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Lounge_7] 답의 과잉 시대, 연구원의 실존적 무기인 의문력
이전 대학원에서 석박사 논문지도를 오랫동안 하면서, 박사나 석사라는 학업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무엇을 풀어내고 싶은가?”, 다시 말해 주제 선정을 너무나 어려워하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그때의 논문지도 경험을 토대로 『처음 쓰는 논문 쓰기』라는 책을 출간했고, 나름 논문작성법 분야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많은 고등학교에서 탐구보고서 쓰기 프로그램의 강의와 멘토링 의뢰가 들어온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많은 학생을 만나면서 대학원에서 만난 학생들과 같은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주제 잡기가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주제를 잡아야 하죠?”
우선 논문이든 탐구보고서든, 주제 잡기가 어려운 것은 궁금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 궁금증이 학문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문제의 정답 찾기에만 익숙해진 우리나라 학생들은, 스스로 풀어내고 싶은 의문을 만들고 이를 객관적,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의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대신 적응의 능력이 과대하게 발달한 탓이다.
의문력은 모든 것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의문하지 않는 사람, 사회, 시대는 퇴보하거나 정체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은 AI의 시대이다. 세계적인 석학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정답을 찾는 것은 AI가 대신할 것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AI시대의 의문력과 질문력의 필요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AI와 관련한 외국 과학자의 블로그 페이지에 쓰인 문구에 눈이 갔다.
Answers get cheaper, Questions are gold
직역하자면 ‘답을 찾는 대가는 점차 저렴해지지만, 의문은 금처럼 비쌀 것이다’가 되겠지만, AI로 인해 정답이 풍요로워질수록,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더욱 희소한 자원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문구를 보고 있자니 리서치 라운지 컬럼의 4회차와 5회차에서 인사이트 산업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서치 연구원은 새로운 의문과 과제를 생성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질문 설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글을 썼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친절하고도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손가락 끝에서 터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그리고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사한 생성형 AI가 단 몇 초 만에 정교한 답변을 내놓는 시대. "요즘 20대 여성의 비건 뷰티 트렌드를 분석해 줘"라는 요청에 AI는 수만 건의 데이터를 큐레이션하여 매끄러운 보고서를 출력한다.
답을 찾는 고통이 사라진 시대, 역설적으로 연구원의 존재 가치에 대한 서늘한 질문이 돌아온다.
“답이 이토록 흔해졌다면, 인간 리서처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답’이 아닌 ‘의문’에 있다. AI가 제공하는 것은 기성의 데이터가 조합된 ‘답변(Answer)’일 뿐,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해답(Solution)’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 연구원의 진정한 가치는 클라이언트가 던진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성실함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의문의 결여’를 지적하는 서늘한 통찰력, 즉 ‘의문력’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질문력과 의문력을 혼용하거나 혼동한다.
연구원에게 ‘질문력’은 지극히 도구적이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내비게이션과 같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능력으로, 설문지를 설계하고, 인터뷰 가이드를 짜고, 통계 모델을 돌려 상관관계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그러니까 질문력의 목표는 '정보의 획득'이며, 이는 숙련된 기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의문력’은 회의적인 자세에서 나오는 태도이다. 목적지 자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회의로 시작해서, 뻔해 보이는 풍경 뒤에 숨은 그림자를 응시하는 힘인 셈이다.
클라이언트가 "우리 제품의 재구매율이 왜 낮을까요?"라고 물을 때, 질문력은 재구매 의향을 묻는 설문을 설계하지만, 의문력은 “재구매율이 낮은 것이 정말 문제인가? 혹시 우리가 정의한 ‘고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연구원이 “MZ 세대는 왜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질문력일 것이다. 하지만 의문력이 있는 연구자는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충성도’라는 개념이 여전히 유효할까?”, “MZ 세대는 브랜드보다 ‘관계의 유연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의문력은 ‘질문을 다시 묻는 힘’이다. 질문력이 기존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기술이라면, 의문력은 지식의 방향 자체를 재설계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의문력의 목표는 ‘본질의 재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질문력은 매우 관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고, 의문은 혁신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런지 그럼 한 글로벌 음료 기업 사례를 들어 생각해 보자.
[CASE A] 질문의 관성에 갇힌 리서치: “무엇을 더 넣어드릴까요?”
신제품 기능성 음료 출시를 앞둔 기업이 있었다. 클라이언트는 연구원에게 ‘맛’과 ‘성분’ 중 무엇이 구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연구원은 성실하게 질문력을 발휘했다. 수천 명을 대상으로 “단맛이 부족한가요?”, “패키지 디자인이 고급스러운가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조사결과는 완벽했다. 응답자의 70%가 '건강한 단맛'을 원한다고 답했고, 이를 반영해 기업은 그에 맞춘 신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어땠을까? 소비자는 냉담했다. 소비자는 설문지 위에서는 ‘건강’을 선택했지만, 실제 편의점 가판대 앞에서는 ‘자신의 기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질문은 정확했으나, 소비자의 무의식에 대한 ‘의문’이 없었던 연구원의 전형적인 패배였다.
[CASE B] 의문력을 발휘한 리서치: "왜 마시는 척하는가?"
반면, 의문력을 중시한 다른 연구원은 전혀 다른 접근을 취했다. 그는 클라이언트가 준 ‘맛의 선호도’라는 프레임을 깨보기로 한다. 그래서 그는 소비자들이 해당 음료를 마시는 현장을 관찰하며 한 가지 기묘한 지점에 의문을 품었다.
“사람들은 왜 이 음료를 마실 때 상표를 손으로 가릴까?”
이 의문은 질문을 “맛이 어떤가?”가 아니라 “이 음료를 든 당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지길 원하는가?”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이 음료를 ‘건강을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구매한다는 과시적 동기를 찾아냈다. 이 의문력 덕분에 기업은 맛을 개선하는 대신 패키지를 패션 아이템처럼 다시 디자인했고, 제품은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했다.
자 그럼 AI가 넘볼 수 없는 의문력을 지닌 연구원이 되려면 어떤 사고법을 익혀야 할까?

첫째, 가설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회의주의자란 뜻의 ‘스켑틱(skeptic)’이란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세상 모든 주장을 일단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훌륭한 연구원은 클라이언트의 가설을 증명해 주는 지원군이 아니라, 그 가설을 가장 집요하게 공격하여, 집단적 사고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구성원 중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A 브랜드는 고가 정책 때문에 실패했다”라고 믿을 때, “정말 가격 때문인가? 혹시 '비싸서'가 아니라 '비싼 만큼의 권위'를 보여주지 못해서는 아닐까?”라는 의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데이터의 침묵을 읽어내는 힘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진실을 말하지도 않는다.
80%의 만족도라는 수치 뒤에 숨은 20%의 강력한 거부감, 혹은 ‘보통이다’라고 응답한 대다수 속에 숨겨진 ‘귀찮음’과 ‘무관심’을 읽어내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의문력만이 가능하다.
셋째, 파편화되어 존재하는 데이터의 맥락(Context)을 재구성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는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맥락 속에 산다. “왜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편의점 디저트 매출을 올리는가?”라는 모순된 현상 앞에서 의문력은 빛을 발한다. 이는 단순한 구매 데이터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과 보상 심리라는 맥락을 꿰뚫는 의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원은 의문력을 길러야 한다. 의문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함양할 수 있는 사고 습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훈련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먼저 몸에 익혀야 할 것은 ‘다시 의문하고 질문하기’이다. 의문이 생기고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이 의문과 질문은 정말 의미 있는가?”, “이 의문과 질문이 다루지 못하는 전제가 있는가?”를 되묻는 습관을 지니자.
맥락 읽기 연습도 해야 할 것이다. 조사에서 도출한 통계적 수치들을 해석할 때는 숫자 이면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함께 탐색해야 하며, 데이터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관점 전환의 연습도 했으면 한다. 같은 문제를 클라이언트, 소비자, 사회, 혹은 AI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습은 어떨까. 다양한 시점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요즘 들어 AI 시대의 연구원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데이터 수집가’에서 ‘관점 설계자’로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AI가 넓디넓은 정답의 바다를 만들어준다면, 연구원은 그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본질을 건져 올리는 잠수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연구원의 진짜 업(業)은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굳어버린 사고 체계에 균열을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균열의 틈새로 새로운 기회가 흐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의문력’일 이다. 답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더 깊게, 더 집요하게, 더 본질적으로 의문하는 사람.
나는 과연 그런 리서치 연구원인지를 되물어볼 일이다.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