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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8] 낡은 시간의 무덤에서 피어난 힙한 유토피아_동묘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예전에는 뻔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박스를 깔고 앉은 어르신들, 산더미처럼 쌓인 낡은 옷가지, 그리고 “골라 골라, 무조건 오천 원!”을 외치는 투박한 목소리. 젊은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거리였다. 그런데 요즘의 동묘는 다르다. 옷더미 옆으로 와이드 팬츠를 입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나비 자수가 놓인 청바지를 걸치고, 헌팅캡을 눌러쓴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해 골목 한켠에서 포즈를 취한다. 손에는 천 원짜리 토스트와 어쩌면 조금 전 삼천 원에 흥정한 선글라스가 들려 있다.숫자로도 변화는 선명하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5월, 데이트 장소 검색어에서 ‘동묘’가 처음으로 ‘성수’를 앞질렀다. 한때 성수의 절반 수준에 머물던 검색량이 어느 순간 역전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동묘’ 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60만 건을 넘어섰고, “성수보다 동묘”란 말은 이제 밈처럼 퍼지고 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가 줄지어 올라오고, 사람들은 그 브이로그 속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무언가 달라졌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보여주는 심리적 지형도에 가깝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묘는 탑골공원의 연장선이라 불렸다. 어르신들의 벼룩시장, 혹은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 속 비밀스러운 쇼핑 장소로만 소개되던 공간이었다. 그랬던 곳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세대의 문화 해방구가 되었다. 이 극적인 반전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낡은 골목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단지 값싼 물건 때문이라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이 이미 넘치도록 존재하는 시대에 굳이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화면 너머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셈이다.* AI 생성 이미지먼저 눈에 띄는 변화 하나. 예전 동묘의 상징이었던 가격 흥정이 요즘은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좌판에 가격표가 붙고, 정찰제가 자리 잡으면서 상인과 손님이 침 튀기며 실랑이하던 풍경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몰려든다. 이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동묘를 찾는 이유가 싸게 사는 쾌감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크게 반응한다. 백화점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상품을 사는 것과 옷더미를 헤집어 브랜드 로고를 찾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경학적 경험이다. 후자에는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라는 불확실성이 있고, 그 불확실성을 뚫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은 훨씬 강렬할 것이다. 요즘 동묘를 찾는 청년들 사이에서 이 행위는 이미 이름을 얻었다. 게임 용어를 빌려온 ‘파밍(farming)’, 원하는 것을 캐낸다는 뜻의 ‘디깅(digging)’, 혹은 그냥 ‘보물찾기’로 말이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 행위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는 증거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물찾기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경험의 서사화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돌아간다. “삼천 원에 이런 걸 건졌다!”라는 말은 단순한 득템 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안목과 운, 그리고 노력을 증명하는 하나의 무용담이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예측하고 추천해주는 시대에, 스스로 헤매고 골라내는 경험은 오히려 희소해지고 있는데, 동묘는 그 희소해진 경험을 값싸게 되돌려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된 셈이다.동묘 현상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리커머스(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 원 규모에서 2025년 43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소비자의 심리적 셈법도 정교해졌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꼽은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라는 말은, 소비자가 가격표 뒤에 숨은 가치를 스스로 해독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비싼 것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이 가격에 이 정도 만족이면 합리적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한다.그런데 여기서 사회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서 동묘를 찾는 청년들의 언어를 들어보면 ‘싸다’라는 말보다 ‘힙하다’라는 말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 인터뷰에서 20대 방문객은 “데이트 비용만 저렴한 게 아니라 힙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절약과 자존감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이 세대가 스스로 개발해낸 새로운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과거에는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이 궁핍함의 표시로 여겨질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싸게, 그러나 안목 있게’ 사는 것이 오히려 세련됨의 표시가 되었다. 절약이 부끄러움의 영역에서 자부심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자기 효능감을 지키려는 인간의 매우 건강한 심리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동묘가 힙한 공간으로 떠오른 이유를 이야기할 때, 성수동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수는 지난 몇 년간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팝업스토어의 격전지였다. 브랜드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벽하게 기획된 공간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함이 오히려 피로감을 낳기 시작했다. 모든 공간이 누군가에 의해 세심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는 감각, 내가 발견한 것이 사실은 마케팅팀이 발견하게끔 설계해둔 것이라는 자각이랄까. 이렇게 상업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공간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진짜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작위성의 감각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동묘는 성수가 뿜어내는 일종의 작위성,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이곳은 누구도 기획하지 않았다. 노점상과 청년 셀렉숍 점포가 나란히 존재하고, 지직거리는 트로트 가락 옆에서 힙한 패션의 청년이 옷더미를 뒤진다. 이 무질서함과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동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사람들이 동묘에서 찍은 사진에는 연출의 흔적이 없다. 낡은 간판, 색 바랜 라디오, 백발의 노신사가 우연히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인스타그램 시대의 청년들이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는 것, 즉 보정되지 않은 진정성이 담긴 삶의 풍경이다.흥미로운 점은 이 진정성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타인의 존재에서 온다는 점이다. 동묘의 매력을 언급한 방문객들의 인터뷰에는 공통적으로 ‘중장년층과 함께 있다는 감각’이 등장한다. 세대가 분리되지 않은 거리, 노년과 청년이 같은 골목을 걷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정서적 자원이 된다. 우리는 나이대별로, 취향별로, 소비수준별로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 카페는 카페대로, 백화점은 백화점대로 암묵적인 연령 코드가 있다. 그런데 동묘에는 그 경계가 없다. 이 낯선 혼재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동묘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소비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고 LP판, 필름 카메라, 낡은 라디오, 옛날식 토스트와 미숫가루.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의 20대가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낡은 사물들 앞에서 향수를 느낀다.이를 심리학에서는 ‘매개된 노스탤지어(mediated nostalgia)’ 혹은 ‘대리 향수’라고 부른다. 직접 겪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도 미디어와 이야기를 통해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 콘텐츠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된 레트로 이미지들이 실제 기억이 없는 세대에게도 그리움의 감정을 이식한 것이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패션 스타일링의 방식이다. 동묘를 찾는 청년들은 정형화된 브랜드 룩이 아니라,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낸다. 나비 자수 청바지에 호피 무늬 상의, 그 위에 헌팅캡. 이것은 어느 매장에서도 세트로 팔지 않는 조합이다. 마치 주어진 재료를 이리저리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일컫는 ‘브리콜라주(bricolage)’와 같은 스타일링 방식이다.알고리즘 기반의 쇼핑 플랫폼은 우리에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끊임없이 예측해 들이민다. 편리하지만, 동시에 이는 개인의 취향을 점점 평균화하고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가두는 효과를 낳는다. 이와 다르게 동묘의 옷더미 앞에서는 어떤 알고리즘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눈과 손으로 골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정체성의 감각을 확인받는다.정말 많은 이유로 동묘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힙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조금 더 근원적인 사회적 요인을 찾아보자면 역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연이 주는 위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지금 청년 세대는 취업, 주거, 미래 설계 전반에서 극도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감각, 계획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대적 피로감.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우연을 원하게 된다.동묘의 옷더미는 통제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작은 세계다. 무엇을 고를지, 얼마나 오래 뒤질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손에 넣을지, 이런 이 모든 결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작은 결정들이 쌓여 예상치 못한 만족으로 이어질 때, 사람들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효능감을 되찾는다. 커다란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삼천 원짜리 셔츠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안목과 운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 작은 승리들이 모여 하루의 기분을 바꾸고,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조금은 회복시켜준다.동묘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의 이동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고물가 시대의 합리적 소비 심리, 큐레이션된 세계에 대한 피로와 진정성에 대한 갈증, 세대 간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 대한 안도감, 경험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한 대리적 그리움, 알고리즘을 벗어난 자기표현의 욕구, 낯선 동선을 함께 걷는 이들과의 은근한 연대감, 그리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작은 통제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까지.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심리적 흐름이 겹겹이 쌓여 있다.* AI 생성 이미지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편리함을 소비의 최고 가치로 여겨왔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물건이 다음 날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 취향마저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주는 시대.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굳이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동묘는 그 편리함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에어컨도 없는 골목에서 땀을 흘리며 옷더미를 뒤지고,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는 날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느라 잃어버린 무언가—땀 흘려 발견하는 기쁨, 예측할 수 없는 만남, 몸으로 부딪히며 얻는 감각적 경험—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흥미로운 것은 동묘 자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옷더미는 여전히 옷더미고, 토스트는 여전히 천 원이다. 관우를 모신 유서 깊은 사당도,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락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오히려 이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며, 그 시선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지금 무엇에 지쳐 있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 세대가 열광할 또 다른 동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을지 모른다. 그곳이 어디가 되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풍경, 예측할 수 없는 우연, 그리고 그 우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낯선 이웃들. 다음에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나설 일이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낯선 온도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옷더미를 뒤지는 그 손끝에, 어쩌면 우리 시대가 가장 절실히 찾고 있는 것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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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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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7] 타인의 삶을 읽어내는 '간접경험'의 마법

요즘 <참교육>이란 드라마가 여러모로 화제다. 글로벌 수준의 인기도 화제이고, 교권보호국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도 화제고, 실제 교육 현장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도 화제다. 이런 화제에 이끌려 드라마의 보게 되었는데, 학부모의 갑질이 에피소드인 편을 보다가 갑자기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애 있어요? 아이는 낳아 봤어요?”라고 했다는 막말이 생각났다.‘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부모 마음을 헤아려 학생들을 교육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의 이 막말은 경험하지 못했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아주 오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조사 업계에 입문해 새내기 조사연구원의 때를 벗었다고 생각한 입사 2년 차의 어느 날, 분유 제품 관련 마케팅 조사에 합류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 진행된 회의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클라이언트는 참여 연구원 명단을 보다가 눈을 들어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아직 결혼도 안 한 미혼이라서 육아 경험도 없는데, 분유 제품에 대해 좀 아시나요? 아무래도 이런 조사를 하려면 육아 경험이 있는 연구원이 이해도가 높을 거 같은데.”물론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하는 선배 연구원들은 모두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니 그 자리에서는 그냥 반농담의 분위기로 넘어가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정성조사도 포함되는 프로젝트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시 육아 경험이 있으면 훨씬 생생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조사결과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무래도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경험을 활용한 장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회의가 끝나고 저녁을 먹다가 선배 한 분에게 회의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난 얼마 전에 기저귀 제품 조사에 참여했잖아. 그때 아무래도 내가 직접 제품을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아서 기저귀를 차고 있었던 적도 있었어. 직접 경험을 해보니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긴 하더라.”2026년 오늘과는 달리, 1980년대나 1990년의 조사 현장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공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조사연구원 사이의 일종의 기싸움이라고나 할까. 특히 조사 주제나 대상과 관련된 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렵기도 했다. 조사결과의 숫자는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과연 소비자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경험에 기반한 정보와 지식을 조사연구원이 갖추고 있는가를 탐색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았다. 그때 조사연구원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듣던 뼈아픈 피드백 중 하나는 바로 “현실을 모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사연구원의 경험이 없느니 현실을 모를 테고, 그런 연구원이 만든 보고서는 신뢰하기 어려우니 가능하면 경험이 있는 연구원을 투입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그 시절의 기준에서 보면, 조사연구원의 전문성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봤는가’에 더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기준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어떤 제품을 쓰고, 어떤 상황을 겪고, 어떤 감정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하지만 2026년의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조사연구원은 정말로 모든 것을 살아본 사람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다루는 시장은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알콜·저도주 시장을 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술을 안 마시는 선택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여기에는 건강, 자기관리, 사회적 이미지, 관계의 방식까지 다양한 의미가 얽혀 있다.이 시장을 조사할 때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연구원이 더 적합하다”라거나 “실제로 음주 문화를 경험한 연구원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구분은 현실적이지 않다.왜냐면 이 시장은 단순히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OTT 콘텐츠 소비도 마찬가지다.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헤비 유저의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서는 오히려 “왜 끝까지 보지 않는가?”, “왜 추천 콘텐츠를 무시하는가?”, “왜 구독을 해지하는가?”와 같은 비경험 혹은 중단의 경험이 더 중요한 인사이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AI 서비스 역시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용자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 사이에는 단순한 사용 빈도의 차이를 넘어, 기술에 대한 신뢰, 통제감, 그리고 자기 효능감에 대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이때 조사연구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직접 헤비 유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용자 집단의 경험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이해하느냐다.이처럼 오늘날의 시장은 ‘경험의 유무’보다 ‘경험의 해석’이 더 중요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그렇다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현실적으로 조사연구원이 모든 소비자 삶을 살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시니어 시장이나 특정 질환 관련 헬스케어 시장처럼, 생애주기나 신체적 조건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시니어 대상 디지털 서비스 조사를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젊은 연구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화라는 경험 자체를 완전히 체화할 수는 없다. 결국, 조사연구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직접 해보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은 세계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바로 깊고 다정한 ‘간접경험’이 필요하다.그렇다면 노화를 경험하지 못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조사연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간접경험을 쌓고 활용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걸까? *AI생성 이미지우선, 활자 너머의 감정에 접속하는 ‘디지털 인류학자’가 되어보아야 한다. 요즘은 소비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너무나 많다. 맘카페, 익명 커뮤니티, 브이로그(Vlog),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들은 거대한 인류학적 관찰의 장인 셈이다. 조사연구원은 단순히 ‘어떤 헬스 케어 제품이 많이 언급되는가’를 크롤링(Crawling)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벽 3시에 맘카페에 올라온 “애가 분유를 토하는데 어떡하죠 ㅠㅠ”라는 글을 읽으며, 화면 너머 어머니의 떨리는 손과 초조한 마음을 함께 느껴야 한다. 텍스트 사이에 배어 있는 불안, 기쁨, 안도감을 채집하는 것이 간접경험의 첫걸음이다.두 번째는 일상을 연구실로 만드는 ‘미시적 관찰’을 평소 몸에 익혀야 한다. 마트에 갔을 때 분유 코너에서 엄마들이 분유통을 집어 들고 가장 먼저 어디를 보는지(영양 성분표인지, 원산지인지, 아니면 가격표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검색하며 비교하는지를 조용히 관찰해보자. 때로는 지인의 육아 현장에 방문해 분유를 타는 과정을 지켜보고, 젖병을 흔들 때 손목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물 온도를 맞추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보자. 이러한 미시적 관찰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것 못지않은 강력한 잔상을 남길 것이다.세 번째는 이종(異種) 경험을 결합해 보고 유추하는 연습이다. 분유를 타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지극히 돌보며 애태워본 경험들이 있다. 반려동물이 아파서 밤새 간호하며 가장 좋은 사료를 찾았던 경험, 혹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성분을 꼼꼼히 따져 영양제를 고르던 경험처럼. 결국, 절대적인 사랑과 책임을 담아 누군가의 먹거리를 고르는 마음이라는 본질은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가진 다른 영역의 짙은 경험을 조사 주제에 투영하고 유추하는 능력, 이것이 훌륭한 연구원이 간접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이렇게 쌓여서 활용되는 간접경험은 그럼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이렇게 정성껏 쌓아 올린 간접경험은 그저 연구원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보고서라는 결과물에 어떻게 해서든 녹여내야 한다.우선 연구원들은 간접경험을 숫자에 체온을 더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야 한다. 데이터가 “A 브랜드 분유의 물에 잘 녹는 용해도에 대한 만족도가 45%로 1위입니다”라고 말할 때, 간접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이 문장을 그대로 보고서에 쓰겠지만, 간접경험을 깊이 쌓은 연구원은 아마도 다르게 쓸 것이다. 아래의 경우처럼.“새벽 3시, 잠투정하는 아이를 한쪽 팔로 안고 남은 한 손으로 분유를 타야 하는 엄마들에게 용해도는 단순한 기능이 아닙니다. 덩어리진 분유를 흔들어 녹이느라 아이의 울음이 길어지는 1분 1초는 엄마에게 죄책감과 스트레스입니다. A 브랜드는 스르르 녹아내리는 용해도를 통해 새벽 육아의 고단함을 덜어주었고, 이것이 만족도 1위의 진짜 이유입니다.”이렇게 숫자에 소비자의 체온과 땀방울을 더할 때, 조사결과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두 번째로는 조사결과에서 ‘What’을 넘어 ‘Why’를 찾아내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간접경험은 데이터의 이면을 보게 한다. 설문조사에서 유기농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더라도, 실제 매대에서는 가격 할인을 하는 일반 분유가 잘 팔리는 현상(What)을 마주했을 때, 연구원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깊이 이해한 연구원은 그 간극(Why)을 읽어낼 수 있다. 아이에게 최고만 주고 싶은 엄마의 이상과 팍팍한 가계부라는 가장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에 반영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마케팅 전략을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와의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 준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풍부한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원의 언어는 클라이언트의 끄덕임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혼의 연구원이 만약 소비자의 일상을 꿰뚫어 보는 생생한 묘사와 함께 데이터를 풀어냈다면, 클라이언트 역시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어도, 우리 고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군요!”라며 감탄할 것이다. 결국, 조사결과의 설득력은 연구원이 소비자의 삶에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가를 보여주는 태도에서 완성된다.가끔 조사연구원이란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마치 타인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내 인생은 하나뿐인데 직업을 통해 매달 새로운 사람의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이번 달에는 이제 막 면허를 딴 20대 대학생의 설렘을 이해해야 하고, 다음 달에는 은퇴 자금을 굴리는 60대 가장의 불안감을 안아야 하며, 그다음 달에는 아이의 작은 발진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초보 엄마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조사가, 우리의 분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연구원의 진짜 자격은 직접 해본 물리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필요와 결핍에 깊이 주파수를 맞추는 ‘공감의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직접 경험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조사연구원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경험의 유무를 넘어서는 ‘이해의 기술’이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재구성하고, 검증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로 더 깊이 들어가는 태도.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 살아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삶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런 시대에서 조사연구원의 일은 세상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연결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번역의 출발점은 경험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는 집요한 호기심일 것이다._ 이완정_『외로움의 함정』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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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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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7] 다시, 띠부씰_어른인 우리가 여전히 봉지를 뜯는 이유

편의점 매대 앞에서 봉지를 슬쩍 눌러보는 손이 있다. 눈은 진열대를 훑고, 손끝은 봉지 속 얇은 스티커 한 장의 두께를 가늠한다. 그 손의 주인은 열 살 아이가 아니다. 서른을 넘긴,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이다. 2026년 상반기, 포켓몬스터 탄생 30주년을 맞아 다시 불붙은 포켓몬빵 열풍 속에서 우리는 낯익은 풍경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부모님을 졸라 빵 하나를 겨우 얻어냈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손으로 카드를 긁어 박스째 사들이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뿐이다.지금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이천 원대에 팔리던 빵 속 스티커 한 장이 몇 만 원, 몇 십만 원을 호가하며 올라와 있다. 인기 있는 뮤츠 띠부씰은 육만 원대, 뮤는 이만 원대, 리자몽은 만 원대에 거래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제품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 숫자들은 단순한 품귀 현상을 넘어, 사람들이 이 작은 스티커 한 장에 얼마나 큰 마음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스페셜 에디션은 포켓몬 오리지널 아트 디렉터의 손길을 담은 백 종의 띠부씰을 랜덤으로 담았고, 함께 출시한 띠부씰북은 예약이 시작된 지 단 일 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서울숲에서 열린 포켓몬 메가페스타 행사장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경찰이 통제에 나설 정도였고, 그 줄의 상당수는 어린이가 아닌 이십 대와 삼십 대였다.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손에 넣으려 한 것은 다름 아닌 카드 한 장, 스티커 한 장이었다.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체 왜, 이 작은 종잇조각 하나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걸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향수다. 지금 삼십 대와 사십 대 초반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포켓몬스터가 처음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던 그 시절을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백 원짜리 뽑기를 돌리던 손끝의 긴장감,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 속상해하던 마음, 친구와 서로의 스티커북을 펼쳐 보이며 부러워하던 오후의 공기까지도. 그 시절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몸 어딘가에 접혀 보관되어 있다가,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매대 앞에 선 순간 조용히 펼쳐진다.흥미로운 것은 이번 30주년 에디션이 이 감정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게임 패키지와 카드 일러스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오리지널 아트워크로 스티커를 채운 것은, 지금의 수집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을 함께 불러오려는 기획이었다. 그리고 이 기획은 정확히 통했다. 사람들은 단지 새로운 캐릭터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 한 페이지를 다시 사는 기분으로 지갑을 열었다. 그야말로 추억이라는 이름의 타임캡슐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AI 생성 이미지여기에 경제력이라는 변수가 더해진다. 그 시절엔 마음뿐이었지 지갑은 얇았다. 엄마 아빠를 붙잡고 빵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게 전부였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번 돈으로 한 박스, 두 박스를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가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작은 해방감이 지갑을 여는 손을 더 가볍게 만든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어른이 된 지금 스스로 채워주는 셈이다. 이는 키덜트 문화 전반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유가 생긴 어른이 자기만의 세계를 다시 짓고, 그 세계 안에서 잠시나마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숨을 고르는 것이다.하지만 향수와 경제력만으로 띠부씰 열기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띠부씰이 가진 힘의 절반은 수집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수백 종의 캐릭터가 무작위로 봉지 안에 숨어 있고, 어떤 것이 걸릴지는 뜯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이 불확실성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끌어당긴다.하나를 얻으면 다음 하나가 궁금해지고, 열 개를 모으면 완성까지 남은 빈칸이 눈에 밟힌다. 도감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가는 그 과정 자체가 작은 성취감을 준다. 오늘 하루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더라도, 스티커북의 빈칸 하나를 채웠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손에 잡히는 성취로 남는다.여기에 희소성이 불을 지핀다. 한정된 시기에만 판매되고, 한 번 단종되면 다시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낳는다. 실제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리셀 시장의 과열은 이 조바심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원가로 따지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스티커가 수만 원, 수십만 원에 거래되는 것은, 그 스티커 자체의 가치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놓쳐 버릴지 몰라!”라는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그리고 이 수집이라는 행위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SNS와 커뮤니티에는 오늘 뽑은 스티커를 자랑하거나, 서로 중복된 스티커를 교환하자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낯선 이와 스티커 한 장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원하는 캐릭터를 손에 넣은 순간을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을 찾는다. 포켓몬이라는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감정으로 연결된다.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포켓몬이 30년 동안 쌓아 올린 IP 생태계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카드, 굿즈를 넘나들며 소비자를 계속해서 그 세계 안에 붙잡아 두었고, 그 결과 포켓몬의 누적 수익은 세계 IP 가운데 최상위권으로 집계될 만큼 거대해졌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결국 스티커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여기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왜 하필 지금, 이렇게 많은 어른이 작은 스티커 한 장에 이토록 마음을 쏟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향수도 있고 수집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 안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결의 마음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외로움이다.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들고, 혼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늘어난 시대다. 함께 웃고 떠들 사람이 곁에 없는 저녁, 손안의 작은 봉지 하나를 뜯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기쁨이 찾아온다. 원하던 캐릭터가 걸렸을 때의 그 짧은 환호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벅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개인적인 기쁨은 곧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낯선 이들과 이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의 수확을 올리는 순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중복된 스티커를 나누자며 말을 걸어온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들기 어려운 잔잔한 연결이, 이 작은 스티커 한 장을 매개로 스며들듯 생겨나는 것이다.키덜트 문화를 오래 관찰해온 이들은 이 현상의 배경으로 정서적으로 의지할 대상에 대한 갈구를 자주 언급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관계가 얇아진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두렵고, 그 두려움과 부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어린 시절의 상징들을 다시 찾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행위는 어쩌면 그런 마음의 작은 도피처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관계와 성과, 책임으로 가득한 하루 끝에, 규칙이 단순하고 결과가 명확한 이 작은 놀이 안에서만큼은 마음 편히 몰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봉지를 뜯고, 캐릭터를 확인하고, 도감의 빈칸을 채우는 이 반복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를 다독여주는 의식이 된다.디지털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에, 손에 잡히는 종이 한 장이 주는 위안도 무시할 수 없다. 화면 속 알림과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누군가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런 시대에 손끝으로 만지고, 붙였다 뗄 수 있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아날로그의 물건 하나가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스티커북을 넘기며 오늘 하루 모은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완성해가고 있다는 감각, 혼자여도 괜찮다는 감각을 조용히 얻는다.결국, 포켓몬 띠부씰 열풍은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 갖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가질 수 있다는 작은 해방감, 빈칸을 채워가는 성취의 기쁨, 그리고 낯선 이들과도 스티커 한 장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은근한 연결감까지. 그 모든 마음의 밑바닥에는 조금 외로운, 그래서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우리의 진짜 얼굴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편의점 매대 앞에서 봉지를 슬쩍 눌러보는 그 손을,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유치한 소비도, 철없는 행동도 아니다. 바쁘고 팍팍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설렘을 느끼고 싶은 마음, 혼자인 시간을 조금 덜 외롭게 채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릴 적 그 순수했던 감정을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다. 30년 전 그 시절의 우리와, 지금 봉지를 뜯는 우리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스스로 알아채고,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그러니 오늘 저녁, 편의점 매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봉지 하나를 집어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그저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작은 위로 하나를 사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누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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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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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6] 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의 문제, 조사회사의 지향점

리서치 라운지 컬럼을 쓰기 위한 정보를 찾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곳들이 있다. ‘일본마케팅리서치협회’가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일본마케팅리서치협회는 마케팅리서치회사가 모여서 마케팅리서치의 건전한 발전과 보급, 윤리 확립을 목표로 1975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이 협회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창립 50주년을 맞아 2025년 추진한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인터넷조사의 미래를 위한 대응’이었고, 이를 위해 ‘인터넷조사품질위원회’를 만들어 대응방안을 모색하여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2026년 1월 “조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인터넷조사 지속가능성 선언(調査の未来を守るために:インターネット調査サステナブル宣言)”이라는 발표자료를 공개했다.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한 배경은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인터넷 조사라고 부르는 온라인 조사의 품질이 저하되는 현재 상황에서 조사회사와 의뢰기업 모두, 품질저하에 조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조사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한때 온라인 조사는 가장 효율적인 조사 방식처럼 보였다. 빠르고, 저렴하고, 넓게 닿을 수 있었다. 응답자는 클릭 몇 번으로 의견을 전했고, 조사회사는 짧은 시간 안에 수백, 수천 개의 데이터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조사를 의뢰한 기업이나 기관도 빠르게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이렇게 시장이 요구한 것은 속도였고, 온라인 조사는 그 요구에 정확히 응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편리함이 오히려 새로운 고민을 낳고 있다. 응답자는 점점 줄어들고, 응답은 점점 가벼워지며, 데이터의 표면은 풍성해 보이는데 그 안의 밀도는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로 인해서 온라인 조사의 품질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조사패널의 규모도 축소되고, 패널 중 1년 이상 유지율도 떨어지고, 게다가 응답률 자체가 낮아지는 통계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통계 결과는 모두 품질저하를 의미하는 숫자가 된다.흔히 온라인 조사의 품질 저하 문제를 단순하게 ‘설문에 성의 없이 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축소하면 품질 저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왜냐하면 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는 조사 환경 전체가 바뀌면서 생긴 구조적 변화에 가깝기 때문이다.온라인 조사 응답률이 낮아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피로감이다. 예전에는 설문이 비교적 드물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여러 채널에서 수많은 참여 요청을 받는다. 이메일, 문자, 앱 푸시, 커뮤니티, SNS, 패널 플랫폼까지 채널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설문은 일상의 배경음처럼 되어 버렸다. 매번 새롭고 중요해 보이기는 어렵다. 응답자 입장에서는 “이 설문도 결국 비슷하겠지”라는 무심함이 먼저 올라온다.두 번째는 보상의 인플레이션이다. 설문 참여가 하나의 노동으로 인식되면서 보상은 점점 더 강한 유인책이 되어 왔다. 하지만 보상이 커질수록 참여의 질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상만 보고 들어오는 응답자가 늘면, 목적에 대한 이해나 주제에 대한 관심이 약한 상태에서 응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응답률은 잠시 오를 수 있어도 데이터 품질은 떨어질 수 있다.세 번째는 모바일 환경의 습관화된 성급함이다. 대부분의 응답은 스마트폰에서 이뤄지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나지 않는 작업에 쉽게 이탈한다. 길고 복잡한 설문, 반복 질문, 불필요한 서술형 문항은 응답자의 집중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온라인 조사에서는 내용보다 먼저 경험이 평가된다. 설문이 불편하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네 번째는 응답의 진정성 저하다. 응답자들은 설문을 ‘의견을 전달하는 일’보다 ‘빨리 끝내야 하는 과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선적으로 체크하고, 비슷한 문항에는 같은 번호를 반복하며, 중간에 논리적 모순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더 심한 경우에는 자동응답, 중복응답, 성의 없는 랜덤 클릭 같은 문제가 섞인다. 온라인 조사에서 품질 저하는 단순한 불성실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유인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AI생성 이미지이러한 상황에서 조사회사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대응은 데이터를 더 많이 모으는 것보다, 덜 망가진 데이터를 가려내는 것이다. 즉, 수집 단계에서의 양적 확대보다 품질 관리 단계가 중요해진다. 대표적인 방법은 주의력 검사 문항, 응답 시간 기준, 직선 응답 패턴 탐지, 중복 식별, 논리 검증 문항 등을 활용해 이상 응답을 걸러내는 것이다. 이는 이제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기본 위생에 가까워졌다.또 하나의 변화는 패널 관리의 정교화다. 예전에는 대규모 패널 DB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패널의 활성을 얼마나 유지하고, 어떤 대상에게 어떤 빈도로, 어떤 조건에서 조사 요청을 보낼지 세밀하게 관리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무조건 많이 보내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응답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세분화하고, 피로 누적을 줄이고, 조사 이력과 참여 성향을 반영해 타게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이다. 응답자를 하나의 숫자로 보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데이터를 만들어 가는 협력자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조사 요청 빈도를 줄이고, 참여 이력을 존중하며, 응답자의 시간을 귀하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응답 품질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대우받는 방식에 따라 응답한다. 온라인 조사라고 해서 이 원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현장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대응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첫째, 설문을 짧게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 조사에서는 길이가 곧 품질과 직결된다. 꼭 필요한 문항만 남기고, 반복 질문을 줄이며, 응답자의 인지 부담을 최소화하는 설계가 중요하다. 짧은 설문이 반드시 얕은 설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덜 묻고 더 정확하게 묻는 것이 좋은 조사일 수 있다.둘째, 모바일 최적화다. 문항 구조, 버튼 크기, 스크롤 동선, 보기 배열, 진입 설명, 종료 메시지까지 모두 모바일 기준으로 점검해야 한다. 응답자는 조사 플랫폼의 미학보다 사용성을 먼저 체감한다. 특히 작은 화면에서 복잡한 매트릭스 문항은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된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문항 하나하나가 응답자의 체력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셋째, 사전 테스트와 파일럿 조사다. 조사 설계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응답자가 어떤 문항에서 멈추는지, 어떤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디서 흐름이 끊기는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조사의 품질은 파일럿에서 드러나는 작은 불편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넷째, 보상과 참여 동기의 균형이다. 보상은 필요하지만, 보상만 강조하면 설문은 거래로 축소된다. 왜 이 조사가 필요한지, 응답자의 의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참여자는 숫자가 아니라 이유에 반응한다. 설문 앞부분의 초대 문구, 조사 목적 설명, 예상 소요 시간 안내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참여 동기를 설계하는 장치다.다섯째, 품질 필터링의 자동화다. 응답 시간, 응답 일관성, IP·기기 중복, 패턴 이상, 오픈엔드 텍스트의 유사도 등을 점검해 이상치 후보를 자동 분류하는 방식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이 과정은 너무 강하게 적용하면 실제 의견까지 제거할 수 있으므로, 기계적 배제보다 사람의 검토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그렇다면 앞으로 조사회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대응은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더 많이 응답을 받느냐”보다 “어떻게 더 믿을 수 있게 하느냐”다.우선, 조사의 목적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응답자는 자신이 왜 이 설문을 받아야 하는지, 이 조사에 참여하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기업의 내부 필요만 선명하고 응답자 가치가 불분명하면, 설문은 쉽게 피로한 요청으로 전락한다. 조사 목적을 짧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이제 설계의 일부다.둘째, 응답자 중심 설계가 필수다. 문항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질문의 흐름, 보기의 구조, 문장 길이, 용어의 난이도, 중간 이탈 가능성까지 모두 응답자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좋은 설문은 조사자가 하고 싶은 질문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응답자가 무리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짜인 여정이다. 응답자가 길을 잃지 않아야 데이터도 길을 잃지 않는다.셋째, 품질관리 기준을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모든 조사에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브랜드 조사, 소비자 태도 조사, B2B 조사, 민감 주제 조사, 긴 추적 조사마다 허용 가능한 응답 패턴이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속도가 중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심층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품질 기준은 일괄 규칙이 아니라 조사 목적에 따른 운영 원칙이어야 한다.넷째, 무응답 편향을 정직하게 다뤄야 한다. 응답률이 낮다고 해서 무조건 실패한 조사는 아니다. 문제는 누가 빠졌는지, 어떤 집단이 응답하지 않았는지, 그로 인해 결과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다. 앞으로의 조사회사는 단순한 응답률 수치가 아니라 무응답 편향을 어떻게 추정하고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 부분은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핵심이다.다섯째, 응답 품질을 올리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조사 초대 메시지, 리마인드 문구, 종료 후 감사 메시지까지 모두가 하나의 경험이다. 사람은 사소한 문장에서도 진정성을 읽는다. 딱딱한 시스템 메시지보다 인간적인 톤, 지나친 압박보다 존중의 언어가 더 좋은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조사 커뮤니케이션은 기능적 문구가 아니라 관계적 언어가 되어야 한다.조사회사 관점에서 실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 목적은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설문은 가능하면 짧게, 불가피하게 길다면 구간별 몰입 장치를 넣어야 한다.- 모바일 화면에서 1분 안에 구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의력 검사와 논리 검증은 필수지만 과도하게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보상은 참여의 동기이지, 품질의 대체재가 아니다.- 반복 참여자와 신규 참여자를 구분해 운영해야 한다.- 조사 이력과 피로도를 반영한 패널 관리가 필요하다.- 응답률만이 아니라 무응답 편향과 이상 응답 비율도 함께 봐야 한다.- 개방형 문항은 “많이”보다 “정확히 쓸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설문은 조사자가 아닌 응답자의 시간으로 완성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위의 기준들은 단지 운영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온라인 조사라는 도구를 다시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쓰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기도 하다. 품질 관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응답자를 존중하지 않는 설문은 오래가지 못한다.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는 기술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의 약화에서 시작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응답자는 더 이상 “무조건 참여해 주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시간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자기 의견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좋은 조사회사는 단순히 설문을 잘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응답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조사가 점점 어려워질수록, 조사회사의 역량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능력보다,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의미 있는 데이터를 남기는 능력. 표면적인 응답률보다, 그 안의 진정성을 지키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응답자를 통계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다.온라인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예전처럼 쉽게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법만이 아니다. 사람의 피로를 이해하는 감각, 조사의 품질을 지키려는 집요함, 그리고 데이터를 얻는 일과 관계를 맺는 일이 서로 멀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결국, 좋은 조사는 응답을 많이 받은 설문이 아니라, 응답자가 자신의 시간을 납득하고 남겨 준 설문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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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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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6]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작은 신호등, 럭키슈머를 읽다

□ 사례 1: 취업 준비생 지현 씨(26)의 ‘가방 위 작은 신호등’서류 전형만 벌써 스무 번째 떨어진 지현 씨. 아침에 눈을 떠 채용 공고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옥죄어온다. 그런 지현 씨가 일주일 전, 큰맘 먹고 SNS에서 유명한 작가가 디자인한 '합격 기원 개운(開運) 키링'을 구매했다. 은은한 초록빛 옥돌 모양에 ‘순풍(順風)’이라는 한자가 위트 있게 적힌 키링이다.지현 씨는 매일 도서관으로 향하기 전, 가방에 달린 키링을 톡톡 두드리는 루틴이 생겼다. 친구들은 "너 그런 거 믿어?"라며 웃지만, 지현 씨에게 이 키링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느꼈던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라는 자책감을 차단해 주는 심리적 방패막이기 때문이다. “아직 내 바람(順風)이 불어오지 않았을 뿐이야. 나를 밀어줄 바람 말이야.” 지현 씨는 키링을 보며 다시 한번 채용사이트를 클릭할 용기를 얻는다.□ 사례 2: 3년 차 직장인 민우 씨(31)의 ‘오피스 운테리어(운+인테리어)’IT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민우 씨의 모니터 옆에는 자그마한 인테리어 소품이 하나 있다. 전통 시장에서나 볼 법한 말린 명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패브릭으로 만든 ‘액막이 명태’ 인형이다. 겉보기엔 세련된 오브제 같지만, 꼬리 부분에 진짜 명태처럼 무명실이 감겨 있다.최근 회사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예산 감축으로 민우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매일 출근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가 “나쁜 기운 다 막아줄 것”이라며 건넨 이 명태 인형을 책상에 둔 이후, 민우 씨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 전화가 올 때마다 슬쩍 명태 인형을 바라보며 속으로 외친다. ‘나쁜 기운은 저 친구가 다 먹어줄 거야. 나는 내 일만 하자.’ 명태 인형이 만들어 주는 것은 작은 마법의 결계인 셈이다.□사례 3: 프리랜서 디자이너 혜원 씨(34)의 ‘주말 개운(開運) 산행’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혜원 씨.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일감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늘 불안의 안개를 걷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그런 혜원 씨의 주말 취미는 얼마 전부터 등산이 되었다. 그냥 산이 아니라, 풍수지리학적으로 ‘재물운’과 ‘화합의 기운’이 강하다는 전국의 명당 바위와 산줄기를 찾아다니는 ‘개운 산행’이다. 물론 요즘 핫한 관악산에도 다녀왔다.주말 아침, 싱그러운 산속 공기를 마시며 정상에 오른 혜원 씨는 영험하다는 바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숨을 고른다. SNS에는 ‘#개운산행 #기운충전’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멋진 아웃도어 인증샷도 올려본다. 주중에 방 안에서 모니터만 보며 고여있던 불안과 우울이 산의 거대한 기운 속에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하산 길에 산 초입에서 파는 대추나무 도장까지 하나 판 혜원 씨는, 다음 주 미팅에서 왠지 좋은 계약을 따낼 것 같은 당당한 에너지를 얻었다.* AI 생성 이미지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듯한,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만난 듯한, 그리고 지인의 이야기에서 들은 듯한 사례들. 하지만 이와 비슷한 모습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백팩 지퍼에 달린 아기자기한 키링들이다. 그런데 그 키링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귀엽기만 한 장식품이 아니다. ‘행운’이라는 글자가 정성스레 수 놓인 미니 부적, 파릇파릇한 네잎클로버 모양의 뜨개 인형, 그리고 터치하면 오늘의 운세를 알람으로 알려준다는 스마트 키링까지.게다가 언젠가부터 집들이 선물로 주고받던 액막이 명태 인형이나 굿즈가 이제는 아주 자그마한 형태로 진화해서 사무실 책상에도 안착했다. 자신의 생활공간 인테리어를 한가득 운을 들어오도록 바꾸는 ‘운테리어’도 화제다. 건강을 위한 등산도 복을 기원하고 좋은 기운을 받아오는 수행의 일환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에 이토록 소박하고 간절한 ‘행운을 바라는 모습’들이 깊숙이 들어왔다. 작은 인형이나 굿즈를 단순히 귀여워서 사는 것이라기엔, 그 물건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꽤나 진지해진 것이다.지금 소비 시장은 행운을 찾아 움직이는 이들에 주목하고 있다. 행운(Lucky)과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신조어, 바로 ‘럭키슈머(Luckysumer)’의 등장이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의 기능이나 가성비를 따져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민속 상징물인 ‘액막이 명태’ 소품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주말이면 좋은 기운을 흡수하겠다며 ‘개운(開運) 산행’을 떠난다.과거의 소비가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거나, ‘내가 얼마나 가졌고 성공했는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면, 지금 럭키슈머들의 소비는 ‘내가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정서적 처방전에 가깝다. 그럼 왜 미신과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의 시대, 그것도 최첨단 AI의 시대에 갑자기 행운을 소원하는 럭키슈머 트렌드가 형성된 것일까.무엇보다 럭키슈머는 ‘운을 산다’라고 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견딜 장치를 산다’라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취업은 늦어지고, 고용은 흔들리고, 물가는 오르고, 기술 변화는 빠르고, 미래는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여기에 전쟁과 경기침체, AI 확산 같은 거대한 변수까지 겹치면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을 자주 체감하게 된다. 이럴 때 작은 행운 상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심리적 손잡이가 된다. “이걸 달았으니 조금은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은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작게 나누어 붙드는 인간적인 방식인 것이다.사회심리학적으로 보아도 럭키슈머는 몇 가지 익숙한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첫째는 통제감 회복이다.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막연한 불안을 크게 느끼는데, 그때 상징적 행동이나 물건을 통해 “내가 뭔가 하고 있다”라는 감각을 얻으면 불안이 완화된다. 부적 키링을 달고, 운세를 확인하고, 행운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실제 현실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통제 가능한 세계를 복원해 준다. 둘째는 확증편향이다. 행운 물건을 산 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물건의 힘으로 해석하기 쉽고, 반대로 별일이 없으면 그냥 넘어간다. 이렇게 선택적으로 의미를 붙이다 보면 행운은 점점 더 강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셋째는 프라이밍 효과와도 관련이 있다. 운을 상징하는 물건이나 문장을 접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더 낙관적인 정서와 태도를 갖게 되고, 이는 이후 행동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럭키슈머의 소비는 미신과 합리의 경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연결하는 심리적 스위치처럼 작동할 수 있다. 사주를 보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사람은 면접장에 들어갈 때 표정이 달라질 수 있고, 그 표정의 차이는 결국 태도와 선택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넷째는 자기서사화이다. 요즘의 소비자는 물건을 사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물건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불안을 그냥 참는 사람이 아니라, 내 운을 관리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의 서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서사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중요하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사람은 자신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묶어낼 필요를 느끼는데, 럭키 아이템은 그 서사를 가장 간단한 형태로 제공해 준다. 작은 키링 하나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나는 오늘도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순간, 소비는 정서적 언어가 된다.사회문화적 배경도 분명하게 존재한다.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성실과 노력, 계획과 성취를 중시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공식이 모두에게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넓게 퍼졌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심리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실력으로 설명하던 영역까지 운의 언어가 스며들고, 성과 중심 문화는 불안 관리 문화와 뒤섞인다. 바로 이런 틈에서 럭키슈머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전통 신앙의 회귀가 아니라, 고도 경쟁 사회가 낳은 새로운 생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배경은 SNS의 시각 문화이다. 운과 행운은 본래 비가시적인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될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네잎클로버 키링, 명태 액막이, 부적 모양 오브제는 화면에 잘 잡히고, 의미를 짧게 설명하기 좋을 뿐 아니라, “귀엽다” “센스 있다”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다. 그 덕분에 행운은 이제 개인의 믿음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의 공감을 통해 증폭되는 사회적 콘텐츠가 되었다. 선물하기 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위로나 격려를 건네기 어려운 순간에도,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은 “좋은 기운을 보내고 싶다”라는 정서를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도 배어 있다. 우리는 늘 노력의 윤리를 말해 왔지만, 동시에 길흉과 징조, 날과 방향과 기운에 예민한 문화도 함께 공유해 왔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앞두면 미리 조심하고, 좋은 날을 고르고, 부적 같은 상징을 곁에 두는 태도는 전통적으로 낯설지 않다. 다만 과거에는 그것이 주로 비공개적이고 의례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훨씬 캐주얼하고 일상적인 소비로 바뀌었을 뿐이다. 덕분에 무게감 있는 믿음이 아니라, 웃으며 공유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이 된 셈이다. 그래서 럭키슈머는 전통의 부활이라기보다, 전통 감각이 현대적 디자인을 입은 결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흥미로운 점은 럭키슈머가 단지 불안 회피형 소비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인 자기조정 행위에 가깝다. 그들은 불운을 막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운을 끌어오고, 좋은 기운을 배치하고, 자신에게 맞는 상징을 찾으며 일상의 리듬을 재설계한다. 최근에는 단순한 행운 물건을 넘어, 풍수나 사주를 바탕으로 공간과 동선을 조정하거나, 자신의 기운을 관리한다는 식의 더 능동적인 흐름도 포착된다. 이것은 운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라기보다, 운을 하나의 자원처럼 다루려는 현대적 감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물론 럭키슈머 트렌드를 지나치게 낭만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럭키슈머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불안과 피로, 미래에 대한 체념이 있기 때문이다. 운을 자꾸 소비하려는 사회는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삶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트렌드는 인간이 얼마나 섬세하게 자기 마음을 돌보는 존재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거창한 해답보다,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작고 다정한 상징을 원한다. 그래서 럭키슈머를 읽는 일은 단순히 유행 아이템을 관찰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불안과 희망, 합리와 감성,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운명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부적 키링 하나, 네잎클로버 굿즈 하나, 운세 콘텐츠 하나에는 “나는 여전히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조용한 의지가 담겨 있다. 어쩌면 오늘의 럭키슈머는 행운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에서 희망의 감촉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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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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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5] 침묵이라는 가장 무거운 목소리, 무응답이라는 응답

조사는 언제나 ‘응답’으로 완성된다. 누군가의 선택, 누군가의 의견, 누군가의 숫자가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우리는 그 결과를 통해 사회를 읽고, 시장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하지만 모든 조사에는 늘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끝내 답하지 않은 사람들. 질문을 받았지만 고개를 젓거나, 잠시 머뭇거리다 화면을 닫거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들은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이들이 결과를 바꾼다.2026년 6월 3일, 우리나라의 선거에서도 익숙한 장면이 다시 등장했다.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 사이의 간극. 그 차이를 설명하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로 ‘샤이 보수’가 언급되었다. 보수 정당의 후보에 투표했음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거나, 자신이 어느 후보에 투표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은 보수 지지자가 많았다는 뜻이다.사실 정치조사에서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선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일컫는 ‘샤이 000’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지는 오래되었다. ‘샤이 보수’ ‘샤이 진보’와 같은 정치성향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샤이 트럼프’ 등도 우리는 뉴스에서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 ‘샤이 지지층’을 표현하는 사례이다. 샤이 지지층의 특징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 의사를 이미 굳혔으나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지지층이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무당층이나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는 정치적 무관심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 드러나지 않는 적극적 지지자인 셈이다.샤이 지지층처럼, 조사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아예 조사 자체에 응하지 않거나 응했다 하더라도 질문에 따라서는 답을 하지 않고 무응답으로 응답하곤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 질문은 누가 묻고 있는지, 이 답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답이 나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지”를 우려한다. 그래서 응답을 바꾸는 대신, 아예 응답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하지만 브렉시트 선거에서도, 미국 대선에서도, 이번 6월 3일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난 분명한 것은 조사에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실제 이들은 분명한 선택을 했고, 그들의 침묵이 곧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무응답 현상은 정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 조사에서는 훨씬 더 일상적으로 나타난다.고객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종종 발견되는 패턴이 있다. 매우 만족한 고객과 매우 불만족한 고객은 적극적으로 응답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경험을 한 고객들은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데이터는 중간값이 사라지면서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또 다른 사례는 금융이나 자산 관련 조사의 경우이다. 소득, 자산 규모, 투자 성향을 묻는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이탈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응답하지 않는 비율이 특정 구간에서 집중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확한 금액이 아니라 구간만 선택해 달라”는 문항에서도 응답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노출되는 느낌’ 자체를 부담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조직 내부 조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익명성이 보장된 직원 만족도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상사 평가나 조직 문화에 대한 질문과 같은 특정 문항에서 무응답 비율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다. 익명이라는 설명보다, ‘정말 익명일까?’라는 감각이 더 크게 작용하는 순간이다.최근에는 앱 기반 설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포착된다. 짧고 간단한 UX 피드백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개인정보나 소비 습관을 묻는 순간 이탈률이 높아진다. 응답자는 질문의 난이도가 아니라 노출 수준을 기준으로 참여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특히 온라인 환경에서는 이 침묵이 더 미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앱이나 서비스 이용 중 등장하는 짧은 설문에는 비교적 쉽게 응답하지만, 몇 문항만 늘어나도 이탈률은 급격히 상승한다. 특히 개인화 추천, 소비 습관, 위치 정보와 관련된 질문이 포함될 경우 그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또 하나 흥미로운 장면은 ‘읽고도 답하지 않는’ 행동이다.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답장은 하지 않는 것처럼, 설문을 열어보고 질문을 훑어본 뒤 아무런 응답 없이 종료하는 경우다. 이는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일종의 ‘조용한 거절’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이러한 행동은 디지털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질문을 받는 사회에 살고 있고, 그만큼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자연스럽게 행사하게 되었다.그럼 왜 사람들은 조사 환경 속에서 침묵을 선택할까?*AI생성 이미지조사에 응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겠지만, 그 이면에는 꽤 정교한 사회심리학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우선 여전히 강력한 사회적 바람직성에 대한 압박을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틀린 답’을 피하려 한다. 특히 분위기가 분명하게 형성된 이슈일수록, 그 흐름에서 벗어난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부담이 된다. 이때 가장 안전한 선택은 침묵이다.신뢰 역시 중요한 변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개인정보 유출과 데이터 활용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이 응답이 어디까지 사용될까?”라는 질문은 점점 더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조사 설계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응답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계산한다.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인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의견을 요청받는다. 구매 후 리뷰, 서비스 만족도 조사, 앱 푸시 설문까지. 질문이 넘치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선택적으로 침묵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여기에 무력감이 더해진다. 특히 공공 정책이나 사회 이슈와 관련된 조사에서 “내가 답한다고 달라질까?”라는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때 무응답은 무관심이 아니라, 일종의 체념에 가깝다.그런데 중요한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이 침묵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무응답은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일관되게 침묵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는 집단, 제도에 대한 불신이 높은 집단, 혹은 자신의 의견이 소수라고 인식하는 집단은 응답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이 경우, 데이터는 단순히 일부가 빠진 상태가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진 상태가 된다. 응답자의 의견이 아니라, ‘응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의견이 남는다.실제 조사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이런 순간을 체감하게 된다. 표본은 충분하고, 통계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현실과 맞지 않는 느낌. 그 어긋남의 상당 부분은 포착되지 않은 침묵에서 비롯된다.이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꽤 일관된 심리가 존재한다.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사회적 시선에 대한 감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답이 어떻게 해석될지를 고려한다. 특히 정치, 가치관, 돈과 관련된 질문일수록 그 부담은 커진다. 이때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신뢰의 문제도 크다. 조사 설계자는 데이터를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말하지만, 응답자는 여전히 의심한다. 이 정보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그리고 피로감.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의견을 요청받는다. 리뷰, 별점, 만족도 조사, 피드백 요청. 질문이 과잉된 환경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마지막으로, 무력감이 있다. 특히 공공 이슈나 조직 문화와 관련된 조사에서는 “내가 답해도 달라질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이때 무응답은 무관심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상태일 수 있다.그러니 무응답이 눈에 두드러진 조사의 결과는 조사 결과는 단순한 일부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인 편향을 지니게 된다.이번 6월 3일의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출구조사와 개표 결과와의 오차도, 기업 조사에서의 과장된 만족도도, 조직 조사에서의 왜곡된 분위기도 결국은 말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만든 그림자일 수 있다.그래서 조사회사는 이들의 침묵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최근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어떻게 더 많이 물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덜 놓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어떤 문항에서 사람들이 멈추는지, 어디에서 이탈하는지, 어떤 질문 앞에서 시간이 길어지는지. 응답 그 자체뿐 아니라, 응답하지 않는 순간까지 데이터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정성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뷰에서의 침묵, 시선의 회피, 애매한 웃음 같은 것들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말의 내용만큼이나, 말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이렇게 보면 결국, 조사는 ‘들을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작업에 가깝다.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종종 데이터를 ‘현실 그 자체’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분명 실제로 데이터는 언제나 응답해 주는 일부의 목소리로 구성되고, 그 바깥에는 여전히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말이 없기에 존재를 무시하고, 말을 하기에 존재가 파악되는 데이터만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경향을 보인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조사회사나 마케팅 컨설팅 기업 등은 이전 컬럼에서 소개한 합성소비자나 버추얼 생활자 등을 생성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조사를 거부하지 못하고 항상 응답할 수 있는 대기 상태의 대상자를 준비해 두는 것이다. 그러니 리서치 연구원은 무응답이라는 응답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에 반영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들은 무관심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고려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침묵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피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예측의 실패는, 잘못된 답 때문이 아니라, 듣지 못한 답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래서 좋은 조사는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 앞에서 침묵하는 사람들을 함께 상상하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들의 망설임, 거리감, 그리고 끝내 말하지 않기로 한 이유까지.숫자는 언제나 또렷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흐릿한 부분까지 시야에 넣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이터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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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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