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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2]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등장_합성소비자

  •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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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쓰려면 그래도 최근 조사업계의 동향이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 국내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관련 사이트를 둘러 보는 편이다.

그런데 작년 여름경부터 일본 업계 사이트에서 ‘가상소비자’라는 단어가 가끔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합성소비자’라는 번역어로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번역어가 합성소비자이든 가상소비자이든 영어의 ‘Synthetic Consumer’는, 말 그대로 실제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소비자를 뜻한다(이하 합성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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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이 합성소비자는 설문에 답하고, 제품 콘셉트를 평가하고, 광고 문구를 비교하며, 때로는 인터뷰 응답까지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사에 참여하는 디지털 소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 용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조사는 늘 빠르고, 싸고, 정확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구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그런데 합성소비자는 이 오래된 딜레마에 새로운 해법처럼 등장했다. 

조사 기간을 며칠에서 몇 분으로 줄이고, 패널 모집과 응답률 문제를 완화하며, 반복 테스트 비용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응답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의 합성소비자는 전통 조사를 무너뜨리는 존재라기보다, 조사를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도구에 가깝다.


신제품 출시를 앞둔 기업의 회의실. 

타겟 고객인 '친환경에 관심이 많고 가격에 민감한 20대 사회초년생'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실무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전이라면 설문지를 설계하고, 수백 명의 패널을 모으고, FGD을 진행하느라 수 주일의 시간과 큰 비용을 썼을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담당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단 몇 시간 만에 1,000여 명의 가상 고객들이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가격 저항선을 평가하며, 심지어 제품 패키징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까지 리포트로 쏟아낸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이미 글로벌 시장조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바로 합성소비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마케팅이나 조사업계에 종사한다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기존의 페르소나라면 “30대 직장인 A씨, 주말에는 캠핑을 즐기며 가성비를 중시함”, “30대 워킹맘”, “가격 민감한 20대 남성”처럼 타깃을 설명하는 프로필에 머문다.

반면 합성소비자는 그 프로필을 바탕으로 실제 응답처럼 답을 생성하고, 문항 간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우에 따라 개방형 의견까지 내놓는다. 합성소비자는 살아 숨 쉬는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대언어모델(LLM)과 방대한 실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합성소비자는 나이, 성별, 거주지와 같은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가치관, 취향과 같은 심리적 특성과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까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러므로 합성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B 테스트에서, 실제 인간처럼 특정 색상에 호감을 보이기도 하고,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장바구니에서 제품을 빼버리는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나 막대한 조사 비용의 장벽 없이도, 무한대에 가까운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서버 속의 완벽한 실험실'이 탄생한 셈이다.

쉽게 말하면, 합성소비자는 설명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응답하는 캐릭터이니 조사업계에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브랜드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이 제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지, 어떤 문구가 먹히는지, 어느 정도 가격이 수용 가능한지를 빠르게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 중요한 점은 합성소비자가 조사 전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탐색과 반복 검증을 매우 빠르게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합성소비자가 최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속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사에서는 설문 설계, 표본 모집, 필드 운영, 데이터 정제, 분석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합성소비자를 이용한 잘 설계된 모델을 이용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여러 개일 때, 어느 방향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

두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반복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컨셉 테스트나 메시지 테스트에서 비용 부담은 매우 크다. 합성소비자는 이 중 일부를 먼저 처리해 줌으로써 전체 프로젝트 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접근성이다. 모집이 어려운 고소득층, 특정 직업군, 희소한 소비층, 혹은 특정 언어권 응답자처럼 잡기 힘든 대상에 대해 빠르게 예비 반응을 볼 수 있다. 


합성소비자를 활용하면 이런 장점이 있으니 최근 국내외 조사기관에서는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대형 조사 플랫폼과 AI 기업이 결합하면서 하이브리드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Qualtrics의 Edge Audiences는 공개 데이터와 자사 경험 데이터, 예측 분석을 결합해 특정 인구집단의 응답을 합성한다. 이 서비스는 디자인 테스트, 도달하기 어려운 타깃 조사, 아이디어 검증 등에 활용되며, 기존 조사 플랫폼 안에 합성 응답을 직접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

유럽에서는 합성 응답의 정확도와 적용 범위를 더 신중하게 보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시장조사에선 항상 현실 데이터와의 비교 검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합성 결과도 실제 패널과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그래서 유럽 쪽 논의는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보다는 “어떤 과제에서 현실의 조사와 잘 결합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추고 있는 편이다.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른 실무 적용에 관심이 커 보인다. 특히 다국어 환경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시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용도로 합성소비자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Toluna가 15개 시장과 9개 언어로 합성 페르소나를 확장한 것도 이런 다국어·다시장 수요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조직을 중심으로 ‘예비 테스트용 AI 응답’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합성소비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회사 중 하나는 Toluna일 것이다. Toluna는 2025년 HarmonAIze Personas를 발표하며 합성 응답자 솔루션을 공개했고, 이후 2025년 10월에는 100만 개가 넘는 합성 페르소나를 15개 시장, 9개 언어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Toluna의 특징은 자사 커뮤니티와 패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응답자 수준의 합성 페르소나를 만들고, 이를 단순한 평균 응답이 아니라 개별적 소비자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Qualtrics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Edge Audiences는 자사 데이터 자산과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합성 응답을 생성하며, 제품 디자인, 타깃 검증, IP 보호, 개념 테스트 등에 활용된다. PureSpectrum과의 연계도 주목할 만한데, 실제 패널과 합성소비자 응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조사 플랫폼 안에서 바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YouGov는 Yabble을 인수하면서 생성형 AI 기반 인사이트 역량을 강화했다고 한다. 이는 합성소비자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패널 사업자가 AI 기반 조사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밖에 Evidenza, Aaru, Ditto, Simile 같은 스타트업들도 합성 조사 시장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빠른 테스트, 시뮬레이션, 합성 패널 생성 등을 내세우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또 PyMC Labs는 합성 소비자를 실무 가이드 형태로 정리하면서, 가격 테스트·제품 평가·세그먼트 검증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합성소비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서 많이 쓰이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아이디어 검증이다. 여러 개의 제품 콘셉트나 광고 메시지를 빠르게 비교해, 무엇이 더 유망한지 선별하는 용도다. 

둘째는 컨셉/클레임 테스트다. 포장 문구, 제품 효능, 기능 메시지처럼 고객 반응이 중요한 항목을 미리 점검하는 데 유리하다. 

셋째는 희소 타깃 탐색이다. 실제 조사가 어려운 세그먼트의 반응을 예비적으로 확인하는 데 쓰인다고 보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기업이 합성소비자를 조사 후반부가 아니라 조사 전반부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 소비자 대상 조사 전에 먼저 합성소비자로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좁혀 놓고, 그다음 실제 패널로 다시 정밀 검증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사 효율이 높아지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빨라진다.


물론 합성소비자의 활용은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도 존재한다. AI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니 완전히 새로운 혁신 제품에 대한 반응이나, 인간 특유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선,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완벽히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협회(MRS)는 이와 관련해서 “더 많은 합성 데이터가 항상 더 나은 통찰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며, 편향된 학습 데이터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과적합(overfitting)'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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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합성소비자 활용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미래에 대해 많은 조사회사와 리서처들이 조사업계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AI 중심으로 모든 비즈니스 재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합성소비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조사회사가 합성소비자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먼저 관련 기술을 경쟁자로만 보지 말고 조사 체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필요하다. 오히려 리서처의 역량을 한 차원 끌어올릴 가장 강력한 무기로 합성소비자 기술을 활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하이브리드 리서치(Hybrid Research)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A/B 테스트나 초기 아이디어 스크리닝, 제품의 사용성 테스트(UX)는 합성소비자에게 맡겨 속도와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지만,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하는 복잡한 심리 조사, 숨겨진 결핍을 찾는 심층 면접은 철저히 인간 리서처가 담당하는 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합성소비자에게 방향을 묻고, 실제 소비자에게 확신을 얻는 구조가 될 것이다.

둘째, '데이터 통역가(Data Interpreter)'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는 하락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쏟아낸 방대한 결과물 속에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그 결과가 현실의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셋째, 날카로운 '의문력(Questioning Power)'의 내재화가 필요하다.

합성소비자에게 훌륭한 대답을 얻으려면 훌륭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은 물론, AI가 내놓은 매끄럽고 그럴싸한 결과물 앞에서도 “왜 이 타겟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 데이터에 숨겨진 편향은 없을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드는 질문하는 힘이 리서처의 핵심 경쟁력이 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합성소비자가 아무리 정교하게 인간을 모방한다 해도, 그들은 타인의 아픔이나 기쁨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기계가 도출한 차가운 인사이트를, 클라이언트와 실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술은 거들 뿐, 결국 본질은 사람이다”랄까.


합성소비자의 등장은 시장조사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물리적 제약을 없애고, 리서처들로 하여금 인간 행동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해주는 도우미라고 보면 어떨까 한다.

가짜 소비자가 진짜 소비자를 흉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업계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통찰과 공감 능력일 것이다. 

도구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본질에 집중할 때, 합성소비자는 어쩌면 조사업계의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