 플랫폼 이용도 19.9%로 크게 늘었지만, 실제 결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네이버 쇼핑(24.9%)으로 넘어갔다. 사이즈와 착화감 정보, 교환·반품 편의성이 뒷받침되면서 오프라인 의존도가 높던 품목의 온라인 전환이 한층 진전된 것이다. 패션 잡화는 탐색에서 네이버 검색과 패션 플랫폼이 24.8%로 동률을 이뤘고, 구매에서도 패션 플랫폼(25.6%)과 오프라인 매장(23.9%)이 맞붙는 온·오프라인 혼합형 여정을 보였다. AI 활용 41.4%… ChatGPT 56.2% vs 제미나이 41.1% '양강' 패션 쇼핑 과정에서 대화형 AI를 써봤다는 응답은 1회차 39.9%, 2회차 37.0%를 거쳐 3회차 41.4%로 올라섰다. 한 차례 주춤했다가 반등해 소비자 10명 중 4명이 AI를 거쳐 옷을 사는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서비스별로는 ChatGPT가 56.2%로 1위를 지켰다. 다만 구글 제미나이가 1회차 26.1%, 2회차 36.0%, 3회차 41.1%로 세 분기 연속 상승하며 양강 구도를 만들었다. 기대하는 역할은 감각보다 실용에 쏠렸다. '예산 범위 내 제품 추천'(29.8%)과 '상황에 맞는 제품 추천'(27.6%)이 1·2위를 차지했고, '유사상품·대체재 탐색'(11.0%), '착용 경험에 대한 정보 제공'(9.6%)이 뒤를 이었다. 스타일을 대신 골라주는 스타일리스트보다, 정해진 예산과 상황 안에서 선택지를 좁혀주는 조력자로 AI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반복 구매 설계와 '플랫폼 밖' 접점이 관건 이번 조사는 패션 소비의 축이 '고가 단품 한 건'에서 '부담 없는 품목의 반복 구매'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랜드로서는 객단가를 지키는 전략보다, 반복 구매를 전제로 한 가격대 설계와 재구매 주기 관리의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채널 측면의 과제도 남는다. 외투와 신발처럼 무게중심이 패션 플랫폼 밖으로 옮겨간 품목이 생기면서, 자사몰과 패션 플랫폼에 집중돼 있던 접점 전략의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소비자 10명 중 4명이 활용하는 대화형 AI가 '예산·상황'을 기준으로 후보군을 좁히는 만큼, 가격대와 착용 상황 정보를 얼마나 구조화해 노출하느냐가 다음 분기 패션 커머스의 변수로 떠올랐다. 자료: 픽플리 '[데이터로 보는 소비 여정]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 패션 산업 26-3Q' (조사 협력: 조사연구컨설팅 올림) 출처: 코리아스타트업포스트 / 서영준기자https://www.kspost.biz/ko-kr/articles/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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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9] 과학과 종교,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의 조사

리서치 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상한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라는.설문지를 설계하고, 표본을 추출하고, 통계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돌리고, 유의확률을 확인하는 이 모든 과정은 분명 과학의 얼굴을 하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p값이 0.05보다 작으면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신뢰구간이 좁을수록 우리는 더 확신을 가진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은가.그런데 조사보고서의 마지막 장, 그 결론 부분을 쓸 때가 되면 이상하게도 손끝이 머뭇거린다. 데이터는 분명 A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 ‘왜’ 그런지, 이 숫자 뒤에 어떤 사람의 마음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순수한 관찰자가 아니게 된다.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되고, 어쩌면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된다.그 순간 리서처는 과학자의 자리에서 슬며시 내려와, 사제와 비슷한 자리에 서게 된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 사이에, 내가 서 있는 조사라는 영역은 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라는 시답지 않는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 AI 생성 이미지과학은 재현 가능성을 생명으로 삼는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실험을 하면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과학은 증명을 요구하고, 반증 가능성을 열어두며, 언제든 더 나은 증거가 나타나면 기존의 결론을 미련 없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과학의 미덕은 겸손함이다. “지금까지의 근거로는 이렇다.”라고 말할 뿐, “영원히 이렇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반면 종교는 증명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신뢰하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확인된 것처럼 살아간다. 종교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완벽한 증거 없이도 삶의 방향을 정하고, 흔들리는 순간에도 붙잡을 무언가를 준다는 것.조사는 이 둘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방법론은 과학을 지향한다. 표본의 대표성을 따지고, 척도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검증하고, 통계적 오차를 계산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조사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서사는, 아무리 정교한 통계로 감싸더라도, 결국 누군가의 해석이라는 인간의 손을 거쳐야 완성된다. 그리고 이런 서사는 설문지를 설계하는 순간, 이미 믿음으로 시작된다조사가 과학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우리는 그저 데이터를 수집할 뿐이다. 해석은 그다음 문제다.”라고 말이다.하지만 정말 그럴까.설문지의 첫 문항을 만드는 순간부터 리서처는 이미 어떤 가정을 세우고 있다. “이 질문이 사람들의 진짜 생각을 끌어낼 것이다!”라는 가정, “이 척도가 우리가 측정하고자 하는 개념을 정확히 담아낼 것이다!”라는 가정. 그러나 이 가정들은 검증되기 전까지는 그저 믿음일 뿐이다.표본을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체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다고 믿는 몇 백 명, 혹은 몇 천 명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실제로 전체를 대표하는지는 그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아무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통계학이 가르쳐준 방법을 따르며, 그 방법이 우리를 진실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라고 믿고 그 여정에 오른다.이것은 마치 기도와 닮았다. 정확한 절차를 따르고,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고, 선배들이 남긴 지혜를 참고하지만, 결국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채로 시작한다. 리서처는 매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이 작은 믿음의 도약을 거친다.그렇게 해서 얻어낸 많은 숫자, 그 자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만족도 3.8점’이라는 숫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작년보다 좋아진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 경쟁사 대비 우위인지 열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다.여기서 리서처는 필연적으로 해석자가 된다. 그리고 해석에는 언제나 관점이 개입한다. 어떤 맥락을 선택해서 비교할 것인가, 어떤 세그먼트를 강조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울 것인가.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두 명의 리서처가 있을 수 있다. 둘 다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다른 창을 통해 같은 풍경을 바라본 것뿐이다.이것이 바로 조사라는 업무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리는 객관성을 추구하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 도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마지막 순간, 우리는 결국 하나의 관점,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믿음을 선택해서 전달하게 된다. 완전히 중립적인 보고서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하는지, 그 선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입장이기 때문이다.조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종종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라, 확신이라는 것이다.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경영진은 데이터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자신이 내리려는 결정이 옳다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방향을 정해놓고, 조사 결과가 그 방향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사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면, 사람들은 종종 방법론부터 의심한다. “표본이 잘못된 거 아닌가?”, “질문이 편향된 거 아닌가?”라면서.우리는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증거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반박하는 증거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심리학은 이를 확증 편향이라 부른다. 조사가 아무리 과학적 방법론을 따른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종교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그렇기에 좋은 리서처는 단순히 숫자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을 견뎌내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클라이언트가 원하지 않더라도 정직하게 전달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과학의 세계에서 우리는 오차를 인정한다. 신뢰구간, 표준오차, 유의수준. 이 모든 개념은 결국 “우리는 완벽하게 알 수 없다!”라는 겸허한 고백이다.95% 신뢰수준이라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100번 중 5번은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확신은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종교인들이 완전한 증거 없이도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듯, 리서처들도 완전한 확신 없이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서처는 그 불확실성의 크기를 최대한 정직하게 계량하고 밝히려 애쓴다는 것이다. “이만큼은 확신하고, 이만큼은 확신하지 못한다.”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조사라는 일이 가진 독특한 윤리다.조사가 가장 종교에 가까워지는 순간은 아마도 트렌드를 예측할 때일 것이다. 소비자 행동의 변화를 감지하고, 다가올 시장의 흐름을 짚어내고,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 말하는 순간, 리서처는 예언자의 역할을 떠맡게 된다.우리는 과거의 데이터와 현재의 패턴을 근거로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미래는 본질적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다. 아무리 정교한 모델을 사용해도, 미래를 확실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향후 전망’이라는 장을 쓴다. 이는 신중한 추론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믿음의 선언이기도 하다.흥미로운 것은, 이런 예측이 때때로 스스로 실현되는 예언이 된다는 점이다. 어떤 트렌드가 온다고 발표되면, 기업들은 그 트렌드에 맞춰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며, 결과적으로 그 트렌드가 실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데이터가 미래를 예측한 것인지, 그 예측이 미래를 만든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지점. 여기서 조사는 관찰의 과학을 넘어 창조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여기까지 읽으면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럼 조사라는 게 결국 다 주관적인 것 아닌가. 믿을 게 못 되는 것 아닌가?”라고.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조사가 완전한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방법론을 그토록 철저히 따르려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주관성의 위험을 알기 때문이다.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하고, 척도를 검증하고,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는 이 모든 절차는 우리의 주관이 함부로 날뛰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안전장치다.과학적 방법론이 없다면, 조사는 그저 리서처 개인의 직관과 편견의 나열이 될 뿐이다. 우리가 데이터를 신뢰하는 이유는, 데이터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데이터가 우리의 편견을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숫자는 우리에게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거울과 같다.그러니 리서처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균형을 잡는 능력이다. 데이터 앞에서는 최대한 겸손한 과학자가 되어야 하고, 그 데이터를 세상에 의미 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때는 신중한 해석자, 어쩌면 조심스러운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 좋은 리서처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리서처는 회의론자이면서 동시에 신자이어야 한다고.회의론자로서, 그는 자신의 첫 가설을 의심한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오히려 더 꼼꼼히 검토한다. “혹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데이터가 말끔하게 자신의 예상과 맞아떨어질수록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다시 살펴본다.동시에 신자로서, 그는 조사라는 과정 자체를 믿는다. 완벽하지 않은 방법론일지라도, 정직하게 수행된 조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믿는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리서처의 책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들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의 답변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의 흐름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이 믿음이 없다면 조사라는 일은 그저 지루한 통계 작업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이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매번 새로운 설문지를 만들고, 낯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데이터를 정리하며 밤을 새우고, 마침내 하나의 결론을 세상에 내놓는 이 모든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다.조사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여전히 지금도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라는.그 답은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었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데이터 너머의 여백을 조심스럽게 채워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늘 같았다. 우리는 과학의 도구를 손에 쥐고, 종교의 마음으로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조사란 결국 그런 일이다. 객관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다가가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언제나 사람의 몫으로 남는 일. 증거와 믿음, 관찰과 해석, 회의와 신뢰가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여정.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짓는다.그리고 그 이야기가 세상의 작은 결정 하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를, 오늘도 조용히 믿어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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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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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9] 합장 대신 인증샷_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힙불교’

어두운 조명 아래, 쿵쾅거리는 비트가 바닥을 울린다. 리듬에 맞춰 묵직한 베이스가 가슴을 때리고, 화려한 미러볼 조명이 교차하는 클럽의 한복판. 그러나 무대 위 DJ는 헤드셋을 눌러쓴 채 승복을 입고 합장을 하고 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는 다름 아닌 불경과 진언이다.“부처님 잘생겼다, 부! 처! 핸! 섬!”“번뇌를 견뎌내면 극! 락! 왕! 생!”현장을 메운 2030 세대는 합장한 손을 하늘 높이 찌르며 환호하고, ‘극락도 락(Rock)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가 출렁인다.이것은 홍대의 어느 대형 클럽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한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한가운데서 펼쳐진 풍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산사’, ‘노년층’, ‘엄숙함’의 대명사였던 불교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힙(Hip)한 서브컬처이자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떠올랐다.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누적 관람객은 10만 명을 돌파했고, 2026년에는 무려 25만 명이 몰려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체 방문객의 80%가량이 2030 청년 세대였다는 점이다. 개장 몇 시간 전부터 컨벤션센터 주변으로 길게 줄을 서는 오픈런이 사찰 굿즈 부스 앞에서 펼쳐졌다.*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보도자료 첨부 이미지젊은이들은 ‘뉴진스님’의 EDM 디제잉에 맞춰 춤을 추고, 템플스테이 버전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절로’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참가 신청을 던진다. 가방에는 귀여운 목탁 모양 키링을 걸고 다니며, 반야심경이 인쇄된 감각적인 굿즈를 사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번뇌 멈춰’ 티셔츠를 찍어 올린다.이 흐름을 한마디로 부르면, 바로 힙불교다.하지만 이 표현이 단순히 ‘불교가 젊어졌다’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불교를 자기 언어로 번역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불교는 가르침의 종교에서 체험의 문화로, 의무의 대상에서 취향의 대상으로 옮겨가고 있다.단순한 일회성 밈(Meme)이나 기이한 팝컬처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그 열기가 너무나 뜨겁고 지속적이다. 천년 고찰의 이끼 낀 기와지붕 아래에 있던 불교는 어떻게 21세기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감각적인 소비문화가 되었을까? 하나의 트렌드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무엇이 유행하는가?”가 아니라 “왜 지금 이 세대에게 이것이 통하는가?”이기 때문이다. 지금 불교가 힙한 트렌드를 형성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바라보면 몇 가지 원인을 떠올릴 수 있다.우선 첫째, 불교가 불안한 시대의 심리적 안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2030 세대는 유례없이 많은 정보와 유례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동시에 감당하고 있는 세대다. 취업, 자산, 관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옅어질수록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스릴 나름의 방법을 찾게 된다. 불교가 오랜 시간 다듬어 온 ‘마음을 바라보는 언어’—공(空), 무상(無常), 번뇌 같은 개념들—는 이 세대가 겪는 불안에 뜻밖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어휘를 제공한다. 다만 이들이 원하는 건 거대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줄 한 문장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가 굿즈에 새겨져 팔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 고백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에 가깝다.둘째로는, 헌신 없는 소속감, 이른바 ‘가벼운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심리다. 기존 종교가 요구해 온 것은 정기적인 예배, 특정한 교리에 대한 동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었다. 반면 지금의 청년들이 원하는 종교적 경험은 이런 무거운 약속에서 자유롭다. 박람회에 가서 굿즈를 사고, 스님과 릴스를 찍고, 명상 앱을 다운로드하고, 필요할 때만 사찰음식 맛집을 찾아가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소속의 위안을 취하는 방식이다. 사회학자들이 종종 지적하듯, 현대인은 하나의 정체성이나 하나의 공동체에 전부를 걸기보다 여러 취향의 조각들을 이어붙여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성한다. 힙불교는 그 조각 중 하나로 아주 매끄럽게 편입됐다. 무종교인 관람객이 박람회 방문객의 절반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들에게 그곳은 신앙의 공간이 아니라 취향의 공간이었다.셋째는, 힙불교는 인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금 세대에게 경험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고, 공유되고, 반응을 받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힙불교가 이토록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콘텐츠들이 ‘찍기 좋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승복을 입고 EDM을 트는 스님, 스니커즈를 신은 부처 피규어, 귀여운 캐릭터가 된 액막이 굿즈는 하나같이 낯설고, 낯설기에 시선을 끌고, 시선을 끌기에 공유된다. 전통적인 고요하고 근엄한 불교의 이미지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던 확산력을 이 낯섦이 만들어낸 것이다. 역설적으로, 불교가 가장 불교답지 않아 보이는 방식으로 등장했을 때 가장 널리 퍼졌다.네 번째는 웰빙과 자기계발이라는 시대정신과의 힙불교가 적절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명상, 마음챙김, 미니멀리즘, 디지털 디톡스처럼 지금의 소비 시장을 가로지르는 이 모든 키워드는 결국 더 나은 나를 향한 갈망을 자원으로 삼는다. 불교는 이 갈망을 채워줄 콘텐츠 창고로 매우 적합했다. 이미 검증된 오랜 지혜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정 종교의 배타성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요가가 힌두교의 종교색을 덜어내고 하나의 운동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세계적으로 자리 잡았던 경로와 닮은 구석이 있다. 힙불교 역시 신앙보다 실천 기술로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감각을 파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진지함에 대한 피로와 유머로의 이끌림이 힙불교의 매력으로 작용했다. 지금의 청년 문화는 무엇이든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대신 위트와 자기 풍자, 살짝 비틀린 유머를 통해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건네받는 것을 선호한다. 뉴진스님이라는 캐릭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는 불교의 진리를 근엄하게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우스꽝스러움과 진심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며, 웃음과 함께 슬쩍 메시지를 흘려보낸다. 그 틈으로 청년들은 부담 없이 들어선다. 종교가 두려운 게 아니라, 종교가 진지하게 굴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게 이 방식은 아주 정확한 초대장이었다.여러 사회심리학적 이유로 힙불교라는 트렌드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런 트렌드 형성의 모든 흐름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신앙이 소비의 문법 안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종교는 시간, 헌신, 공동체 참여 등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힙불교는 사람들에게 ‘구매할 것’을 제안한다. 굿즈를 사고, 티켓을 끊고, 앱을 구독하고, 여행 패키지를 예약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경험에 접속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불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소비의 계절이 되고, 사주와 타로가 앱 구독 서비스로 재편되고, MBTI가 정체성 쇼핑의 언어가 된 것과 같은 궤도 위에 있다. 의미와 정체성, 소속감처럼 본래 사고팔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점점 더 상품의 형태를 빌려 유통되는 시대다.이걸 가볍다고, 혹은 얄팍하다고만 평가하기는 조심스럽다. 오히려 이 현상은 정직한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지금의 청년들이 의미와 위안을 얼마나 절실히 찾고 있는지, 동시에 그 의미를 얻기 위해 얼마나 낮은 진입 장벽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 말이다. 무거운 헌신을 요구하는 순간 이들은 돌아선다. 하지만 가볍게 발을 들일 문을 열어두면, 의외로 이들은 그 안에서 제법 진지한 위로를 얻어 간다. 박람회장에서 스님과 진지하게 ‘공(空) 사상’을 물어보고 돌아간 청년들의 존재가 그 증거다. 형식은 가벼웠지만, 그 안에서 오간 것까지 가벼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그러니 결국 힙불교는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종교와 청년 세대가 서로를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다.젊은 세대는 불교에서 불안을 견디는 언어를 찾고, 불교는 젊은 세대의 감각 속에서 새롭게 살아난다. 소비문화는 그 만남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매개가 되었고, SNS는 그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마음이다. 사람들이 불교를 찾는 이유는 예쁜 굿즈 때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잠깐이라도 덜 지치고 싶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비교에서 벗어나고 싶고, 관계의 소음에서 물러나고 싶고,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는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힙불교는 그래서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그것은 불안한 시대가 만든 정서적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뜻밖에도 오래된 종교의 입을 빌려 말한다. 느리게, 조용하게, 그러나 꽤 분명하게. “괜찮다, 잠시 멈춰도 된다.” 이 말이 오늘의 청년들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바로 그 절실함 위에서 불교는 다시 젊어지고 있다. 종교의 옷을 입었지만, 사실은 시대의 마음을 읽는 방식으로.그래서 불교가 힙해졌다는 말은, 어쩌면 불교가 젊어진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불교를 다시 알아볼 만큼 지쳐버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힙불교는 종교와  젊은 세대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지금 세대가 불안과 의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아니면 다른 콘텐츠에 자리를 내줄지는 알 수 없다.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형식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마음을 다독여줄 언어를 찾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가 근엄한 법당보다 EDM이 울리는 무대 위에서, 두꺼운 경전보다 손바닥만 한 굿즈 위에서 더 쉽게 발견되는 시대라는 것.전통과 소비, 신앙과 취향, 진지함과 유머 사이의 그 어색한 줄타기 속에서, 우리는 지금 한 세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음의 자리를 마련해 가는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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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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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8] 모니터링과 일반조사_데이터를 보는 두 가지 시선

A군, 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있나요? 지난 번 만났을 때 우리 회사의 주간업무를 보여주었더니 모니터링 조사와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일반조사가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았지요. 우리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오고 싶은데, 그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요. 그래서 제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아마 리서처가 되려는 학생들은 마케팅 원론이나 소비자 행동론 수업에서 설문조사나 FGI(표적집단면접)와 같은 단어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을 겁니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조사의 종류에는 탐색적 조사, 기술적 조사, 인과적 조사가 있다”며 달달 외우기도 했을 테지요. 하지만 막상 진짜 조사의 세계, 프로들의 필드로 들어서면 교과서 활자만으로 업무를 해내기는 어려울 수 있답니다.클라이언트가 들고 오는 고민은 “우리의 타깃 소비자는 누구인가요?”처럼 거대하고 막연한 질문부터, “지난주에 내보낸 유튜브 광고가 이번 주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나요?”와 같이 숨 가쁘고 구체적인 질문까지 실로 다양하거든요.이런 수많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조사회사에서는 크게 두 가지 칼날을 갈아둡니다. 하나는 특정 순간의 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일반 조사(Ad-hoc Research, 단발성 조사)’이고, 다른 하나는 흐르는 시간의 궤적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모니터링 조사(Monitoring Research)’ 또는 ‘트래킹 조사(Tracking Research)’입니다.만약 A군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광화문 광장을 비춘다고 상상해 보세요. 셔터를 찰칵 눌러 그 순간의 하늘의 색, 사람들의 옷차림, 광장의 표정을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일반 조사입니다. 반면, 같은 자리에 삼각대를 세워두고 하루 24시간, 혹은 일 년 365일 동안 하늘의 변화와 계절의 바뀜을 1초에 한 컷씩 찍어 압축된 영상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모니터링 조사입니다.제가 오늘은 교과서의 딱딱한 정의를 잠시 접어두고, 이 ‘스냅샷(Snapshot)’과 ‘타임랩스(Time-lapse)’라는 두 가지 시선이 어떻게 데이터의 장막을 걷어내는지, 그리고 미래의 리서처가 될 A군을 위해 왜 이 두 조사의 호흡법을 익혀야 하는지 설명해 주려고 합니다.먼저 일반조사부터 자세히 살펴봅시다.우선 찰나의 진실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스냅샷에 해당하는 일반조사는 ‘지금, 여기’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요. 영어로 ‘Ad-hoc’은 ‘이것을 위해’, 혹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케터가 직면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 한 번, 혹은 일시적으로 설계되는 맞춤형 조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차 있죠. 갑자기 새로운 경쟁 브랜드가 등장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사회적 이슈로 인해 소비자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때 마케팅 리서처는 깊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지금 소비자들이 왜 우리 제품을 외면하는 거지?”, “새로 기획한 이 디자인이 과연 시장에서 통할까?”처럼 말이죠.일반 조사는 이 깊은 안개 속에서 번쩍하고 터지는 플래시의 불빛과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 리서처가 바로 앞의 장애물을 피해 올바른 발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죠. 일반조사는 철저한 맞춤형 디자인으로, 가장 큰 매력은 자유도라는 점도 특징입니다. 기성복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의 몸에 딱 맞춘 수제 정장처럼, 클라이언트의 문제 정의에 따라 질문지, 표본 구성, 분석 기법이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죠.예를 들어, 어떤 식품 회사가 ‘민트초코 맛 컵라면’이라는 파격적인 신제품 출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전례가 없는 제품이기에 기존의 데이터로는 당연히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때 리서처는 민트초코에 열광하는 1020 타겟 소비자를 정교하게 선별해서 100명을 모으고, 제품을 직접 시식하게 한 뒤, 그들의 오감 반응과 구매 의향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반 조사를 설계합니다. 조사 기법 역시 정량적인 설문조사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소비자의 표정과 감정 변화를 읽어내는 FGI나 심층 면접 등을 혼합하여 다각적으로 접근하겠죠.일반조사의 세 번째 특징은 약점이기도 한 맥락의 부재입니다. 일반 조사는 ‘지금 이 순간’ 소비자나 응답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원인을 파헤치는 데 아주 탁월합니다. 이렇기에 치명적인 약점도 있죠. 바로 ‘앞과 뒤’가 없다는 점입니다. 스냅샷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기 직전에 울었는지, 사진을 찍은 직후에 화를 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즉,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트렌드의 맥락이나, 이 조사가 끝난 뒤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주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자 이제 흐르는 시간의 맥박을 짚는 모니터링 조사에 대해 알아보죠. 우선 보통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일반조사와 달리, 모니터링 조사는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동일하거나 동등한 조건의 질문을 일정한 시간 간격(매주, 매월, 매분기)으로 반복하여 측정하는 조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립니다. 하지만 수천, 수만 명의 갈대가 흔들리는 방향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다 보면, 그 안에서 거대한 바람의 방향, 즉 트렌드(Trend)라는 이름의 강줄기를 발견하게 됩니다.모니터링 조사는 시장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맥박을 짚는 일이랍니다. 한 번의 혈압 측정(일반 조사)으로는 그 사람이 고혈압 환자인지, 아니면 방금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 일시적으로 혈압이 높은 것인지 알 수 없겠죠. 24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혈압을 기록해야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듯, 모니터링 조사는 ‘알아보려고 하는 시장과 사회의 건강 진단서’를 지속적으로 제공합니다. 두 번째로, 모니터링 조사의 핵심 미덕은 인내와 규율이라는 점도 특징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수한 변화만을 측정해야 하니, 조사 환경과 질문의 형태를 칼날처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지난달에는 “우리 브랜드를 얼마나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어보고, 이번 달에는 “우리 브랜드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미세하게 바꾼다면, 데이터의 변화가 소비자의 마음이 변해서인지 질문이 변해서인지 알 수 없게 되죠. 따라서 모니터링 조사를 진행하는 리서처는 매 순간 질문을 바꾸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며, 데이터의 표준화를 유지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물론 일반조사와 마찬가지로 모니터링 조사에도 단점은 존재합니다. 바로 디테일의 아쉬움이죠. 모니터링 조사는 기업과 기관에 “우리가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줍니다. 예를 들어 광고 캠페인을 집행한 후 브랜드 인지도가 서서히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볼 때, 마케터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그래프가 갑자기 툭 떨어진다면 모니터링 조사는 ‘떨어졌다’라는 사실은 명백히 알려주지만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깊숙한 인간적 서사와 변명은 들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조화된 질문의 틀 안에 갇혀 있어, 예측하지 못한 소비자의 돌발적인 심리 변화나 기저의 사회심리학적 맥락을 유연하게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자 그럼 두 조사의 차이를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정리해 볼까요. 이렇게 표로 정리하니 참 괜찮네요. 그럼 이번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한번 가상의 실무 사례를 다루어 볼까요.어느 날, 국내 대형 편의점 브랜드인 B사의 마케팅 팀장이 우리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앱의 매월 활성 사용자 수(MAU) 추이를 매달 확인하고 있는데, 최근 3개월간 그래프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요. 원인을 찾아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싶어요.”여기서 팀장님이 매달 확인하고 있던 ‘MAU 추이 그래프’가 바로 모니터링 조사(App 이용 행태 트래킹)의 결과물입니다. 모니터링 조사는 경고등을 켜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당신의 브랜드에 문제가 생겼으니 빨리 기동대를 파견하세요!”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죠.이 신호를 받은 리서처는 곧바로 일반 조사(Ad-hoc)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최근 3개월 이내에 B 편의점 앱을 탈퇴하거나 이용을 중단한 이탈 고객 500명을 타깃으로 정밀 설문조사를 설계하고, 그중 12명을 따로 뽑아 FGI를 진행했죠.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 결과, 일반 조사는 모니터링 그래프 뒤에 숨겨진 진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찾아냅니다.“경쟁사 앱은 출석 체크를 하면 편의점 삼각김밥 쿠폰을 주는데, B사 앱은 쓸데없는 포인트만 줘서 재미가 없어졌어요.”, “최근 앱 업데이트 이후에 로딩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켜기가 짜증 나더라고요.”일반 조사를 통해 리워드의 매력도 저하와 시스템 오류라는 구체적인 원인을 밝혀낸 B편의점은 즉각 앱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고 ‘삼각김밥 타임 세일 팝업 쿠폰’ 이벤트를 도입하는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마케팅 팀장은 다시 모니터링 조사의 그래프를 확인했죠. 꺾여 내려가던 내리막 그래프가 다시 완만하게 고개를 들어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내린 해결책이 시장에서 통했다는 것을 증명받게 되었습니다.어떤가요? 두 조사는 서로 경쟁하거나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랍니다. 모니터링 조사가 던진 질문에 일반 조사가 답하고, 일반 조사가 낸 해결책을 모니터링 조사가 평가하는, 아름다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죠.A군이 조사회사 인턴 업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두 가지 조사의 메커니즘을 자신의 무기로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학생은 일반 조사에만 매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네이버 폼이나 구글 설문지로 주변 친구들 100명에게 설문을 돌린 뒤, “소비자들은 이런 것을 원합니다!”라고 당차게 주장하곤 하죠. 하지만 여기에 통계청이나 조사회사 등에서 발표하는 모니터링 통계 데이터를 먼저 제시하며 거대한 흐름(Macro 트렌드)을 짚어준 뒤, “이 흐름 속에서 올해 발생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라고 서술한다면 기획서의 논리적 무게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조적 흐름을 아는 학생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그러니 훌륭한 리서처가 되기 위해서는 ‘스냅샷의 뇌’와 ‘타임랩스의 뇌’를 동시에 훈련해야 합니다. 일반 조사를 할 때 필요한 역량인 의문력과 공감 능력, 그리고 모니터링 조사를 할 때 필요한 역량인 집요함과 데이터 문해력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조사회사에서 다루는 데이터는 얼핏 차가운 숫자의 나열처럼 보일 겁니다. 45.3%, 3.2%p 하락, 5점 만점에 4.1점 같은 텍스트들 말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는 아침 출근길에 졸린 눈을 비비며 편의점 삼각김밥을 고르는 청년의 고단함이 있고, 새로 나온 화장품을 바르며 설레하는 사회 초년생의 떨림이 있으며, 아이에게 더 좋은 분유를 먹이고 싶어 밤새 후기를 검색하는 초보 엄마의 간절함이 묻어 있습니다. 일반 조사는 그 간절하고 설레는 순간의 방에 불을 켜고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는 일이고, 모니터링 조사는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계절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묵묵히 기록하며 길을 잃지 않도록 등대를 비추는 일입니다. 세상을 읽어내는 이 매력적인 항해를 아마 A군도 함께 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합니다. A군은 지금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찰나의 순간인가요, 아니면 유구한 흐름인가요? 무엇이 되었든 좋습니다. 그 두 가지 시선이 만나는 교차점에, A군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시장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진정한 통찰(Insight)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미래의 조사 실무 필드에서, 더 깊고 단단해진 A군의 시선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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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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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8] 낡은 시간의 무덤에서 피어난 힙한 유토피아_동묘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예전에는 뻔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박스를 깔고 앉은 어르신들, 산더미처럼 쌓인 낡은 옷가지, 그리고 “골라 골라, 무조건 오천 원!”을 외치는 투박한 목소리. 젊은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거리였다. 그런데 요즘의 동묘는 다르다. 옷더미 옆으로 와이드 팬츠를 입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나비 자수가 놓인 청바지를 걸치고, 헌팅캡을 눌러쓴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해 골목 한켠에서 포즈를 취한다. 손에는 천 원짜리 토스트와 어쩌면 조금 전 삼천 원에 흥정한 선글라스가 들려 있다.숫자로도 변화는 선명하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5월, 데이트 장소 검색어에서 ‘동묘’가 처음으로 ‘성수’를 앞질렀다. 한때 성수의 절반 수준에 머물던 검색량이 어느 순간 역전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동묘’ 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60만 건을 넘어섰고, “성수보다 동묘”란 말은 이제 밈처럼 퍼지고 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가 줄지어 올라오고, 사람들은 그 브이로그 속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무언가 달라졌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보여주는 심리적 지형도에 가깝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묘는 탑골공원의 연장선이라 불렸다. 어르신들의 벼룩시장, 혹은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 속 비밀스러운 쇼핑 장소로만 소개되던 공간이었다. 그랬던 곳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세대의 문화 해방구가 되었다. 이 극적인 반전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낡은 골목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단지 값싼 물건 때문이라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이 이미 넘치도록 존재하는 시대에 굳이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화면 너머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셈이다.* AI 생성 이미지먼저 눈에 띄는 변화 하나. 예전 동묘의 상징이었던 가격 흥정이 요즘은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좌판에 가격표가 붙고, 정찰제가 자리 잡으면서 상인과 손님이 침 튀기며 실랑이하던 풍경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몰려든다. 이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동묘를 찾는 이유가 싸게 사는 쾌감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크게 반응한다. 백화점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상품을 사는 것과 옷더미를 헤집어 브랜드 로고를 찾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경학적 경험이다. 후자에는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라는 불확실성이 있고, 그 불확실성을 뚫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은 훨씬 강렬할 것이다. 요즘 동묘를 찾는 청년들 사이에서 이 행위는 이미 이름을 얻었다. 게임 용어를 빌려온 ‘파밍(farming)’, 원하는 것을 캐낸다는 뜻의 ‘디깅(digging)’, 혹은 그냥 ‘보물찾기’로 말이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 행위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는 증거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물찾기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경험의 서사화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돌아간다. “삼천 원에 이런 걸 건졌다!”라는 말은 단순한 득템 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안목과 운, 그리고 노력을 증명하는 하나의 무용담이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예측하고 추천해주는 시대에, 스스로 헤매고 골라내는 경험은 오히려 희소해지고 있는데, 동묘는 그 희소해진 경험을 값싸게 되돌려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된 셈이다.동묘 현상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리커머스(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 원 규모에서 2025년 43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소비자의 심리적 셈법도 정교해졌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꼽은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라는 말은, 소비자가 가격표 뒤에 숨은 가치를 스스로 해독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비싼 것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이 가격에 이 정도 만족이면 합리적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한다.그런데 여기서 사회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서 동묘를 찾는 청년들의 언어를 들어보면 ‘싸다’라는 말보다 ‘힙하다’라는 말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 인터뷰에서 20대 방문객은 “데이트 비용만 저렴한 게 아니라 힙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절약과 자존감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이 세대가 스스로 개발해낸 새로운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과거에는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이 궁핍함의 표시로 여겨질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싸게, 그러나 안목 있게’ 사는 것이 오히려 세련됨의 표시가 되었다. 절약이 부끄러움의 영역에서 자부심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자기 효능감을 지키려는 인간의 매우 건강한 심리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동묘가 힙한 공간으로 떠오른 이유를 이야기할 때, 성수동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수는 지난 몇 년간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팝업스토어의 격전지였다. 브랜드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벽하게 기획된 공간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함이 오히려 피로감을 낳기 시작했다. 모든 공간이 누군가에 의해 세심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는 감각, 내가 발견한 것이 사실은 마케팅팀이 발견하게끔 설계해둔 것이라는 자각이랄까. 이렇게 상업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공간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진짜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작위성의 감각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동묘는 성수가 뿜어내는 일종의 작위성,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이곳은 누구도 기획하지 않았다. 노점상과 청년 셀렉숍 점포가 나란히 존재하고, 지직거리는 트로트 가락 옆에서 힙한 패션의 청년이 옷더미를 뒤진다. 이 무질서함과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동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사람들이 동묘에서 찍은 사진에는 연출의 흔적이 없다. 낡은 간판, 색 바랜 라디오, 백발의 노신사가 우연히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인스타그램 시대의 청년들이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는 것, 즉 보정되지 않은 진정성이 담긴 삶의 풍경이다.흥미로운 점은 이 진정성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타인의 존재에서 온다는 점이다. 동묘의 매력을 언급한 방문객들의 인터뷰에는 공통적으로 ‘중장년층과 함께 있다는 감각’이 등장한다. 세대가 분리되지 않은 거리, 노년과 청년이 같은 골목을 걷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정서적 자원이 된다. 우리는 나이대별로, 취향별로, 소비수준별로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 카페는 카페대로, 백화점은 백화점대로 암묵적인 연령 코드가 있다. 그런데 동묘에는 그 경계가 없다. 이 낯선 혼재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동묘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소비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고 LP판, 필름 카메라, 낡은 라디오, 옛날식 토스트와 미숫가루.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의 20대가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낡은 사물들 앞에서 향수를 느낀다.이를 심리학에서는 ‘매개된 노스탤지어(mediated nostalgia)’ 혹은 ‘대리 향수’라고 부른다. 직접 겪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도 미디어와 이야기를 통해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 콘텐츠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된 레트로 이미지들이 실제 기억이 없는 세대에게도 그리움의 감정을 이식한 것이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패션 스타일링의 방식이다. 동묘를 찾는 청년들은 정형화된 브랜드 룩이 아니라,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낸다. 나비 자수 청바지에 호피 무늬 상의, 그 위에 헌팅캡. 이것은 어느 매장에서도 세트로 팔지 않는 조합이다. 마치 주어진 재료를 이리저리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일컫는 ‘브리콜라주(bricolage)’와 같은 스타일링 방식이다.알고리즘 기반의 쇼핑 플랫폼은 우리에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끊임없이 예측해 들이민다. 편리하지만, 동시에 이는 개인의 취향을 점점 평균화하고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가두는 효과를 낳는다. 이와 다르게 동묘의 옷더미 앞에서는 어떤 알고리즘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눈과 손으로 골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정체성의 감각을 확인받는다.정말 많은 이유로 동묘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힙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조금 더 근원적인 사회적 요인을 찾아보자면 역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연이 주는 위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지금 청년 세대는 취업, 주거, 미래 설계 전반에서 극도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감각, 계획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대적 피로감.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우연을 원하게 된다.동묘의 옷더미는 통제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작은 세계다. 무엇을 고를지, 얼마나 오래 뒤질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손에 넣을지, 이런 이 모든 결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작은 결정들이 쌓여 예상치 못한 만족으로 이어질 때, 사람들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효능감을 되찾는다. 커다란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삼천 원짜리 셔츠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안목과 운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 작은 승리들이 모여 하루의 기분을 바꾸고,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조금은 회복시켜준다.동묘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의 이동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고물가 시대의 합리적 소비 심리, 큐레이션된 세계에 대한 피로와 진정성에 대한 갈증, 세대 간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 대한 안도감, 경험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한 대리적 그리움, 알고리즘을 벗어난 자기표현의 욕구, 낯선 동선을 함께 걷는 이들과의 은근한 연대감, 그리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작은 통제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까지.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심리적 흐름이 겹겹이 쌓여 있다.* AI 생성 이미지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편리함을 소비의 최고 가치로 여겨왔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물건이 다음 날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 취향마저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주는 시대.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굳이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동묘는 그 편리함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에어컨도 없는 골목에서 땀을 흘리며 옷더미를 뒤지고,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는 날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느라 잃어버린 무언가—땀 흘려 발견하는 기쁨, 예측할 수 없는 만남, 몸으로 부딪히며 얻는 감각적 경험—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흥미로운 것은 동묘 자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옷더미는 여전히 옷더미고, 토스트는 여전히 천 원이다. 관우를 모신 유서 깊은 사당도,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락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오히려 이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며, 그 시선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지금 무엇에 지쳐 있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 세대가 열광할 또 다른 동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을지 모른다. 그곳이 어디가 되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풍경, 예측할 수 없는 우연, 그리고 그 우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낯선 이웃들. 다음에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나설 일이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낯선 온도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옷더미를 뒤지는 그 손끝에, 어쩌면 우리 시대가 가장 절실히 찾고 있는 것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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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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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7] 타인의 삶을 읽어내는 '간접경험'의 마법

요즘 <참교육>이란 드라마가 여러모로 화제다. 글로벌 수준의 인기도 화제이고, 교권보호국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도 화제고, 실제 교육 현장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도 화제다. 이런 화제에 이끌려 드라마의 보게 되었는데, 학부모의 갑질이 에피소드인 편을 보다가 갑자기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애 있어요? 아이는 낳아 봤어요?”라고 했다는 막말이 생각났다.‘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부모 마음을 헤아려 학생들을 교육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의 이 막말은 경험하지 못했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아주 오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조사 업계에 입문해 새내기 조사연구원의 때를 벗었다고 생각한 입사 2년 차의 어느 날, 분유 제품 관련 마케팅 조사에 합류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 진행된 회의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클라이언트는 참여 연구원 명단을 보다가 눈을 들어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아직 결혼도 안 한 미혼이라서 육아 경험도 없는데, 분유 제품에 대해 좀 아시나요? 아무래도 이런 조사를 하려면 육아 경험이 있는 연구원이 이해도가 높을 거 같은데.”물론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하는 선배 연구원들은 모두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니 그 자리에서는 그냥 반농담의 분위기로 넘어가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정성조사도 포함되는 프로젝트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시 육아 경험이 있으면 훨씬 생생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조사결과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무래도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경험을 활용한 장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회의가 끝나고 저녁을 먹다가 선배 한 분에게 회의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난 얼마 전에 기저귀 제품 조사에 참여했잖아. 그때 아무래도 내가 직접 제품을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아서 기저귀를 차고 있었던 적도 있었어. 직접 경험을 해보니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긴 하더라.”2026년 오늘과는 달리, 1980년대나 1990년의 조사 현장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공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조사연구원 사이의 일종의 기싸움이라고나 할까. 특히 조사 주제나 대상과 관련된 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렵기도 했다. 조사결과의 숫자는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과연 소비자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경험에 기반한 정보와 지식을 조사연구원이 갖추고 있는가를 탐색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았다. 그때 조사연구원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듣던 뼈아픈 피드백 중 하나는 바로 “현실을 모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사연구원의 경험이 없느니 현실을 모를 테고, 그런 연구원이 만든 보고서는 신뢰하기 어려우니 가능하면 경험이 있는 연구원을 투입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그 시절의 기준에서 보면, 조사연구원의 전문성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봤는가’에 더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기준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어떤 제품을 쓰고, 어떤 상황을 겪고, 어떤 감정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하지만 2026년의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조사연구원은 정말로 모든 것을 살아본 사람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다루는 시장은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알콜·저도주 시장을 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술을 안 마시는 선택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여기에는 건강, 자기관리, 사회적 이미지, 관계의 방식까지 다양한 의미가 얽혀 있다.이 시장을 조사할 때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연구원이 더 적합하다”라거나 “실제로 음주 문화를 경험한 연구원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구분은 현실적이지 않다.왜냐면 이 시장은 단순히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OTT 콘텐츠 소비도 마찬가지다.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헤비 유저의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서는 오히려 “왜 끝까지 보지 않는가?”, “왜 추천 콘텐츠를 무시하는가?”, “왜 구독을 해지하는가?”와 같은 비경험 혹은 중단의 경험이 더 중요한 인사이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AI 서비스 역시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용자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 사이에는 단순한 사용 빈도의 차이를 넘어, 기술에 대한 신뢰, 통제감, 그리고 자기 효능감에 대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이때 조사연구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직접 헤비 유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용자 집단의 경험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이해하느냐다.이처럼 오늘날의 시장은 ‘경험의 유무’보다 ‘경험의 해석’이 더 중요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그렇다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현실적으로 조사연구원이 모든 소비자 삶을 살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시니어 시장이나 특정 질환 관련 헬스케어 시장처럼, 생애주기나 신체적 조건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시니어 대상 디지털 서비스 조사를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젊은 연구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화라는 경험 자체를 완전히 체화할 수는 없다. 결국, 조사연구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직접 해보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은 세계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바로 깊고 다정한 ‘간접경험’이 필요하다.그렇다면 노화를 경험하지 못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조사연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간접경험을 쌓고 활용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걸까? *AI생성 이미지우선, 활자 너머의 감정에 접속하는 ‘디지털 인류학자’가 되어보아야 한다. 요즘은 소비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너무나 많다. 맘카페, 익명 커뮤니티, 브이로그(Vlog),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들은 거대한 인류학적 관찰의 장인 셈이다. 조사연구원은 단순히 ‘어떤 헬스 케어 제품이 많이 언급되는가’를 크롤링(Crawling)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벽 3시에 맘카페에 올라온 “애가 분유를 토하는데 어떡하죠 ㅠㅠ”라는 글을 읽으며, 화면 너머 어머니의 떨리는 손과 초조한 마음을 함께 느껴야 한다. 텍스트 사이에 배어 있는 불안, 기쁨, 안도감을 채집하는 것이 간접경험의 첫걸음이다.두 번째는 일상을 연구실로 만드는 ‘미시적 관찰’을 평소 몸에 익혀야 한다. 마트에 갔을 때 분유 코너에서 엄마들이 분유통을 집어 들고 가장 먼저 어디를 보는지(영양 성분표인지, 원산지인지, 아니면 가격표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검색하며 비교하는지를 조용히 관찰해보자. 때로는 지인의 육아 현장에 방문해 분유를 타는 과정을 지켜보고, 젖병을 흔들 때 손목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물 온도를 맞추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보자. 이러한 미시적 관찰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것 못지않은 강력한 잔상을 남길 것이다.세 번째는 이종(異種) 경험을 결합해 보고 유추하는 연습이다. 분유를 타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지극히 돌보며 애태워본 경험들이 있다. 반려동물이 아파서 밤새 간호하며 가장 좋은 사료를 찾았던 경험, 혹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성분을 꼼꼼히 따져 영양제를 고르던 경험처럼. 결국, 절대적인 사랑과 책임을 담아 누군가의 먹거리를 고르는 마음이라는 본질은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가진 다른 영역의 짙은 경험을 조사 주제에 투영하고 유추하는 능력, 이것이 훌륭한 연구원이 간접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이렇게 쌓여서 활용되는 간접경험은 그럼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이렇게 정성껏 쌓아 올린 간접경험은 그저 연구원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보고서라는 결과물에 어떻게 해서든 녹여내야 한다.우선 연구원들은 간접경험을 숫자에 체온을 더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야 한다. 데이터가 “A 브랜드 분유의 물에 잘 녹는 용해도에 대한 만족도가 45%로 1위입니다”라고 말할 때, 간접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이 문장을 그대로 보고서에 쓰겠지만, 간접경험을 깊이 쌓은 연구원은 아마도 다르게 쓸 것이다. 아래의 경우처럼.“새벽 3시, 잠투정하는 아이를 한쪽 팔로 안고 남은 한 손으로 분유를 타야 하는 엄마들에게 용해도는 단순한 기능이 아닙니다. 덩어리진 분유를 흔들어 녹이느라 아이의 울음이 길어지는 1분 1초는 엄마에게 죄책감과 스트레스입니다. A 브랜드는 스르르 녹아내리는 용해도를 통해 새벽 육아의 고단함을 덜어주었고, 이것이 만족도 1위의 진짜 이유입니다.”이렇게 숫자에 소비자의 체온과 땀방울을 더할 때, 조사결과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두 번째로는 조사결과에서 ‘What’을 넘어 ‘Why’를 찾아내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간접경험은 데이터의 이면을 보게 한다. 설문조사에서 유기농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더라도, 실제 매대에서는 가격 할인을 하는 일반 분유가 잘 팔리는 현상(What)을 마주했을 때, 연구원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깊이 이해한 연구원은 그 간극(Why)을 읽어낼 수 있다. 아이에게 최고만 주고 싶은 엄마의 이상과 팍팍한 가계부라는 가장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에 반영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마케팅 전략을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와의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 준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풍부한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원의 언어는 클라이언트의 끄덕임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혼의 연구원이 만약 소비자의 일상을 꿰뚫어 보는 생생한 묘사와 함께 데이터를 풀어냈다면, 클라이언트 역시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어도, 우리 고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군요!”라며 감탄할 것이다. 결국, 조사결과의 설득력은 연구원이 소비자의 삶에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가를 보여주는 태도에서 완성된다.가끔 조사연구원이란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마치 타인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내 인생은 하나뿐인데 직업을 통해 매달 새로운 사람의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이번 달에는 이제 막 면허를 딴 20대 대학생의 설렘을 이해해야 하고, 다음 달에는 은퇴 자금을 굴리는 60대 가장의 불안감을 안아야 하며, 그다음 달에는 아이의 작은 발진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초보 엄마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조사가, 우리의 분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연구원의 진짜 자격은 직접 해본 물리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필요와 결핍에 깊이 주파수를 맞추는 ‘공감의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직접 경험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조사연구원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경험의 유무를 넘어서는 ‘이해의 기술’이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재구성하고, 검증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로 더 깊이 들어가는 태도.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 살아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삶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런 시대에서 조사연구원의 일은 세상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연결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번역의 출발점은 경험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는 집요한 호기심일 것이다._ 이완정_『외로움의 함정』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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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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