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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3] 저출산 시대의 조사회사, 표본, 그리고 질문의 미래

컬럼의 주제를 생각하느라고 골머리를 앓고 있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집사람이 슬며시 기사 하나를 오려서 내민다.“인도, 14억 인구조사에 310만명 동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인구 14억 명을 넘어선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인도가 300만 명이 넘는 공무원을 투입해서 1조 8,800억 원이 소요되는 인구조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기사의 끝에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35세 이하일 정도의 젊은 국가인 인도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감소에 직면한 선진국과 달리 인구 구조의 활력을 노동력 확대와 경제 성장으로 연결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번 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많은 인구, 게다가 여전히 높은 출산율로 젊은 인구 비율이 높은 인도의 조사가 엄청난 규모로 진행된다는 기사를 읽다 보니 문득 인도의 조사회사들은 당분간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이렇게 많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조사가 이루어질까.그렇다면 저출산으로 점진적인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과연 저출산으로 조사업계와 조사회사는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있다면 어떤 영향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여기서 잠깐! 정부나 언론은 최근에는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출산 주체인 여성에 무게를 둔다는 비판을 받자 ‘저출생’으로 대체·병행 표기하고 있다. 필자도 이런 점에서는 저출생을 사용하고 싶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은 원인·행위(출산)와 결과(출생)를 섞어 쓰면 혼동이 생길 수 있다고 하고, 용어의 사용 목적이 저출산은 ‘장기 인구 추세 예측, 국가 간 비교’에, 저출생은 ‘단기 인구 추이, 지역별 출생 규모 비교’라는 점에서 저출산으로 통일하여 표기하고자 한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출산은 더 이상 출산율 그래프 속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생각을 묻고, 사람의 선택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변화일 것이다. 조사회사에게 저출산은 단순히 “가족 시장이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표본이 바뀌고, 조사 주제가 바뀌고, 응답자의 마음이 바뀌고, 결국 조사라는 일의 의미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예전에는 출산과 육아가 하나의 보편적인 생애 경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과정이고, 출산은 결혼의 당연한 다음 단계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는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낳는 대신 다른 삶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도 있다.저출산은 결국 이런 다양한 삶의 선택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조사는 바로 그 거울 앞에 서 있는 일이다.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되어 왔다. 최근 출생 통계는 다소 반등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 구조를 바꿀 정도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초에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을 보면 가임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0.8명으로 2024의 0.75보다는 올랐지만, 이는 여전히 OECD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데이터 출처: 국가데이터처,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 2026년 2월숫자만 보면 이 0.8명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조사회사에게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사 대상의 구조가 달라지고, 시장의 중심이 이동하고, 질문의 언어도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저출산이 조사업계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표본이 줄어드는 희소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출산과 육아 관련 조사는 원래도 민감한 편이지만,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대상 집단은 더 작아지고 더 복잡해진다. 예전에는 단순히 “30대 기혼 여성” 또는 “영유아 자녀를 둔 가구” 정도의 기준으로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녀 유무, 맞벌이 여부, 주거 형태, 부모와의 거리, 돌봄 지원 유무, 경제적 압박 수준, 재직 상태까지 함께 봐야 한다.이 말은 곧,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분류만으로는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 수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맥락이 더 중요해진다. 표본이 얇아질수록 조사는 숫자보다 생활의 결을 읽어야 한다. 같은 ‘무자녀 기혼자’라도 누군가는 아직 계획 중이고, 누군가는 불임 치료를 경험했으며,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비출산을 선택했고, 또 누군가는 일과 관계의 불안정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수 있다. 저출산 시대의 조사는 이 다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조사회사는 예전보다 더 정교한 설계 능력을 요구받는다. 가중치 조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세그먼트별 해석력과 코호트 감각이 필요하다. 출산 관련 조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응답자 수가 적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같은 응답자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 전혀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는 이제 표본을 모으는 작업을 넘어, 표본의 의미를 복원하는 작업으로 진화하고 있다.저출산이 조사에 미치는 영향은 표본의 희소성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조사 대상자의 응답 태도 자체도 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당연한 선택이 아니라서, 관련 질문은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섬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 계획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경제적 부담, 커리어에 대한 기대, 관계의 안정성, 주거 문제, 돌봄 인프라에 대한 신뢰까지 모두 들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가지 이유로 출산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 역시 단선적인 문항으로는 현실을 충분히 담을 수 없다.이 지점에서 조사회사의 역할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좋은 조사는 조사 대상자인 응답자가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저출산과 관련한 조사에서는 특히 그렇다. 결혼하지 않은 삶, 아이를 낳지 않는 삶, 늦게 낳는 삶, 아예 낳지 않는 삶, 이 모두가 존중받는다는 감각이 조사 문항 안에 스며 있어야 한다. 질문이 사람을 판단하는 느낌을 주면 응답은 닫히고, 질문이 사람의 현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으면 응답은 열리게 마련이니까.저출산 현상은 조사회사의 클라이언트 자체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유아용품, 교육, 가족보험, 아동 중심 소비재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1인 가구, 비혼, 무자녀 가구, 시니어, 돌봄, 건강관리, 재무설계, 주거, 여가, 디지털 구독 같은 분야는 더 정교한 데이터 해석이 필요해진다. 이것은 조사회사 입장에서 매우 큰 변화다. 더 이상 ‘가족’만을 중심으로 시장을 읽는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 조사에도 영향을 준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아이를 가진 사람’보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소비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고,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보험, 건강관리, 여행, 구독 서비스, 라이프스타일 산업 전반이 개인 단위의 의사결정에 더 민감해지고 있다. 조사회사는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해석 기관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시장 규모 추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 변화와 소비의 감정선을 함께 읽어내야 한다.특히 저출산 시대에는 행태 데이터와 설문 데이터의 결합 가치가 커진다. 사람들은 설문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보다 더 복합적일 수 있다. 출산 의향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실제로는 여러 조건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특정 정책이나 환경 변화에 반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사회사는 이제 설문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생활의 흔적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우리 사회에서 저출산은 단지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 노동, 주거, 교육, 돌봄, 성평등, 기업 문화, 미디어 표현까지 이어지는 복합 사회 이슈다. 그래서 최근의 조사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출산 의향’이나 ‘육아 만족도’처럼 비교적 직접적인 질문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왜 결혼을 미루는가’, ‘왜 아이를 낳기 어려운가’, ‘왜 출산 이후 삶이 두려운가’ 같은 구조적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이런 변화는 조사 주제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저출산을 다루는 조사는 이제 단순한 가족 조사가 아니라, 삶의 안정성에 대한 조사로 바뀌고 있다. 주거비, 일자리 안정성, 경력 단절 우려, 돌봄 공백, 교육비 부담, 관계의 지속 가능성, 개인의 삶에 대한 기대가 모두 조사 항목 속으로 들어온다. 즉, 저출산 조사는 어느 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체온을 읽는 작업이 된다.또한, 미디어와 콘텐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조사에서는 다수의 응답자가 미디어가 결혼·출산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이는 사람들의 저출산 인식이 단지 통계나 정책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는 콘텐츠와 이야기의 톤에도 크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결혼을 고통스럽고 출산을 희생처럼만 그리는 콘텐츠가 반복되면, 사람들의 상상력은 더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가족의 모습과 현실적인 돌봄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선택의 폭은 조금 더 넓어질 수 있다. 조사도 이런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저출산이 조사와 산업을 바꾼 사례는 해외에도 많다. 일본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초저출산과 고령화를 경험하면서, 조사 주제의 무게중심이 크게 이동했다. 과거에는 유아·아동 중심 시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령자 시장, 돌봄, 간병, 지역사회, 노동력 부족, 은퇴 이후 생활에 대한 조사 비중이 커졌다. 일본의 경험은 저출산이 단순한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 구조와 서비스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유럽도 비슷하다. 유럽에서는 저출산을 가족 정책만으로 보지 않고, 노동시장, 주거, 복지, 이민, 젠더 정책과 연결해 논의해 왔다. 그만큼 조사 역시 더 넓은 시야를 요구받았다. 출생 관련 조사뿐 아니라 고령화, 지역 소멸, 복지 수요, 주거 이동,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조사가 활발해졌다.이런 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조사회사는 한정된 출산 시장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는 조사 주제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조사회사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새로운 수요를 선점할 수 있다. 반대로 변화에 늦으면, 시장은 이미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을 수 있다.저출산 시대의 조사업무는 분명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삶이 더 다양해지고 선택이 더 복잡해질수록, 조사자는 더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사의 경쟁력은 숫자를 많이 모으는 데 있지 않다. 숫자 뒤의 사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이를 위해 앞으로 조사회사는 몇 가지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표본 전략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둘째, 가족과 출산을 다루는 문항은 더 비판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행태 데이터와 설문 데이터의 결합이 더 중요해진다. 넷째, 저출산을 정책 문제로만 보지 않고 생활 방식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언어 또한 더 섬세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숫자는 정확해야 하지만, 해석은 차갑기만 해서는 안 된다.조사회사는 언제나 사회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시장의 중심이 옮겨가고, 세대의 구조가 달라질 때, 가장 먼저 그 흔들림을 기록하는 곳이 조사다. 저출산은 그 흔들림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변화다. 아이가 줄어드는 사회는 질문도 달라진다. 예전의 질문이 “얼마나 낳을 것인가”였다면, 이제의 질문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더 가깝다. 그리고 조사는 바로 그 질문의 언저리에 서 있어야 한다.저출산은 조사회사 입장에서는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인 이유는 조사 대상이 줄고 시장이 줄어들기 때문이고, 기회인 이유는 그만큼 더 깊고 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삶의 경로를 따라 살지 않는다.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조건 속에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간다. 조사회사는 그 다양해진 삶을 읽어내는 직업이다.그래서 저출산 시대의 조사는 단순한 숫자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어디에서 불안해하고 어디에서 주저하며 어디에서 다시 희망을 찾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조사회사가 이 변화를 정확히 읽어낼수록, 더 나은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고, 더 적절한 서비스와 상품을 설계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는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저출산은 분명 불안한 신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회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질문이 살아 있는 사회라면, 변화의 가능성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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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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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3] 빌딩 숲 사이, 12시의 오아시스_ 런치케이션

오전 11시 50분, 도심의 오피스 빌딩 숲.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낮게 깔린 회의실의 백색소음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정오를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 혹은 컴퓨터 모니터 우측 하단의 숫자가 ‘12:00’으로 바뀌는 순간, 팽팽했던 공기는 일순간 이완된다.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빌딩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과거의 점심시간이 그저 텅 빈 위장을 채우고 서둘러 모니터 앞으로 복귀하는 주유소와 같은 시간이었다면, 최근 12시의 풍경은 사뭇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사람들은 더 이상 식사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이 허기를 느끼는 곳은 위장이 아니라, 어쩌면 소진되어 버린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점심시간을 쪼개어 미술관의 고요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도심 속 사찰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 문화센터에서 향을 피우고 차를 내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짧지만 강렬한 1시간의 일탈, '정신적 이완'을 향한 현대인들의 조용한 엑소더스(Exodus)가 시작되었다.트렌드의 변화는 늘 사람들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변한 기저에는 현대 사회의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짙게 깔려 있다.2025년 12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5 직장인 점심식사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현재 평균 1시간인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으로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64.2%)”고 답했으며, 점심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단순한 식사가 아닌 “업무 스트레스 해소(59.2%)”로 꼽았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의 영향도 있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점심 식사 비용과 시간을 줄여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하며,간편식으로 10분 만에 끼니를 때우고 남은 50분을 온전히 자신의 정신을 환기하는 데에 투자하는 이른바 '런치케이션(Lunch+Vacation)' 트렌드가 숫자로도 명확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니 점심시간은 온종일 쏟아지는 이메일, 메신저의 알림음, 상사의 지시와 거래처의 압박 속에서 쉴 새 없이 각성 상태를 유지했던 우리의 뇌에 중간 휴식을 제공하는 신박한 시간인 셈이다.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된 이 긴장의 끈을 잠시라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오후의 시간은 그저 버텨내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직장인들에게 정오의 1시간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마음의 산소 호흡기가 되었다.가장 눈에 띄는 산소 호흡기 제공 기관은 미술관이다. 업무로 지쳐버린 차가운 이성을 녹이는 예술의 온도를 찾아 직장인들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 미술관은 주말에나 시간을 내어 큰맘 먹고 가는 특별한 나들이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 미술관은 직장인들의 훌륭한 점심 아지트로 변모했다.* AI생성 이미지국내 미술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26년 4월 8일부터 6월 10일까지 ‘일상 속 예술, 그리고 예술가’를 주제로 ‘아트 앤 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도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마지막 수요일 12시에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에 신청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이 프로그램은 직장인과 성인을 대상으로 점심시간(1시간) 동안 큐레이터,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들의 전시 해석 강연을 듣는 형태이며, 참가자들에게는 커피와 빵 등 간단한 점심 도시락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적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는데, 2015년부터는 기획 전시나 소장품과 연계하여 미술관이 지닌 콘텐츠를 다양한 워크숍과 퍼포먼스, 토크 등의 형태로 선보여 왔으며, 각 프로그램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제공되고 있다.본관을 포함해서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등 다양한 곳에서 한 해에 6차례 정도 진행되는데, 프로그램은 예고 없이 공지가 올라와도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사비나미술관 역시 직장인과 일반인을 위한 특별한 '런치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최소 5인 이상이 모이면 신청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마치고 전문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실을 거니는 코스다. 큐레이터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따라 캔버스 위의 색채와 질감에 집중하는 순간, 직장인들은 완벽한 현실 분리를 경험한다. 숫자와 텍스트로 가득했던 좌뇌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감각과 직관이 살아 숨 쉬는 우뇌를 깨우는 것이다.최근 전북 완주의 ‘복합문화지구 누에(Nu-e)’에서 시작한 '12시의 미술관'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며 큐레이터와 작가의 해설을 듣는 직장인 대상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심리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운영은 4월부터 12월까지로, 1인 11,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예술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굳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이완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시간 동안의 몰입도 높은 미술 감상은 우리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를 약 22%나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한다. 예술이 주는 심미적 경험이 단순한 감정적 사치를 넘어, 실질적인 신경학적 치유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증거다.전시장 특유의 약간 서늘하고 쾌적한 공기, 발소리를 흡수하는 카펫, 캔버스에만 오롯이 집중된 따뜻한 조명. 이 모든 공간적 장치들은 문밖의 치열한 경쟁 사회와 나를 차단하는 포근한 방음벽이 되어준다. 점심시간 쪼개기 관람을 마친 직장인의 얼굴이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처방전이 만들어낸 조용한 기적이기도 하다.딱딱한 회의실 의자가 아닌, 부드러운 조명이 내리쬐는 갤러리에 앉아 예술가의 세계관을 듣고 있노라면, 오전 내내 머릿속을 짓누르던 실적 압박이나 보고서의 압박은 서서히 증발한다.문화예술의 영역은 넓으니, 굳이 미술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세종라운지에서는 매월 금요일 점심시간 30분(12시 20분~12시 50분)을 이용한 무료공연인 '런치타임 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서울시합창단과 시민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유명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구성되며, 각 회 차별 4명 이내로 구성된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의 독·중창 무대로 진행된다.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는 이색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클래식 앙상블의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오후의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카페인을 들이켜는 대신, 모차르트나 바흐의 선율로 지친 뇌파를 다독이는 것이다.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풍경도 달라졌다. 과거 주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화센터 평일 낮 시간대에, 최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원데이 클래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2시부터 1시 사이, 캘리그라피를 하며 먹물의 농담에 집중하거나, 차(茶)를 내리며 다도(茶道)의 정갈함을 배우고, 혹은 흙을 빚어 작은 도자기를 만든다. 손끝의 감각에 몰입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복잡한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지금, 여기'의 순간에만 머무르게 하는 일종의 능동적 명상과 같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무용(無用)해 보이는 아름다운 행위에 시간을 쏟음으로써 직장인들은 역설적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과거 우리는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으며 점심시간조차 아껴 일하는 것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여겼다.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모습은 바쁘고 유능한 현대인의 표상처럼 소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끝없이 소모되기만 하는 기계적인 질주는 결국 번아웃이라는 치명적인 고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점심시간, 미술관의 그림 앞에 서거나 사찰의 처마 밑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는 “피곤하게 점심시간까지 무언가를 하느냐?”고 묻거나, “잠깐의 현실 도피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오후의 치열한 전쟁터로 다시 담담하게 걸어 들어가기 위해, 깨진 마음의 조각들을 단단하게 이어 붙이는 가장 치열하고 고귀한 자기회복의 시간이다.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막을 걷고 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는 목을 축이고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오아시스다. 빌딩 숲 한가운데, 하루 중 가장 태양이 높게 뜨는 정오의 시간. 예술과 문화라는 이름의 오아시스가 우리 곁에 있다.오늘 여러분의 점심시간은 어땠는가? 만약 남은 오후를 버텨낼 마음의 연료가 바닥났다고 느껴진다면, 내일 12시에는 잠시 사원증을 벗어두고 나만의 정신적 이완을 위한 피난처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캔버스 속 붓 터치가, 귓가를 만지는 음률이 당신을 다시 온전한 '당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12시의 오아시스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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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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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2]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등장_합성소비자

칼럼을 쓰려면 그래도 최근 조사업계의 동향이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 국내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관련 사이트를 둘러 보는 편이다.그런데 작년 여름경부터 일본 업계 사이트에서 ‘가상소비자’라는 단어가 가끔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합성소비자’라는 번역어로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었다.번역어가 합성소비자이든 가상소비자이든 영어의 ‘Synthetic Consumer’는, 말 그대로 실제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소비자를 뜻한다(이하 합성소비자). * AI 생성 이미지이 합성소비자는 설문에 답하고, 제품 콘셉트를 평가하고, 광고 문구를 비교하며, 때로는 인터뷰 응답까지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사에 참여하는 디지털 소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이 용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조사는 늘 빠르고, 싸고, 정확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구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그런데 합성소비자는 이 오래된 딜레마에 새로운 해법처럼 등장했다. 조사 기간을 며칠에서 몇 분으로 줄이고, 패널 모집과 응답률 문제를 완화하며, 반복 테스트 비용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응답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의 합성소비자는 전통 조사를 무너뜨리는 존재라기보다, 조사를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도구에 가깝다.신제품 출시를 앞둔 기업의 회의실. 타겟 고객인 '친환경에 관심이 많고 가격에 민감한 20대 사회초년생'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실무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이전이라면 설문지를 설계하고, 수백 명의 패널을 모으고, FGD을 진행하느라 수 주일의 시간과 큰 비용을 썼을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담당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단 몇 시간 만에 1,000여 명의 가상 고객들이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가격 저항선을 평가하며, 심지어 제품 패키징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까지 리포트로 쏟아낸다.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이미 글로벌 시장조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바로 합성소비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마케팅이나 조사업계에 종사한다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기존의 페르소나라면 “30대 직장인 A씨, 주말에는 캠핑을 즐기며 가성비를 중시함”, “30대 워킹맘”, “가격 민감한 20대 남성”처럼 타깃을 설명하는 프로필에 머문다.반면 합성소비자는 그 프로필을 바탕으로 실제 응답처럼 답을 생성하고, 문항 간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우에 따라 개방형 의견까지 내놓는다. 합성소비자는 살아 숨 쉬는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대언어모델(LLM)과 방대한 실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합성소비자는 나이, 성별, 거주지와 같은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가치관, 취향과 같은 심리적 특성과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까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그러므로 합성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B 테스트에서, 실제 인간처럼 특정 색상에 호감을 보이기도 하고,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장바구니에서 제품을 빼버리는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나 막대한 조사 비용의 장벽 없이도, 무한대에 가까운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서버 속의 완벽한 실험실'이 탄생한 셈이다.쉽게 말하면, 합성소비자는 설명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응답하는 캐릭터이니 조사업계에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어떤 브랜드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이 제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지, 어떤 문구가 먹히는지, 어느 정도 가격이 수용 가능한지를 빠르게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 중요한 점은 합성소비자가 조사 전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탐색과 반복 검증을 매우 빠르게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합성소비자가 최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속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사에서는 설문 설계, 표본 모집, 필드 운영, 데이터 정제, 분석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합성소비자를 이용한 잘 설계된 모델을 이용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여러 개일 때, 어느 방향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두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반복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컨셉 테스트나 메시지 테스트에서 비용 부담은 매우 크다. 합성소비자는 이 중 일부를 먼저 처리해 줌으로써 전체 프로젝트 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접근성이다. 모집이 어려운 고소득층, 특정 직업군, 희소한 소비층, 혹은 특정 언어권 응답자처럼 잡기 힘든 대상에 대해 빠르게 예비 반응을 볼 수 있다. 합성소비자를 활용하면 이런 장점이 있으니 최근 국내외 조사기관에서는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미국에서는 대형 조사 플랫폼과 AI 기업이 결합하면서 하이브리드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Qualtrics의 Edge Audiences는 공개 데이터와 자사 경험 데이터, 예측 분석을 결합해 특정 인구집단의 응답을 합성한다. 이 서비스는 디자인 테스트, 도달하기 어려운 타깃 조사, 아이디어 검증 등에 활용되며, 기존 조사 플랫폼 안에 합성 응답을 직접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유럽에서는 합성 응답의 정확도와 적용 범위를 더 신중하게 보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시장조사에선 항상 현실 데이터와의 비교 검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합성 결과도 실제 패널과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그래서 유럽 쪽 논의는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보다는 “어떤 과제에서 현실의 조사와 잘 결합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추고 있는 편이다.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른 실무 적용에 관심이 커 보인다. 특히 다국어 환경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시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용도로 합성소비자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Toluna가 15개 시장과 9개 언어로 합성 페르소나를 확장한 것도 이런 다국어·다시장 수요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조직을 중심으로 ‘예비 테스트용 AI 응답’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합성소비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회사 중 하나는 Toluna일 것이다. Toluna는 2025년 HarmonAIze Personas를 발표하며 합성 응답자 솔루션을 공개했고, 이후 2025년 10월에는 100만 개가 넘는 합성 페르소나를 15개 시장, 9개 언어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Toluna의 특징은 자사 커뮤니티와 패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응답자 수준의 합성 페르소나를 만들고, 이를 단순한 평균 응답이 아니라 개별적 소비자처럼 다룬다는 점이다.Qualtrics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Edge Audiences는 자사 데이터 자산과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합성 응답을 생성하며, 제품 디자인, 타깃 검증, IP 보호, 개념 테스트 등에 활용된다. PureSpectrum과의 연계도 주목할 만한데, 실제 패널과 합성소비자 응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조사 플랫폼 안에서 바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YouGov는 Yabble을 인수하면서 생성형 AI 기반 인사이트 역량을 강화했다고 한다. 이는 합성소비자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패널 사업자가 AI 기반 조사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밖에 Evidenza, Aaru, Ditto, Simile 같은 스타트업들도 합성 조사 시장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빠른 테스트, 시뮬레이션, 합성 패널 생성 등을 내세우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또 PyMC Labs는 합성 소비자를 실무 가이드 형태로 정리하면서, 가격 테스트·제품 평가·세그먼트 검증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현재 합성소비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서 많이 쓰이는 편이라 할 수 있다.우선 첫째로 아이디어 검증이다. 여러 개의 제품 콘셉트나 광고 메시지를 빠르게 비교해, 무엇이 더 유망한지 선별하는 용도다. 둘째는 컨셉/클레임 테스트다. 포장 문구, 제품 효능, 기능 메시지처럼 고객 반응이 중요한 항목을 미리 점검하는 데 유리하다. 셋째는 희소 타깃 탐색이다. 실제 조사가 어려운 세그먼트의 반응을 예비적으로 확인하는 데 쓰인다고 보면 된다.흥미로운 점은 일부 기업이 합성소비자를 조사 후반부가 아니라 조사 전반부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 소비자 대상 조사 전에 먼저 합성소비자로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좁혀 놓고, 그다음 실제 패널로 다시 정밀 검증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사 효율이 높아지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빨라진다.물론 합성소비자의 활용은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도 존재한다. AI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니 완전히 새로운 혁신 제품에 대한 반응이나, 인간 특유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선,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완벽히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영국의 시장조사협회(MRS)는 이와 관련해서 “더 많은 합성 데이터가 항상 더 나은 통찰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며, 편향된 학습 데이터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과적합(overfitting)'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AI 생성 이미지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합성소비자 활용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미래에 대해 많은 조사회사와 리서처들이 조사업계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AI 중심으로 모든 비즈니스 재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합성소비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래서 조사회사가 합성소비자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먼저 관련 기술을 경쟁자로만 보지 말고 조사 체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필요하다. 오히려 리서처의 역량을 한 차원 끌어올릴 가장 강력한 무기로 합성소비자 기술을 활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첫째, 하이브리드 리서치(Hybrid Research)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단순하고 반복적인 A/B 테스트나 초기 아이디어 스크리닝, 제품의 사용성 테스트(UX)는 합성소비자에게 맡겨 속도와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지만,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하는 복잡한 심리 조사, 숨겨진 결핍을 찾는 심층 면접은 철저히 인간 리서처가 담당하는 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합성소비자에게 방향을 묻고, 실제 소비자에게 확신을 얻는 구조가 될 것이다.둘째, '데이터 통역가(Data Interpreter)'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이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는 하락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쏟아낸 방대한 결과물 속에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그 결과가 현실의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셋째, 날카로운 '의문력(Questioning Power)'의 내재화가 필요하다.합성소비자에게 훌륭한 대답을 얻으려면 훌륭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은 물론, AI가 내놓은 매끄럽고 그럴싸한 결과물 앞에서도 “왜 이 타겟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 데이터에 숨겨진 편향은 없을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드는 질문하는 힘이 리서처의 핵심 경쟁력이 되리라 본다.마지막으로, 공감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합성소비자가 아무리 정교하게 인간을 모방한다 해도, 그들은 타인의 아픔이나 기쁨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기계가 도출한 차가운 인사이트를, 클라이언트와 실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술은 거들 뿐, 결국 본질은 사람이다”랄까.합성소비자의 등장은 시장조사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물리적 제약을 없애고, 리서처들로 하여금 인간 행동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해주는 도우미라고 보면 어떨까 한다.가짜 소비자가 진짜 소비자를 흉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업계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통찰과 공감 능력일 것이다. 도구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본질에 집중할 때, 합성소비자는 어쩌면 조사업계의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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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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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2] 함께 하니 즐겁지 아니한가_마라톤의 사회학

지난 주 토요일. 아침부터 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평소 같으면 늦잠으로 시작하는 휴일의 오전을, 어찌 된 일인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단장하고 뭔가 부산스럽게 시작했다.아하, 오늘이 그 5km 단축 마라톤인가를 하는 날이라고 했지.5km라는 거리를 뛰는 것도 마라톤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의아하긴 했지만, 더 의아한 건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딸이 갑자기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42.195km라는 오해는 곧 풀렸지만.방에서 스트레칭 이외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있던 몸을 걱정해서 5km라도 힘들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힘들 거 없어. 남자친구랑 같이 뛸 거고, 뛰기 어려우면 그냥 천천히 걸어도 돼.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없이 그냥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자고 참가하는 건데 뭐. 그리고 끝나고 맛있는 삼겹살 먹기로 했거든.”황영조, 이봉주 선수가 그 긴 거리를 고독하게 싸우면서 완주를 해내던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았던 세대에게는 참으로 신선한 대답이다.‘나와의 외로운 싸움’의 대명사였던 마라톤의 성격도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읽은 ‘사우나런(sauna run)’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아웃도어 편집숍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모두 8차례, 함께 달린 후 텐트 사우나에서 땀을 내는 모임을 개최했는데 총 114명이 참가했다고 한다.그러니까 이제 누군가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한다는 건 승부를 보는 스포츠에서 출발해서, 건강관리나 체력단련을 거쳐, 친목과 데이트의 영역으로 진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바야흐로 마라톤과 달리기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가 만개하는 시기가 되었다.* AI생성 이미지지난 3월 28일 경남 밀양시 밀양 강변에서는 5km 벚꽃길을 뛰면서 음식을 맛보는 ‘나이트 런 앤 워크 인 밀양’마라톤 행사가 있었다. 1km마다 놓인 음료수는 ‘땡초 물회국수’, ‘불짜장밥’과 같은 특별메뉴인데, 가족과 함께 한 참가자들은 기록이 아닌 추억을 남기느라 바빴다.같은 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서울 유아차런’에 참가하기 위한 유모차(유아차) 4,000여 대가 모이기도 했다. 유모차를 밀고 8km를 달리는 행사인데, 서울 한복판을 언제 이렇게 걸어보겠느냐며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같은 날 서울 구로구에서는 안양천 벚꽃길을 따라 5km를 완주하고 수육과 두부김치, 막걸리를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 ‘수육런’행사가 열렸다.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에 멀리서 온 참가자들도 많았다.이 밖에 경남 합천이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개최하는 ‘합천벚꽃마라톤대회’, 경북 의성군이 산수유 축제 기간에 개최하는 ‘의성마늘마라톤’, 경북 영주의 ‘소백산마라톤대회’를 비롯해서 ‘경주벚꽃마라톤’, ‘군산새만금마라톤’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 마라톤 대회도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있다.지자체에서는 특산품도 홍보하고 관광객을 늘리는 데에 러닝만 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마라톤 참가자를 대상으로 전세 버스를 전문적으로 운행하는 상품도 등장했다고 한다.이렇게 전국으로 번져가는 마라톤 축제는 홀로 달리기를 즐기려는 개인 참가자는 물론이겠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또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을 받고 있다.이른 아침 한강 공원.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간인데도,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리듬으로 발을 맞춘다.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호흡을 공유한다.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달리기는 개인의 고독한 운동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회적 활동으로 변모하고 있다.하지만 이런 달리기는 오랫동안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기 위해, 혹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달리는 동안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되었고, 오히려 혼자라는 상태가 중요한 전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풍경은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혼자 잘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경험’을 선택하고 있다.이 변화의 중심에는 ‘러닝 크루’라는 현상이 있다. 특정 브랜드나 조직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달리는 이 집단은 단순한 운동모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닝 크루는 느슨하지만 분명한 소속감을 제공하고, 운동이라는 행위를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장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단순히 달리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감정과 정체성까지 함께 나눈다는 데 있다.* AI생성 이미지그럼 왜 사람들은 달리기를 통해 다시 ‘함께’를 선택하고 정체성을 공유할까.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이 주는 정서적 보상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경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특히 달리기처럼 일정한 리듬과 반복을 요구하는 활동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페이스로 달리고, 같은 순간에 숨이 차오르며, 비슷한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스포츠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동기화(Synchrony)’라고 부른다. 동기화의 힘도 러닝 크루 열풍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행진하는 군인들이나 합창단, 그리고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들은 같은 리듬을 공유하면서 심장박동이 비슷한 속도로 뛰고, 발걸음의 박자가 맞춰질 때 인간의 뇌는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을 강력하게 분비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하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다.이때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시간의 공유가 목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스포츠가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중심으로 했다면, 지금의 러닝 크루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기록을 겨루기보다 완주를 함께 축하하고, 속도를 맞추기보다 서로의 리듬을 존중한다. 이는 성취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한 현대인의 가치관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사회학적으로 보면, 러닝 크루는 현대 도시인의 ‘느슨한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이야기했다. 끈끈하고 깊은 관계는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느슨하고 가벼운 관계는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와 뜻밖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러닝 크루가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전통적인 공동체가 약화된 이후, 사람들은 강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도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찾기 시작했다. 러닝 크루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형태다. 참여와 이탈이 자유롭고, 관계의 깊이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통의 활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색함 없이 관계가 시작된다.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각 지역에서 열리는 단축 마라톤 행사 역시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축제’로 기능하고 있다. 5km, 10km와 같은 비교적 짧은 거리의 대회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경험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기록보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완주 후의 사진과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 경험을 확장한다.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달리기’가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러닝은 이제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기록 가능한 경험이자 공유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SNS에는 러닝 크루의 단체 사진, 완주 메달, 새벽 공기의 감각까지 다양한 형태의 러닝 경험이 축적된다. 이는 개인의 일상이 타인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이 현상은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건강이 개인의 관리 영역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타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함께 달리는 것은 단순히 운동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즉, 러닝 크루는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복합적인 플랫폼이 된다.또한, 러닝 크루는 현대인의 ‘정체성 실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이나 가족이라는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러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은 비교적 가볍지만, 동시에 충분히 의미 있다. 특정 브랜드의 러닝화를 신고, 크루의 티셔츠를 입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함께 달리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되며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한다.여기에는 ‘속도의 정치학’도 숨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빨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러닝 크루에서의 속도는 다소 다르게 작동한다. 물론 여전히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이는 경쟁 중심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방식의 시간을 경험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결국, 함께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타인과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식이며,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다.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과도하게 얽히지 않는, 현대인이 선호하는 관계의 형태가 그 안에 담겨 있다.그래서일까. 오늘도 누군가는 이어폰을 빼고 달리기 시작한다. 혼자만의 리듬 대신, 타인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며. 그리고 그 순간, 달리기는 더 이상 외로운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이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공동체의 움직임이 된다.어쩌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달릴 것인가’보다 ‘누구와 달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_ 이완정_『외로움을 소비하는 사회』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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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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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1] 질문에서 확신으로_리서치에 불빛을 비추는 가설

조사라는 일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된다.“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왜 요즘 변화를 보이는 것일까?”“이 변화는 진짜 현상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현상일까?”리서처의 하루는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질문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세상은 너무 넓고, 데이터는 무한하다.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까지 파야 할지를 결정해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가설이다.가설은 단순한 추측도 아니지만, 맞거나 틀리는 진리의 명제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한 줄의 ‘확신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설’이라는 단어를 마주치면 언제나 숨이 턱턱 막혔던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두 음절의 단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지. 가설이란 도대체 어떤 놈이고,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허공에 손을 내저어 보지만 잡히는 것이 없을 때의 막연함을 그때의 기억으로 다시 떠올리게 된다.지금이야 가설이란 과학적 탐구와 연구의 핵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가설의 구성요소가 되는 변수(변인)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가설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리서치 리포트를 건네받은 적이 있었다. 리포트를 좀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리서처가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리포트여서 따로 언급할 부분은 없었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만약 이 리포트를 가설을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구성했다면, 훨씬 클라이언트나 대중에게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더 잘 전달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아마 평소에도 리서치 업무에 가설을 활용하는 것이 양질의 결과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도 높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리서치 업무에서 가설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방대한 현실을 하나의 탐색 경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마치 아무 정보 없이 숲을 헤매는 대신, 나뭇잎의 방향과 바람의 냄새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가설이 없어도 조사는 원만하게 진행된다. 설문을 만들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 숫자와 그래프는 결과를 그려준다. 하지만 그 조사가 누군가의 판단을 돕거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단순한 통계로는 부족하다.‘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라는 해석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가설을 세우지 않은 조사는 풍경 사진을 찍는 일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모든 걸 담지만 초점이 없다. 반면 가설이 있는 조사는 렌즈의 조리개를 한 번 더 조정해, 그 풍경의 빛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풍경을 담는다는 점에서 둘 다 사실을 기록하지는 하지만, 후자에는 의미의 깊이가 생긴다. 우리는 그 의미의 깊이를 흔히 통찰이라고 부른다.그러니까 가설은 통찰로 이어지는 문을 열 수 있는 손잡이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가설이 리서치에 도움을 주는 세 가지 정도의 역할을 이야기해보고 싶다.우선, 가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방향을 잡는 사고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리서치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을 때’이다. 이때 가설은 그 혼란을 줄인다.예를 들어, “20대 여성의 무알코올 음료 소비는 건강보다 ‘자기통제 이미지’ 욕구에서 비롯된다.”라는 가설이 있다면, 리서처는 응답 속에서 자연히 ‘통제’라는 단어를 유심히 읽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니게 되면 조사결과를 해석하는 눈에도 힘이 생긴다.두 번째 역할은 ‘팀의 사고를 한 축으로 응집’하는 것이다.조사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 분석가, 클라이언트가 각기 다른 지도를 펼쳐놓고 각자의 빨간 색연필로 지도를 칠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하지만 이럴 때, 명확한 가설이 존재한다면 논의의 초점이 그 가설에 맞춰지게 된다. 관련자들의 모든 대화는 가설을 중심으로 돌고, 각자의 지도가 아닌 하나의 지도를 펴놓고 같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것처럼.그때 비로소 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은 ‘같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가설은 ‘리서치를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 초기 단계에서 “직장인들이 조용한 퇴사를 꿈꾸는 이유는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자율성 상실’ 때문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하자.이 한 문장으로 조사 설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질문지에는 ‘피로도’ 대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들어가고, 인터뷰에서는 일과 자율성에 관한 정서적 표현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들다’라는 평범한 데이터 뒤에 감춰진 조사 대상자가 지닌 감정의 결이 드러나게 된다.그럼 한번 가상의 실제 사례를 떠올려보자.한 식품회사가 ‘자기관리형 소비자’를 타깃으로 새로운 브랜드의 간편식을 내놓았지만, 반응은 냉랭했다.처음엔 단순히 인지도나 가격 문제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팀 내부에서는 ‘혹시 소비자들이 이 제품을 다르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그래서 팀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리곤 아래와 같은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았다.“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건강식’이 아니라 ‘하루를 달래는 위로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물론 그 이후에 진행되는 조사 설계도 이 가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실제 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하루가 끝난 후 이 제품을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를 묻자, 놀랍게도 ‘휴식’, ‘보상’, ‘자기 위로’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결국, 식품회사는 해당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건강’에서 ‘오늘을 마무리하는 부드러움’으로 선회했고, 예상보다 훨씬 높은 공감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그날 이후, 팀은 가설을 “현상을 해석하는 문학적인 도구”로 보기 시작했다.물론 위의 사례는 가상적인, 그리고 가설을 상당히 긍정적인 도구를 본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요즘 같은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리서처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가설의 긍정적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요즘 같은 데이터 과잉의 시대에는, 오히려 ‘무엇을 믿어야 할지’가 더 모호하기 때문이다.수많은 그래프가 의미 없이 쌓이는 가운데, 리서처가 지녀야 할 것은 분석 기술이 아니라 의도 있는 시선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가설은 바로 그 시선을 문장으로 바꾼 결과물인 것이다.“20대 남성의 65%가 비대면 결제를 선호한다.”라는 조사결과는 물론 팩트로써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유는 여전히 숨겨져 있다.이때 “그 선호는 편의성 때문이 아니라, 관계 피로감 때문일 수 있다.”라는 한 줄의 가설이 등장하는 순간, 데이터는 해석력을 얻고, 리서치는 통찰이 된다.가설은 데이터의 침묵을 깨는 첫 번째 언어인 셈이다.이렇게 가설을 추앙하는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리서치 초보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물론 이런 질문은 석박사 논문지도를 할 때도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도 역시 연구의 초보자들이었으니까)“그런데 가설이 틀리면 실패 아닌가요?”그러나 리서치에서 가설은 맞히지 못하면 아웃이 되는 게임의 언어가 아니다. 여기에 가설에 대한 많은 사람, 심지어 석사 과정을 마친 리서처도 하는 오해가 작동한다.가설은 세울 때는 충분히 공부하고 심사숙고해서 ‘내가 공부하고 조사한 바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지만, 100% 진리라는 확신이 가설이 아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통계 검증을 통해 가설을 기각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대학원생들도 그리고 초보 리서처들도 그래서 궁금해한다. “기각되는 가설은 쓸모없는 거 아닌가요? 제 조사나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증명이 되는 셈 아닌가요?”가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 새로운 질문을 낳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기각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다시 더 참에 가까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기각된 가설은 수용되는 가설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고, 배양토가 되어준다. 다시 말해 가설은 가능하면 틀리지 않게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가설이 맞든 틀리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탐색의 결과가 통찰을 낳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틀린’ 가설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로 향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자.리서치의 세계는 냉철하다. 하지만 그 냉철함 속을 걸어가는 사람인 리서처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가설은 리서처의 감정이 다음과 같이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문장은 무엇일까?”이 물음에서 리서치의 첫 불빛이 켜지는 건 아닐까.그래서 가설은 정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데이터가 모호해도, 응답이 엇갈려도, 가설이 있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확신할 수 있다.“적어도 나는 이 세상을 이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라고 말이다.그 한 줄의 문장이, 방대한 조사 현장을 통찰의 길로 바꾸어놓는다.가설을 리서치에 활용한다는 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일이다.그리고 그 믿음이야말로, 오늘도 리서처들이 다시 ‘다음 질문’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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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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