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Lounge_9] <왕과 사는 남자>로 배우는 공감 언어 능력의 필요
우리는 어떤 것을 가지고 ‘한국 사람’이라는 동질성을 느끼는 걸까?
얼마 전 끝난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를 함께 응원하는 모습일 수도, 해외에 나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태극기일 수도, BTS를 보려 해외에서 몰려오는 외국인들을 다룬 기사에서 느끼는 뿌듯함일 수도 있다.
결국, ‘한국 사람인 우리’라는 동질성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회와 문화의 공통적 체험이 아닐까 한다.
이 컬럼을 쓰는 지금 우리의 동질성을 아주 흠뻑 느낄 수 있는 공통체험으로 자리한 것이 있다. 바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다.
설날 연휴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배우들의 열연과 감동적 스토리, 그리고 학교에서 배웠던 가물가물한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서 전해지는 충격 등이 버무려진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계속 생각나는 한 대사가 있었다.
단종(노산군)이 수양대군을 치러 가기 위해 유배지를 벗어나는 장면에서 엄흥도와 나눈 대화이다. 단종은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자 엄흥도가 이렇게 묻는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아마도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이 대사가 참으로 감명 깊었나 보나. 어느 유력 정치인도 영화 관람 인터뷰에서 “‘저도 포함이 됩니까?’ 이 대목에서 저도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분명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를 평소 사용하는 언어였다면 ‘저도 거기에 포함됩니까?’일 것이다. 영화를 봤다는 지인 몇 명에게 물어보았는데 위의 정치인처럼 ‘포함’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대사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포함되다’와 ‘그 안에 있다’는 사실 의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단지 ‘포함되다’는 ‘포함하다’가 아닌 수동적 상태를 좀 더 강조하면서, 왠지 공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다시 말해 감정이 포함되지 않은 언어처럼 들린다.
이에 반해 ‘그 안에 있다’는 ‘있다’에 방점이 찍혀서, 수동적 상태보다는 능동적 의미의 표현으로 다가온다.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어라서 딱딱하거나 공식적인 표현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단어에 액센트를 넣느냐에 따라서도 감정을 실을 수 있는 표현이 된다.
실제로 이 대사를 말하는 유해진 배우의 얼굴을 보면 복잡한 심정을 담아 이 말을 꺼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온갖 감정이 모두 실린 대사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 컬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이 물음이 아닌, 물음에 대한 답으로 단종이 말하는 대사이다.
단종은 엄흥도가 “그 안에 저도 있습니까?”라 묻자, 연민, 고뇌, 슬픔, 고통, 무력함 등을 모두 담은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그대는… 아닌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대사는 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마도 “당연하지. 자네도 있네.”라거나, “물론 자네도 있네.”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물었으니 이에 대해‘YES’라고 밝히는 대답을 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종은 대답하지 않는다.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다.
단종과 엄흥도는 묻고 답하지 않고, 서로 묻는다. 그 물음에는 이미 모든 답이 있으니 굳이 ‘묻지도 따지도 않아도(?)’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종과 엄흥도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왕과 촌장이 아닌 인간으로서 두 사람의 대등한 관계, 서로를 아껴주는 관계, 그리고 앞날을 예견하면서 애틋함을 지닌 관계라는 것을 깊게 느끼게 된다.
관객들에게 어떤 장면, 어떤 대사보다 큰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두 사람이 나눈 언어의 힘이다. 어떤 언어를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언어가 지닌 공감력의 크기는 차이가 있다.

* AI 생성 이미지를 기반으로 작성
대학과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과학적 글쓰기이다.
가능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애매한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 글쓰기를 늘 염두에 둔다.
특히 신경쓰는 것은 가능한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숫자를 활용하여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근거를 반드시 밝히려고 애쓴다.
감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글쓰기는 일기나 에세이, 소설 등에서는 ‘지향’해야 할지 모르지만, 과학적 글쓰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보고서는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문득 그렇게 과학적 글쓰기의 신념에 맞게 정돈된 글을 읽다 보면 왠지 ‘너무 차갑기만 하고, 생활의 냄새도 나지 않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지울 수만은 없다.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연구원들은 팩트, 숫자, 객관성이 말해주지 않는 행간의 침묵을 읽어내는 심장도 함께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공감적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의 필요성도 그런 흐름에서 시작되었다.
조사회사 연구원의 책상은 대개 차가운 숫자로 가득하다. 시장 점유율의 상승폭, 브랜드 인식도의 변화율, 만족도 점수의 평균값이 결과의 형태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응답자는 사용자이자 소비자이지만, 그 이전에 한 명의 ‘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연구원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정답이라 믿어왔던 수 많은 숫자가 가두어 놓았던 말하는 존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한다.
숫자는 현상을 지시할 뿐, 그 현상을 만든 인간의 눈물이나 설렘, 망설임까지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연구원의 능력은 그 침묵하는 숫자들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복원해 내는 것, 즉 ‘타인의 목소리를 해석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복원의 도구는 엑셀 활용 능력보다는, 바로 연구원의 감성적이고 공감적인 언어 사용 능력이 될 것이다.
조사에서 공감 언어 능력이 전략적인 무기가 되는 이유는 조사란 결국 ‘묻고 답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응답자는 기계가 아니기에, 질문의 결에 따라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심층 인터뷰(FGI/IDI) 현장에서 연구원의 공감적 언어는 응답자의 경계심을 허물기도 한다.
“귀하의 소비 패턴은 어떠합니까?”라는 건조한 질문보다, “그 제품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라는 공감적 접근은 응답자의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진실을 끌어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응답자와 조사자가 서로 공감하는 상태를 ‘라포르(Rapport)’라고 하는데, 이 공감적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응답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응답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보니 사용자 만족도가 낮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팩트를 서술하면서 “사용자는 이 지점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는 공감적 해석을 붙인다면, 클라이언트는 비로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디에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가상적인 사례를 한번 함께 생각해 보자.
한 가전 기업으로부터 신형 세탁기 사용자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의뢰받은 연구원 최지안은 그동안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의 기대와는 달리, 30대 워킹맘들의 만족도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제품이었지만, 설문조사 결과 수치만으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최지안 연구원은, 응답자들의 개방형 응답에서 언뜻 보았던 ‘오후 4시’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최 연구원은 오후 4시를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뭔가 의미를 지닌 다른 단어로 해석해 보기로 했다. 사용자들에게 오후 4시의 의미가 어떤지 스스로 사용자가 되어 공감해 보기로 한 것이다.
주변 워킹맘에게 오후 4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걱정을 하는지, 그리고 만일 본인이 집에 있다면 오후 4시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워킹맘에게 오후 4시는 퇴근 전 업무가 몰아치면서도 아이의 하교를 걱정해야 하는, 가장 마음이 분주하고 죄책감이 고개를 드는 시간임을 알았다. 사용자의 상황과 공감대가 형성된 순간, 최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보고서 첫 페이지의 문장을 시작했다.
“이 제품은 빨래를 깨끗하게 빨아주지만, 오후 4시의 불안함까지 씻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탁 완료 알림’이 아니라, ‘오늘도 수고했다’는 정서적 지지였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이 문장에 감동했고, 단순한 기능 개선이 아닌, 감성적 UX 설계라는 새로운 전략을 기획하게 되었다.
공감 언어 능력을 갖춘 연구원은 조직과 클라이언트에게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구원은 분석가인 동시에 작가가 되는, 다시 말해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낼 때, 클라이언트는 보고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감적 언어는 딱딱한 제안서를 거부할 수 없는 한 편의 이야기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린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도 그 스토리텔러 연구원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가?”라고.
그때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만일 이 물음을 누군가에게서 듣는다면 등을 펴서 자신 있게 “그대는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기를.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