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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외투·상의는 한 곳에서, 신발은 따로따로…품목별로 갈라지는 패션 소비 여정

- 픽플리 · 조사연구컨설팅 올림, 2,000명 대상 26-2Q 패션 소비 여정 리포트 발표 - 외투 · 상의 '플랫폼 원스톱', 신발 '네이버 검색→오프라인 매장' 분리같은 패션 쇼핑이라도 구매 품목에 따라 소비자 구매 여정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외투와 상의·하의는 패션 플랫폼 한 곳에서 탐색과 구매가 끝나는 '원스톱' 흐름이 자리 잡은 반면, 신발은 네이버 검색으로 정보를 찾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최종 구매가 이뤄지는 '분리형' 구매가 두드러졌다. 패션잡화는 어느 한 채널로 쏠리지 않는 분산형에 가까웠다.데이터 수집·분석 플랫폼 픽플리는 조사연구컨설팅 올림과 함께 진행한 '26-2Q 패션 소비 여정 리포트'를 공개했다고 7일 밝혔다. 올해 1~3월 패션 제품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인지·탐색·구매 전 과정 및 패션 쇼핑 관련 AI 활용도를 추적한 결과로, 직전 분기(1,000명) 대비 표본을 두 배로 확대했다.외투·상의, 패션 플랫폼에서 찾고 구매까지△ 26년 1분기 상의/하의 구매자의 정보 탐색 시 활용 채널 및 이유 (사진 제공 - 픽플리)외투(n=336)와 상의·하의(n=1,115)는 정보 탐색과 실제 구매 모두 패션 플랫폼이 1위였다. 외투는 탐색 27.4%·구매 31.0%, 상의·하의는 탐색 33.7%·구매 36.7%로 동일 채널 내 전환이 두드러졌다. 탐색 채널 선택 이유로는 '다양한 상품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어서'와 '가격·혜택 비교가 쉬워서', '실제 구매자 리뷰가 많아서'가 상위에 올랐다. 구매 단계에서는 '가격·할인 혜택', '기존 이용 경험에 따른 신뢰', '배송 편의성'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신발은 달랐다…네이버 검색으로 찾고, 매장에서 신어보고 산다△ 26년 1분기 신발 구매자의 제품 구매 시 활용 채널 및 이유 (사진 제공 - 픽플리)신발(n=355)은 경로가 갈렸다. 정보 탐색 1위는 네이버 검색(25.6%)이었고, 실제 구매 1위는 오프라인 매장(25.4%)이었다. 매장 선택 이유로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바로 구매할 수 있어서'가 가장 높았고, '기존 이용 경험에 따른 신뢰', '가격·할인 혜택'이 뒤를 이었다. 사이즈와 착용감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품목 특성이 다른 카테고리와는 다른 동선을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패션잡화(n=188)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정보 탐색은 패션 플랫폼(20.2%)이 1위였지만, 실제 구매 단계에서는 패션 플랫폼(24.5%), 네이버쇼핑(20.7%), 오프라인 매장(20.2%)이 4%포인트 안팎의 좁은 격차로 분산됐다. 어느 한 채널로 쏠리지 않고 가격·신뢰·편의성 중 어느 요소를 우선순위에 두는지에 따라 구매처가 나뉘는 양상이다.인지 출발점은 '필요해서'…SNS는 보조 수단△ 26년 1분기 외투 구매자의 제품 인지 계기 및 광고·콘텐츠 노출 유형 (n=336, 26년 1분기 외투 구매자)구매 여정의 시작점은 제품군과 무관하게 비슷했다. '구매할 때가 되어서'라는 응답이 외투 61.0%, 상의·하의 61.4%, 신발 62.0%, 패션잡화 54.3%로 모두 과반을 차지했다. 우연한 노출이 아니라 필요 인식이 먼저 형성된 뒤 인지가 시작되는 흐름이다. 보조적 인지 채널로는 외투, 상의·하의, 패션잡화에서 인스타그램(각 26.9%·27.4%·38.2%)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신발만은 다른 품목과 달리 쇼핑앱 메인·추천 탭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AI 활용 37%…헤비 쇼퍼는 절반 돌파△ 패션 제품 구매 시 AI 활용 경험 여부 및 AI 모델 선호도 데이터 (사진 제공 - 픽플리)쇼핑 과정에서 대화형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7.0%로 집계됐다. 다만 쇼핑 빈도에 따른 차이는 컸다. 월 4~5회 구매 집단은 44.1%, 월 6회 이상 헤비 쇼퍼는 51.1%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용 서비스는 챗지피티(55.6%)가 1위였고, 구글 제미나이(36.0%)가 직전 분기 대비 약 10%포인트 상승하며 빠르게 추격 중이다. AI에 가장 기대하는 기능은 '예산 범위 내 제품 추천'(29.6%)으로, 소비자들이 AI를 감각적 스타일리스트보다 실용적 조력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패션 소비 행태를 성별·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전 집단에서 월 1~3회 수준의 구매 빈도와 20만 원 미만의 지출이 주를 이뤘으나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2030 여성은 같은 연령대 남성 대비 구매 빈도가 다소 높으면서도 중저가 중심의 소비를 이어갔고, 4050 여성은 월 2~3회의 안정적인 구매 빈도에 고액 지출 비중까지 더해진 양상을 보였다.남성 집단에서는 4050 남성이 2030 남성과 유사한 빈도를 보이면서도 더 높은 지출 여력을 드러낸 반면, 2030 남성은 중저가 금액대와 중간 수준의 빈도에 집중하며 실용적 소비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모든 조사 대상 집단에서 최근 구매 품목은 상·하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나 공통된 수요를 확인했다.출처 : 더케이뷰티사이언스(주)외투·상의는 한 곳에서, 신발은 따로따로…품목별로 갈라지는 패션 소비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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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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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4] 버추얼 생활자, 말하지 않는 마음을 읽는 법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한참 광고를 포함한 마케팅 전반의 관심이 하늘을 찌를 시기여서 많은 친구가 광고대행사를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소비자 심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그런데 정작 광고와 관련된 소비자 심리학에 관한 정보나 뉴스를 손에 넣을 방법이 별로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각 광고대행사가 발행하는 사보였다. 당시 사보에는 해외 연구도 소개되고 광고 사례도 많이 담겨있는 그야말로 정보의 보고였다. 하지만 한정된 부수만 발간해서 배포했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그래서 꾀를 내었다. 홍보실의 주소를 알아내서, “광고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인데, 귀사의 사보에 관심이 많고 귀사의 광고를 사례로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직접 사보를 받아보고 싶은데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써서 모든 광고대행사에 보냈다. 크게 기대를 안 하면서.그런데 의외로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를 비롯해서 모두 7개의 광고대행사에서 사보를 집으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학부 4학년 여름방학 즈음부터 시작해서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5년간, 집에는 그렇게 차곡차곡 사보가 쌓여갔다. 학생이 개인적으로 사보를 받아보는 경우가 없으니, 잘난 척하면서 친구들에게 빌려주기도 하던 기억도 있다.지금은 광고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광고회사의 동향이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에 나오면 읽어보는 걸 보면 미련이 조금은 남아있나 보다.이번 컬럼에서는 리서치 라운지 12회차에서 다룬 ‘합성소비자’와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만난 일본 2위의 광고대행사인 ‘하쿠호도(博報堂)’의 기사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2025년 11월, 하쿠호도 그룹은 독자적으로 보유한 풍부한 생활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하여 복수의 생활자를 재현하고, 이들 생활자들과 언제라도 대화할 수 있는 ‘Evidence Based 버추얼 생활자(Virtual Seikatu-sha)’를 개발해, 글로벌 차원에서 하쿠호도 그룹의 전사원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발표했다.하쿠호도 그룹이 버추얼 생활자를 개발한 이유로는, 현재 AI의 활용이 한층 더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룹 차원에서 ‘Human-Centered AI’라는 기치 아래 인간 중심의 AI 활용과 AI에 의한 인간의 창조성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하쿠호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룹의 모든 사원이 생활자의 생각을 근간으로 하는 발상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고, 2024년부터는 AI를 활용하여 생활자 발상을 보다 철저하고 깊게 하기 위해 ‘생활자 발상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버추얼 생활자의 개발을 진행해왔다.버추얼 생활자는 2024년 3월에 프로토타입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개량이나 실증 실험을 실시하면서, 보다 현실에 가까운 생활자의 생성과 지원되는 발상의 ​​질을 올리기 위한 개발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번에 개발한 Evidence Based 버추얼 생활자는 성별이나 연령 등의 속성 데이터뿐만 아니라 취미, 기호 등의 심리 데이터, 그리고 이용하고 있는 웹사이트 등의 행동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다.이런 데이터는 하쿠호도 그룹의 독자적인 20만 건의 대규모 조사 패널인 Querida 패널의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었다. Querida 패널은 하쿠호도 그룹이 1년에 한 번, 20만 ID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조사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를 말한다. 데모 그래픽 정보 외에, 생활에 관한 질문, 미디어의 접촉이나 상품 구입에 관한 질문이 포함되면, 인터넷상의 행동 데이터와도 연결 가능하여 어떤 정보를 열람했는지, 어떤 정보에 흥미를 보였는지에 대해도 알 수 있다.생활자 발상 플랫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이런 독자적인 생활자 데이터라 할 수 있다. 하쿠호도 그룹은 버추얼 생활자를 업무에 활용함에 따라, 현실에서 살아있는 생활자를 재현할 수 있어 업무나 마케팅 과제에 맞춘 가상 생활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사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의문을 바탕으로 버추얼 생활자와의 질 높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질문과 힌트를 얻을 수 있다.<버추얼 생활자 페르소나(위)와 대화형UI(아래) 이미지>*출처 : https://www.hakuhodo.co.jp/news/newsrelease/109174버추얼 생활자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버추얼 생활자와 상시 대화 가능한 공동창조형(Co-creation) UI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공동창조는 기업이 고객(또는 이해관계자)과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만들며,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접근 방식을 말한다.이 시스템에서는 데이터 기반의 타겟 분석으로 얻은 페르소나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몇 번의 클릭만으로 버추얼 생활자를 생성한다. 따라서 전문적인 프롬프트 작성은 불필요하며, 단시간에 다수를 생성할 수 있다.버추얼 생활자를 동시에 여러 명 설정하여 채팅 형식의 UI로 대화할 수도 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 등 일방적인 의견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의견을 얻어 사원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기도 하다.이미지나 영상을 제시하여 의견을 구할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얻을 수도 있다. 게다가 타겟을 정확히 포착한 제안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이 시스템이 글로벌 차원으로 도입됨에 따라 하쿠호도 그룹은 그동안 추구해왔던 ‘생활자 발상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버추얼 생활자와의 대화 과정에서 하쿠호도 그룹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생활자의 심층 심리와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위한 생활자 발상법을 활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래더링(Laddering) 기법’ 등을 적용하면 AI가 지정된 프로세스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답변을 해준다.하쿠호도 그룹은 2024년 6월 미디어 비즈니스 및 디지털 마케팅 영역은 물론, 크리에이티브 제작, 판촉·CRM(고객 관계 관리), 유통 영역까지 원스톱으로 통합·관리가능한 통합마케팅플랫폼인 ‘CREATIVITY ENGINE BLOOM’의 개발을 발표했는데, 버추얼 생활자가 이 플랫폼의 핵심 기능이 자리하면 자사의 모든 업무 영역과 연동되면 이전보다 더 깊이 있게 생활자의 심리를 포착하는 마케팅 실행과 전략 입안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참고로 CREATIVITY ENGINE BLOOM은 STRATEGY BLOOM(마케팅 전략 수립 지원;시장 구조 가시화, 타겟 설정, KPI 책정 등), MEDIA BLOOM(미디어 효과 극대화; TV와 디지털을 조합한 최적화). CREATIVE BLOOM(크리에이티브 제작 지원;AI를 활용한 평가 및 자동 생성), COMMERCE BLOOM(마케팅 전략 입안 지원; 구매 데이터와 EC 플랫폼 연동), ENGAGEMENT BLOOM(고객과의 관계 구축 지원; SFA/MA 툴 연동, LTV 향상), 생활자 DATA PLATFORM(그룹 독자 데이터와 외부 데이터를 일원 관리하는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음)인터넷에 올라온 하쿠호도 그룹의 공개 보도자료 등을 살펴보면 버추얼 생활자를 활용하여 이미 여러 캠페인에서 전략 설계 단계를 눈에 띄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하나의 사례로 ‘Advertising Week Asia 2025’ 세션에서 하쿠호도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태국에서 새 SUV를 출시하면서 누구를 핵심 타겟으로 삼고 어떤 커뮤니케이션 설계를 해야 할지 정의하는 일에 버추얼 생활자를 활용했다고 한다.하쿠호도 팀은 클라이언트가 보유한 정량·정성 데이터에서 타겟 후보를 추려 20~30개의 페르소나를 정의하고, 이 프로파일을 기반으로 태국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지닌 버추얼 생활자를 생성하여, 이들 버추얼 생활자들 각자와 대화를 반복하면서 SUV에 대한 기대, 불만, 생활 문맥 상의 포지셔닝을 탐색했다.그리고 각 버추얼 생활자에게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또는 불안한지?”를 한 명씩 깊이 물어보면서 긍정·부정 포인트를 정리하여, 이렇게 뽑힌 힌트들을 바탕으로 캠페인의 핵심 콘셉트를 다시 규정하고 타겟 세그멘트별 서브 메시지 방향까지 세분화했다. 버추얼 생활자를 활용해서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콘셉트를 재정립한 것이다.이후 도출된 콘셉트로 여러 버전의 크리에이티브를 제작한 뒤, 버추얼 생활자에게 각각 노출해 “어떤 버전이 더 와닿는지” 정성 피드백을 수집하고, 실제 출시 후를 가정해서 매장에서 딜러 매장에서 고객과 판매원이 나눌 대화나 오너가 SNS에 올릴 리뷰와 댓글 흐름까지 시뮬레이션하여, 캠페인 메시지와 세일즈 토크의 불일치 지점을 미리 발견하고 조정하였다.하쿠호도 그룹은 버추얼 생활자를 도입하면서 마케팅 전략이 세 가지 방향에서 크게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타겟 정의의 방식 자체가 ‘표적’에서 ‘인물’로 이동하였다. 기존에는 연령·소득·가족 구성 등으로 정의된 세그먼트에서, “어떤 하루를 사는 사람인가, 어떤 도로를 누가, 누구와 달리는가”까지 포함한 생활 장면 기반 타깃 정의로 전환되었다.메시지 설계 면에서는 ‘기능 설명’보다 ‘생활자 내러티브’ 비중이 강화되었다. 버추얼 생활자들에게서 뽑힌 말들은, “연비가 좋다”보다 “주말에 아이를 태우고 교외로 나갈 때 안심되는 차” 같은 스토리형 표현이 많았고, 이 결과, 캠페인 메시지도 스펙 나열 중심에서 생활 맥락 속 장면과 감정에 초점을 둔 내러티브로 재구성되었다고 설명한다.이렇게 론칭 전 단계에서의 버추얼 생활자들과의 대화에서 도출된 ‘불안 요소’(가격 민감도, 유지비, 사이즈 걱정 등)를 사전에 정리하고 리스크를 인지할 수 있어 마케팅 전략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쿠호도 그룹은 평가하고 있다.버추얼 생활자의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조사와 마케팅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버추얼 생활자는 어쩌면 이제 단순히 소비자를 분류하고 예측하는 도구를 넘어, 사람의 생활과 감정, 판단의 맥락을 보다 입체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이는 하쿠호도 그룹이 오랫동안 사람을 ‘소비자’가 아니라 ‘생활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축적해 왔고, 소비 행위만이 아니라 그 행위가 놓인 일상, 관계, 감정, 가치관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버추얼 생활자 개념의 핵심은 단순한 페르소나 생성이 아니다. 버추얼 생활자는 특정 연령대나 성별을 대표하는 상징적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생활자의 데이터와 맥락을 반영해 구성된 반응형 모델이기 때문이다.질문을 던지면 응답하고, 맥락을 바꾸면 다른 반응을 보이며,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보다 깊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으니, 기존의 설문이나 인터뷰가 포착하기 어려웠던 미묘한 감정의 결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버추얼 생활자는 조사 업무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조사 회사가 가진 해석 능력과 현장 감각을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버추얼 생활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리서치가 지녀야 하는 앞으로의 경쟁력은 이제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 “얼마나 깊게 읽어내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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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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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4] 함께 존재의 소소한 흔적을 기록하는, 셋로그

미술관을 좋아한다. 한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기도 했었고, 미술 관련 책이나 영상, 콘텐츠도 즐기고, 해외여행도 가장 먼저 계획에 그 지역 미술관을 넣을 만큼 미술관을 좋아한다. 경제적 여유가 안 되니 비싼 그림은 사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품들은 꽤 가지고 있는 편이다.지난 주말, 원주의 미술관에 다녀온 것은 딸의 추천이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그래도 대형 전시회가 있다고 해서였다. 서울에서는 조금 먼 곳이고 다소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곳이기는 하지만 초여름 자연의 품을 즐길 수 있으니 겸사겸사 나쁘지 않을 듯했다.미술관을 한 바퀴 다 돌고 카페의 바깥 자리에 앉아 산을 바라보면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딸이 급하게 아이스커피가 담긴 유리잔을 들고 초록이 상큼하게 피어난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무언가의 작업을 한다.친구들과 SNS를 하나보다 하고는 한번 보여달라고 하니 요즘 유행하는 셋로그(setlog)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앞뒤에 앉아있는 젊은 무리들도 모두 셋로그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1시 정각이 되어서 모두 하는 것 같다면서.작가가 남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즐기고 나왔더니 사방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유행한다는 셋로그, 도대체 무엇일까? 셋로그는 친구들과 그룹 방을 만들고, 1시간마다 울리는 알림에 맞춰 2~4초 분량의 짧은 일상 영상을 촬영하여 자동으로 하나의 분할 브이로그를 완성해 주는 젊은 세대의 인기 소셜 미디어 앱을 말한다.iOS로 먼저 출시되었고, 안드로이드 용으로는 2026년 4월 23일에 출시되었는데, 꾸미거나 거창한 편집 없이 출근길, 공부, 취미 등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소통하는 날 것의 일상 공유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 소통이 일상이 된 시대인 지금,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방법은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양새다. 디지털 소통 시대의 메시지는 너무 빠르고, 피드는 너무 복잡하며, 관계는 언제나 바쁘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셋로그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 감각을 제안한다. 정교하게 편집된 콘텐츠보다,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감각을 남기는 것이다. 셋로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SNS와 구별된다. 화려한 자기표현보다 일상의 동시성을 기록하고, 보여주기보다 공유하는 방식에 가깝다.셋로그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능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용자는 매시간 또는 일정한 간격에 맞춰 짧은 영상을 찍고, 그 조각들을 이어 하루의 흐름을 남긴다. 별도의 긴 편집이나 과도한 연출이 필요하지 않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누군가와 동시에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이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기록의 부담은 줄고, 관계의 감각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셋로그의 특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역시 기존 소통 방식과의 차이가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셋로그가 기존 소통 방식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소통의 부담을 낮췄다는 데 있다. 문자메시지, 댓글, 영상통화, DM은 모두 어느 정도의 응답을 전제로 한다. 보낸 사람은 반응을 기대하고, 받는 사람은 적절한 답을 고민한다. 이 과정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동시에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어떤 말로 답해야 할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셋로그는 이 구조를 바꾼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도 각자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흔적은 남길 수 있다. 이 점에서 셋로그는 대화형 소통이라기보다 ‘기척’을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무언가를 직접 묻고 답하지 않아도, 상대의 하루를 짧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관계는 유지된다. 사람들은 이 가벼운 접촉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또 다른 차이는 소통의 중심이 ‘메시지’에서 ‘동시성’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기존 SNS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보여주는 데 익숙했지만, 셋로그는 그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정보보다 리듬이 앞서는 것이다. 이 변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를 만든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간의 감각을 나누는 관계로 옮겨가기 때문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젊은 세대가 왜 셋로그에 끌리는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결국, 셋로그가 빠르게 인기를 끌고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현대인의 심리적 피로가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늘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자주 지친다. 언제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언제든 비교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가볍고 덜 소모적인 소통 방식을 찾는다. 셋로그는 바로 그 욕구를 정교하게 건드린다.소통이 많아질수록 관계가 깊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응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피곤함도 커진다. 셋로그는 관계의 피로감을 해소하는 데에 최적이다. 짧은 기록만으로 참여할 수 있으니 감정적 부담이 낮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다는 것은, 바쁜 일상 속에서 매우 큰 장점이다.유행의 배경에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외로움의 완화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완전히 혼자라는 감각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은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셋로그의 알림과 반복되는 기록은 이런 안정감을 작게나마 제공한다. 눈에 띄는 대화는 없어도, 누군가가 지금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표현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유행의 배경이 되었다.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 나아가 멋지게 잘 꾸며서 보여주는 것이 자기표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너무 완벽한 자기표현은 오히려 피로와 거리감을 만든다. 셋로그에서 중요한 것은 멋짐이 아니라 진짜 일상이다. 흐트러진 머리, 대충 찍은 책상, 하품이 섞인 표정 같은 장면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 솔직함에서 안도한다.셋로그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기를 얻고 트렌드가 되긴 했지만 명확한 단점도 있다. 일단 1시간 간격으로 영상을 올리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되면 울리는 알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모든 친구가 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장기적으로 그룹이 유지될 가능성도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셋로그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는 이유는 동시성이라는 감각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하루는 점점 분절된다. 출근 시간도 다르고, 식사 시간도 다르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도 실제 생활의 리듬은 어긋나 있기 쉽다. 이때 셋로그처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는 관계의 리듬을 다시 맞추는 역할을 한다.동시성은 인간관계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반드시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친밀한 것은 아니다. 같은 순간에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연결을 느낀다. 셋로그는 이 감각을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매번 긴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찍은 짧은 영상이 모이면 하루 전체가 하나의 공동 경험처럼 느껴진다.이 점에서 셋로그는 새로운 형태의 느슨한 공동체를 상징한다. 과거의 공동체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면, 지금의 공동체는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결로 옮겨가고 있다. 셋로그는 이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서로를 매일 붙들지 않아도, 같은 시간에 하루를 남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충분히 관계가 생긴다.오늘날의 SNS 문화는 점차 과시에서 감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멋진 곳에 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방식은 피로를 낳았다. 보는 사람은 비교에 지치고, 올리는 사람은 꾸준히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SNS는 관계를 연결하는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감정 소모의 장소가 되었다.셋로그는 이 흐름을 다르게 바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에게 잘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어떤 감도로 남기느냐이다. 화려한 장면보다 생활의 질감이 더 중요하고, 완성된 결과보다 지나가는 과정이 더 가치 있게 읽힌다. 이는 단순한 미감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윤리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더 잘 보여주기보다 더 덜 지치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이런 흐름은 특히 Z세대와 젊은 직장인층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디지털 도구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디지털 피로도 강하게 느낀다.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늘 혼자인 듯한 감각, 늘 보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해받지 못하는 감각을 자주 경험한다. 셋로그는 이 모순된 심리에 맞닿아 있다. 이 플랫폼은 거창한 존재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아주 작고 일상적인 흔적만으로 연결을 유지하게 해준다.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셋로그는 몇 가지 중요한 욕구를 동시에 충족한다. 첫째는 소속 욕구다. 사람은 집단 안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셋로그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적더라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소속감을 형성한다.둘째는 인정 욕구다. 다만 셋로그에서의 인정은 거창한 칭찬이나 비교의 결과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하루의 작은 조각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인정이 된다. 잘난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습이 주목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구조는 자기검열을 줄이고, 관계에 대한 부담을 완화한다.셋째는 통제감이다. 현대인은 많은 영역에서 예측 불가능함을 경험한다. 일, 인간관계, 사회 분위기 모두 늘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셋로그는 아주 작은 단위의 루틴을 제공한다. 정해진 시간에 찍고, 남기고, 돌아보는 과정은 하루를 정리하는 감각을 준다. 반복 가능한 작은 습관은 삶 전체의 불안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넷째는 자기서사 욕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떤 하루를 살아왔는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셋로그는 그 서사를 거창한 이야기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하루 조각들을 모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조용히 축적한다. 이 방식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부담을 줄이면서도, 삶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셋로그가 널리 확산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일상에 대한 태도 변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록할 만한 일과 기록할 가치가 없는 일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여행, 기념일, 성취는 기록할 만한 것이고, 출근, 식사, 대기, 퇴근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사소한 시간 속에 자신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셋로그는 이런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엇을 해냈는가보다 오늘을 어떻게 지나왔는가가 중요해진다. 기록은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선다. 삶을 성과 중심으로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작은 선언이기도 하다. 일상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주인공이 된다.이런 관점에서 셋로그는 현대인의 삶을 조용히 재해석한다. 우리는 늘 대단한 장면만이 삶의 가치라고 배워 왔지만, 실제로 마음에 남는 것은 대개 별일 없던 시간들이다. 따뜻한 빛이 들어오던 오후, 아무 말 없이 걷던 길, 피곤했지만 웃었던 순간 같은 것들이다. 셋로그는 이런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기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니 셋로그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소통 문법의 출현을 보여준다. 이 문법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가벼움이다. 둘째는 동시성이다. 셋째는 진정성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작동할 때 더 강한 친밀감을 만든다.가벼움은 참여를 쉽게 만들고, 동시성은 관계를 느끼게 하며, 진정성은 그 관계를 오래가게 한다. 셋로그는 이 구조를 아주 적은 장치로 구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기함으로 접근하지만, 점차 습관처럼 사용하게 된다. 큰 결심 없이도 이어지는 관계, 설명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 부담 없이 확인되는 관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물론 셋로그가 모든 소통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깊은 대화, 정서적 지지, 갈등 조정은 여전히 별도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셋로그는 그 이전 단계, 즉 관계를 잊지 않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관계가 끊기지 않고, 무거운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를 놓치지 않는 방식. 이것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의 형태일 수 있다.셋로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관계를 이어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화려한 말, 완벽한 이미지, 긴 설명이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는 아주 작고 조용한 장면들로도 충분히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것인지 모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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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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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3] 저출산 시대의 조사회사, 표본, 그리고 질문의 미래

컬럼의 주제를 생각하느라고 골머리를 앓고 있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집사람이 슬며시 기사 하나를 오려서 내민다.“인도, 14억 인구조사에 310만명 동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인구 14억 명을 넘어선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인도가 300만 명이 넘는 공무원을 투입해서 1조 8,800억 원이 소요되는 인구조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기사의 끝에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35세 이하일 정도의 젊은 국가인 인도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감소에 직면한 선진국과 달리 인구 구조의 활력을 노동력 확대와 경제 성장으로 연결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번 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많은 인구, 게다가 여전히 높은 출산율로 젊은 인구 비율이 높은 인도의 조사가 엄청난 규모로 진행된다는 기사를 읽다 보니 문득 인도의 조사회사들은 당분간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이렇게 많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조사가 이루어질까.그렇다면 저출산으로 점진적인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과연 저출산으로 조사업계와 조사회사는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있다면 어떤 영향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여기서 잠깐! 정부나 언론은 최근에는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출산 주체인 여성에 무게를 둔다는 비판을 받자 ‘저출생’으로 대체·병행 표기하고 있다. 필자도 이런 점에서는 저출생을 사용하고 싶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은 원인·행위(출산)와 결과(출생)를 섞어 쓰면 혼동이 생길 수 있다고 하고, 용어의 사용 목적이 저출산은 ‘장기 인구 추세 예측, 국가 간 비교’에, 저출생은 ‘단기 인구 추이, 지역별 출생 규모 비교’라는 점에서 저출산으로 통일하여 표기하고자 한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출산은 더 이상 출산율 그래프 속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생각을 묻고, 사람의 선택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변화일 것이다. 조사회사에게 저출산은 단순히 “가족 시장이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표본이 바뀌고, 조사 주제가 바뀌고, 응답자의 마음이 바뀌고, 결국 조사라는 일의 의미까지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예전에는 출산과 육아가 하나의 보편적인 생애 경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과정이고, 출산은 결혼의 당연한 다음 단계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는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낳는 대신 다른 삶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도 있다.저출산은 결국 이런 다양한 삶의 선택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조사는 바로 그 거울 앞에 서 있는 일이다.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되어 왔다. 최근 출생 통계는 다소 반등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 구조를 바꿀 정도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초에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을 보면 가임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0.8명으로 2024의 0.75보다는 올랐지만, 이는 여전히 OECD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데이터 출처: 국가데이터처, ‘2025년 출생·사망통계(잠정)’, 2026년 2월숫자만 보면 이 0.8명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조사회사에게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사 대상의 구조가 달라지고, 시장의 중심이 이동하고, 질문의 언어도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저출산이 조사업계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표본이 줄어드는 희소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출산과 육아 관련 조사는 원래도 민감한 편이지만,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대상 집단은 더 작아지고 더 복잡해진다. 예전에는 단순히 “30대 기혼 여성” 또는 “영유아 자녀를 둔 가구” 정도의 기준으로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녀 유무, 맞벌이 여부, 주거 형태, 부모와의 거리, 돌봄 지원 유무, 경제적 압박 수준, 재직 상태까지 함께 봐야 한다.이 말은 곧,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분류만으로는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 수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맥락이 더 중요해진다. 표본이 얇아질수록 조사는 숫자보다 생활의 결을 읽어야 한다. 같은 ‘무자녀 기혼자’라도 누군가는 아직 계획 중이고, 누군가는 불임 치료를 경험했으며,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비출산을 선택했고, 또 누군가는 일과 관계의 불안정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수 있다. 저출산 시대의 조사는 이 다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조사회사는 예전보다 더 정교한 설계 능력을 요구받는다. 가중치 조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세그먼트별 해석력과 코호트 감각이 필요하다. 출산 관련 조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응답자 수가 적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같은 응답자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 전혀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는 이제 표본을 모으는 작업을 넘어, 표본의 의미를 복원하는 작업으로 진화하고 있다.저출산이 조사에 미치는 영향은 표본의 희소성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조사 대상자의 응답 태도 자체도 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당연한 선택이 아니라서, 관련 질문은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섬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 계획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경제적 부담, 커리어에 대한 기대, 관계의 안정성, 주거 문제, 돌봄 인프라에 대한 신뢰까지 모두 들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가지 이유로 출산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 역시 단선적인 문항으로는 현실을 충분히 담을 수 없다.이 지점에서 조사회사의 역할은 단순한 데이터 수집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좋은 조사는 조사 대상자인 응답자가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저출산과 관련한 조사에서는 특히 그렇다. 결혼하지 않은 삶, 아이를 낳지 않는 삶, 늦게 낳는 삶, 아예 낳지 않는 삶, 이 모두가 존중받는다는 감각이 조사 문항 안에 스며 있어야 한다. 질문이 사람을 판단하는 느낌을 주면 응답은 닫히고, 질문이 사람의 현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담고 있으면 응답은 열리게 마련이니까.저출산 현상은 조사회사의 클라이언트 자체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유아용품, 교육, 가족보험, 아동 중심 소비재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1인 가구, 비혼, 무자녀 가구, 시니어, 돌봄, 건강관리, 재무설계, 주거, 여가, 디지털 구독 같은 분야는 더 정교한 데이터 해석이 필요해진다. 이것은 조사회사 입장에서 매우 큰 변화다. 더 이상 ‘가족’만을 중심으로 시장을 읽는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 조사에도 영향을 준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아이를 가진 사람’보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소비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고,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보험, 건강관리, 여행, 구독 서비스, 라이프스타일 산업 전반이 개인 단위의 의사결정에 더 민감해지고 있다. 조사회사는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해석 기관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시장 규모 추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 변화와 소비의 감정선을 함께 읽어내야 한다.특히 저출산 시대에는 행태 데이터와 설문 데이터의 결합 가치가 커진다. 사람들은 설문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보다 더 복합적일 수 있다. 출산 의향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실제로는 여러 조건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특정 정책이나 환경 변화에 반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사회사는 이제 설문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생활의 흔적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우리 사회에서 저출산은 단지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 노동, 주거, 교육, 돌봄, 성평등, 기업 문화, 미디어 표현까지 이어지는 복합 사회 이슈다. 그래서 최근의 조사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출산 의향’이나 ‘육아 만족도’처럼 비교적 직접적인 질문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왜 결혼을 미루는가’, ‘왜 아이를 낳기 어려운가’, ‘왜 출산 이후 삶이 두려운가’ 같은 구조적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이런 변화는 조사 주제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저출산을 다루는 조사는 이제 단순한 가족 조사가 아니라, 삶의 안정성에 대한 조사로 바뀌고 있다. 주거비, 일자리 안정성, 경력 단절 우려, 돌봄 공백, 교육비 부담, 관계의 지속 가능성, 개인의 삶에 대한 기대가 모두 조사 항목 속으로 들어온다. 즉, 저출산 조사는 어느 한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체온을 읽는 작업이 된다.또한, 미디어와 콘텐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조사에서는 다수의 응답자가 미디어가 결혼·출산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이는 사람들의 저출산 인식이 단지 통계나 정책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는 콘텐츠와 이야기의 톤에도 크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결혼을 고통스럽고 출산을 희생처럼만 그리는 콘텐츠가 반복되면, 사람들의 상상력은 더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가족의 모습과 현실적인 돌봄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선택의 폭은 조금 더 넓어질 수 있다. 조사도 이런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저출산이 조사와 산업을 바꾼 사례는 해외에도 많다. 일본은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초저출산과 고령화를 경험하면서, 조사 주제의 무게중심이 크게 이동했다. 과거에는 유아·아동 중심 시장에 관심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령자 시장, 돌봄, 간병, 지역사회, 노동력 부족, 은퇴 이후 생활에 대한 조사 비중이 커졌다. 일본의 경험은 저출산이 단순한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 구조와 서비스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유럽도 비슷하다. 유럽에서는 저출산을 가족 정책만으로 보지 않고, 노동시장, 주거, 복지, 이민, 젠더 정책과 연결해 논의해 왔다. 그만큼 조사 역시 더 넓은 시야를 요구받았다. 출생 관련 조사뿐 아니라 고령화, 지역 소멸, 복지 수요, 주거 이동, 세대 간 갈등에 대한 조사가 활발해졌다.이런 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조사회사는 한정된 출산 시장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는 조사 주제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조사회사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새로운 수요를 선점할 수 있다. 반대로 변화에 늦으면, 시장은 이미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을 수 있다.저출산 시대의 조사업무는 분명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사람의 삶이 더 다양해지고 선택이 더 복잡해질수록, 조사자는 더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사의 경쟁력은 숫자를 많이 모으는 데 있지 않다. 숫자 뒤의 사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이를 위해 앞으로 조사회사는 몇 가지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표본 전략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둘째, 가족과 출산을 다루는 문항은 더 비판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행태 데이터와 설문 데이터의 결합이 더 중요해진다. 넷째, 저출산을 정책 문제로만 보지 않고 생활 방식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언어 또한 더 섬세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숫자는 정확해야 하지만, 해석은 차갑기만 해서는 안 된다.조사회사는 언제나 사회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시장의 중심이 옮겨가고, 세대의 구조가 달라질 때, 가장 먼저 그 흔들림을 기록하는 곳이 조사다. 저출산은 그 흔들림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변화다. 아이가 줄어드는 사회는 질문도 달라진다. 예전의 질문이 “얼마나 낳을 것인가”였다면, 이제의 질문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더 가깝다. 그리고 조사는 바로 그 질문의 언저리에 서 있어야 한다.저출산은 조사회사 입장에서는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인 이유는 조사 대상이 줄고 시장이 줄어들기 때문이고, 기회인 이유는 그만큼 더 깊고 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삶의 경로를 따라 살지 않는다.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조건 속에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간다. 조사회사는 그 다양해진 삶을 읽어내는 직업이다.그래서 저출산 시대의 조사는 단순한 숫자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어디에서 불안해하고 어디에서 주저하며 어디에서 다시 희망을 찾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조사회사가 이 변화를 정확히 읽어낼수록, 더 나은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고, 더 적절한 서비스와 상품을 설계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는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저출산은 분명 불안한 신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회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질문이 살아 있는 사회라면, 변화의 가능성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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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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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13] 빌딩 숲 사이, 12시의 오아시스_ 런치케이션

오전 11시 50분, 도심의 오피스 빌딩 숲.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낮게 깔린 회의실의 백색소음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정오를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 혹은 컴퓨터 모니터 우측 하단의 숫자가 ‘12:00’으로 바뀌는 순간, 팽팽했던 공기는 일순간 이완된다.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빌딩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과거의 점심시간이 그저 텅 빈 위장을 채우고 서둘러 모니터 앞으로 복귀하는 주유소와 같은 시간이었다면, 최근 12시의 풍경은 사뭇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사람들은 더 이상 식사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이 허기를 느끼는 곳은 위장이 아니라, 어쩌면 소진되어 버린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점심시간을 쪼개어 미술관의 고요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도심 속 사찰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 문화센터에서 향을 피우고 차를 내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짧지만 강렬한 1시간의 일탈, '정신적 이완'을 향한 현대인들의 조용한 엑소더스(Exodus)가 시작되었다.트렌드의 변화는 늘 사람들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변한 기저에는 현대 사회의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짙게 깔려 있다.2025년 12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5 직장인 점심식사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현재 평균 1시간인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으로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64.2%)”고 답했으며, 점심시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단순한 식사가 아닌 “업무 스트레스 해소(59.2%)”로 꼽았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의 영향도 있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점심 식사 비용과 시간을 줄여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 하며,간편식으로 10분 만에 끼니를 때우고 남은 50분을 온전히 자신의 정신을 환기하는 데에 투자하는 이른바 '런치케이션(Lunch+Vacation)' 트렌드가 숫자로도 명확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니 점심시간은 온종일 쏟아지는 이메일, 메신저의 알림음, 상사의 지시와 거래처의 압박 속에서 쉴 새 없이 각성 상태를 유지했던 우리의 뇌에 중간 휴식을 제공하는 신박한 시간인 셈이다.교감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된 이 긴장의 끈을 잠시라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오후의 시간은 그저 버텨내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직장인들에게 정오의 1시간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하는 마음의 산소 호흡기가 되었다.가장 눈에 띄는 산소 호흡기 제공 기관은 미술관이다. 업무로 지쳐버린 차가운 이성을 녹이는 예술의 온도를 찾아 직장인들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 미술관은 주말에나 시간을 내어 큰맘 먹고 가는 특별한 나들이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 미술관은 직장인들의 훌륭한 점심 아지트로 변모했다.* AI생성 이미지국내 미술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26년 4월 8일부터 6월 10일까지 ‘일상 속 예술, 그리고 예술가’를 주제로 ‘아트 앤 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도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마지막 수요일 12시에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에 신청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이 프로그램은 직장인과 성인을 대상으로 점심시간(1시간) 동안 큐레이터,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들의 전시 해석 강연을 듣는 형태이며, 참가자들에게는 커피와 빵 등 간단한 점심 도시락이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적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는데, 2015년부터는 기획 전시나 소장품과 연계하여 미술관이 지닌 콘텐츠를 다양한 워크숍과 퍼포먼스, 토크 등의 형태로 선보여 왔으며, 각 프로그램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제공되고 있다.본관을 포함해서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등 다양한 곳에서 한 해에 6차례 정도 진행되는데, 프로그램은 예고 없이 공지가 올라와도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사비나미술관 역시 직장인과 일반인을 위한 특별한 '런치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최소 5인 이상이 모이면 신청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마치고 전문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실을 거니는 코스다. 큐레이터의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따라 캔버스 위의 색채와 질감에 집중하는 순간, 직장인들은 완벽한 현실 분리를 경험한다. 숫자와 텍스트로 가득했던 좌뇌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감각과 직관이 살아 숨 쉬는 우뇌를 깨우는 것이다.최근 전북 완주의 ‘복합문화지구 누에(Nu-e)’에서 시작한 '12시의 미술관'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며 큐레이터와 작가의 해설을 듣는 직장인 대상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심리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운영은 4월부터 12월까지로, 1인 11,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예술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굳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치고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적 이완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시간 동안의 몰입도 높은 미술 감상은 우리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를 약 22%나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한다. 예술이 주는 심미적 경험이 단순한 감정적 사치를 넘어, 실질적인 신경학적 치유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증거다.전시장 특유의 약간 서늘하고 쾌적한 공기, 발소리를 흡수하는 카펫, 캔버스에만 오롯이 집중된 따뜻한 조명. 이 모든 공간적 장치들은 문밖의 치열한 경쟁 사회와 나를 차단하는 포근한 방음벽이 되어준다. 점심시간 쪼개기 관람을 마친 직장인의 얼굴이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처방전이 만들어낸 조용한 기적이기도 하다.딱딱한 회의실 의자가 아닌, 부드러운 조명이 내리쬐는 갤러리에 앉아 예술가의 세계관을 듣고 있노라면, 오전 내내 머릿속을 짓누르던 실적 압박이나 보고서의 압박은 서서히 증발한다.문화예술의 영역은 넓으니, 굳이 미술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세종라운지에서는 매월 금요일 점심시간 30분(12시 20분~12시 50분)을 이용한 무료공연인 '런치타임 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서울시합창단과 시민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유명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구성되며, 각 회 차별 4명 이내로 구성된 서울시합창단 단원들의 독·중창 무대로 진행된다.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는 이색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클래식 앙상블의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오후의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카페인을 들이켜는 대신, 모차르트나 바흐의 선율로 지친 뇌파를 다독이는 것이다.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풍경도 달라졌다. 과거 주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화센터 평일 낮 시간대에, 최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원데이 클래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2시부터 1시 사이, 캘리그라피를 하며 먹물의 농담에 집중하거나, 차(茶)를 내리며 다도(茶道)의 정갈함을 배우고, 혹은 흙을 빚어 작은 도자기를 만든다. 손끝의 감각에 몰입하는 이러한 활동들은 복잡한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지금, 여기'의 순간에만 머무르게 하는 일종의 능동적 명상과 같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무용(無用)해 보이는 아름다운 행위에 시간을 쏟음으로써 직장인들은 역설적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과거 우리는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으며 점심시간조차 아껴 일하는 것을 성공의 지름길이라 여겼다.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모습은 바쁘고 유능한 현대인의 표상처럼 소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끝없이 소모되기만 하는 기계적인 질주는 결국 번아웃이라는 치명적인 고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점심시간, 미술관의 그림 앞에 서거나 사찰의 처마 밑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는 “피곤하게 점심시간까지 무언가를 하느냐?”고 묻거나, “잠깐의 현실 도피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오후의 치열한 전쟁터로 다시 담담하게 걸어 들어가기 위해, 깨진 마음의 조각들을 단단하게 이어 붙이는 가장 치열하고 고귀한 자기회복의 시간이다.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막을 걷고 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는 목을 축이고 잠시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오아시스다. 빌딩 숲 한가운데, 하루 중 가장 태양이 높게 뜨는 정오의 시간. 예술과 문화라는 이름의 오아시스가 우리 곁에 있다.오늘 여러분의 점심시간은 어땠는가? 만약 남은 오후를 버텨낼 마음의 연료가 바닥났다고 느껴진다면, 내일 12시에는 잠시 사원증을 벗어두고 나만의 정신적 이완을 위한 피난처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캔버스 속 붓 터치가, 귓가를 만지는 음률이 당신을 다시 온전한 '당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12시의 오아시스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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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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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12]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등장_합성소비자

칼럼을 쓰려면 그래도 최근 조사업계의 동향이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 국내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관련 사이트를 둘러 보는 편이다.그런데 작년 여름경부터 일본 업계 사이트에서 ‘가상소비자’라는 단어가 가끔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합성소비자’라는 번역어로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었다.번역어가 합성소비자이든 가상소비자이든 영어의 ‘Synthetic Consumer’는, 말 그대로 실제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소비자를 뜻한다(이하 합성소비자). * AI 생성 이미지이 합성소비자는 설문에 답하고, 제품 콘셉트를 평가하고, 광고 문구를 비교하며, 때로는 인터뷰 응답까지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사에 참여하는 디지털 소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이 용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조사는 늘 빠르고, 싸고, 정확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구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 그런데 합성소비자는 이 오래된 딜레마에 새로운 해법처럼 등장했다. 조사 기간을 며칠에서 몇 분으로 줄이고, 패널 모집과 응답률 문제를 완화하며, 반복 테스트 비용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응답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의 합성소비자는 전통 조사를 무너뜨리는 존재라기보다, 조사를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도구에 가깝다.신제품 출시를 앞둔 기업의 회의실. 타겟 고객인 '친환경에 관심이 많고 가격에 민감한 20대 사회초년생'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실무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이전이라면 설문지를 설계하고, 수백 명의 패널을 모으고, FGD을 진행하느라 수 주일의 시간과 큰 비용을 썼을 것이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담당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단 몇 시간 만에 1,000여 명의 가상 고객들이 신제품에 대해 토론하고, 가격 저항선을 평가하며, 심지어 제품 패키징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까지 리포트로 쏟아낸다.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는 이미 글로벌 시장조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바로 합성소비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마케팅이나 조사업계에 종사한다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기존의 페르소나라면 “30대 직장인 A씨, 주말에는 캠핑을 즐기며 가성비를 중시함”, “30대 워킹맘”, “가격 민감한 20대 남성”처럼 타깃을 설명하는 프로필에 머문다.반면 합성소비자는 그 프로필을 바탕으로 실제 응답처럼 답을 생성하고, 문항 간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우에 따라 개방형 의견까지 내놓는다. 합성소비자는 살아 숨 쉬는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대언어모델(LLM)과 방대한 실제 소비자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합성소비자는 나이, 성별, 거주지와 같은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가치관, 취향과 같은 심리적 특성과 정치적 성향, 소비 패턴까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그러므로 합성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B 테스트에서, 실제 인간처럼 특정 색상에 호감을 보이기도 하고,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장바구니에서 제품을 빼버리는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나 막대한 조사 비용의 장벽 없이도, 무한대에 가까운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서버 속의 완벽한 실험실'이 탄생한 셈이다.쉽게 말하면, 합성소비자는 설명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응답하는 캐릭터이니 조사업계에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어떤 브랜드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이 제품이 어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지, 어떤 문구가 먹히는지, 어느 정도 가격이 수용 가능한지를 빠르게 검토하는 데 사용된다. 중요한 점은 합성소비자가 조사 전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탐색과 반복 검증을 매우 빠르게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합성소비자가 최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속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사에서는 설문 설계, 표본 모집, 필드 운영, 데이터 정제, 분석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합성소비자를 이용한 잘 설계된 모델을 이용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아이디어가 여러 개일 때, 어느 방향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걸러내는 데 유용하다.두 번째 이유는 비용이다. 반복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컨셉 테스트나 메시지 테스트에서 비용 부담은 매우 크다. 합성소비자는 이 중 일부를 먼저 처리해 줌으로써 전체 프로젝트 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접근성이다. 모집이 어려운 고소득층, 특정 직업군, 희소한 소비층, 혹은 특정 언어권 응답자처럼 잡기 힘든 대상에 대해 빠르게 예비 반응을 볼 수 있다. 합성소비자를 활용하면 이런 장점이 있으니 최근 국내외 조사기관에서는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미국에서는 대형 조사 플랫폼과 AI 기업이 결합하면서 하이브리드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Qualtrics의 Edge Audiences는 공개 데이터와 자사 경험 데이터, 예측 분석을 결합해 특정 인구집단의 응답을 합성한다. 이 서비스는 디자인 테스트, 도달하기 어려운 타깃 조사, 아이디어 검증 등에 활용되며, 기존 조사 플랫폼 안에 합성 응답을 직접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유럽에서는 합성 응답의 정확도와 적용 범위를 더 신중하게 보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시장조사에선 항상 현실 데이터와의 비교 검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합성 결과도 실제 패널과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그래서 유럽 쪽 논의는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보다는 “어떤 과제에서 현실의 조사와 잘 결합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추고 있는 편이다.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른 실무 적용에 관심이 커 보인다. 특히 다국어 환경과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시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선별하는 용도로 합성소비자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Toluna가 15개 시장과 9개 언어로 합성 페르소나를 확장한 것도 이런 다국어·다시장 수요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는 조직을 중심으로 ‘예비 테스트용 AI 응답’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다.합성소비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회사 중 하나는 Toluna일 것이다. Toluna는 2025년 HarmonAIze Personas를 발표하며 합성 응답자 솔루션을 공개했고, 이후 2025년 10월에는 100만 개가 넘는 합성 페르소나를 15개 시장, 9개 언어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Toluna의 특징은 자사 커뮤니티와 패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별 응답자 수준의 합성 페르소나를 만들고, 이를 단순한 평균 응답이 아니라 개별적 소비자처럼 다룬다는 점이다.Qualtrics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Edge Audiences는 자사 데이터 자산과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합성 응답을 생성하며, 제품 디자인, 타깃 검증, IP 보호, 개념 테스트 등에 활용된다. PureSpectrum과의 연계도 주목할 만한데, 실제 패널과 합성소비자 응답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조사 플랫폼 안에서 바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YouGov는 Yabble을 인수하면서 생성형 AI 기반 인사이트 역량을 강화했다고 한다. 이는 합성소비자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패널 사업자가 AI 기반 조사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밖에 Evidenza, Aaru, Ditto, Simile 같은 스타트업들도 합성 조사 시장에서 자주 거론된다. 이들은 빠른 테스트, 시뮬레이션, 합성 패널 생성 등을 내세우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또 PyMC Labs는 합성 소비자를 실무 가이드 형태로 정리하면서, 가격 테스트·제품 평가·세그먼트 검증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현재 합성소비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서 많이 쓰이는 편이라 할 수 있다.우선 첫째로 아이디어 검증이다. 여러 개의 제품 콘셉트나 광고 메시지를 빠르게 비교해, 무엇이 더 유망한지 선별하는 용도다. 둘째는 컨셉/클레임 테스트다. 포장 문구, 제품 효능, 기능 메시지처럼 고객 반응이 중요한 항목을 미리 점검하는 데 유리하다. 셋째는 희소 타깃 탐색이다. 실제 조사가 어려운 세그먼트의 반응을 예비적으로 확인하는 데 쓰인다고 보면 된다.흥미로운 점은 일부 기업이 합성소비자를 조사 후반부가 아니라 조사 전반부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 소비자 대상 조사 전에 먼저 합성소비자로 수십 개의 아이디어를 좁혀 놓고, 그다음 실제 패널로 다시 정밀 검증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조사 효율이 높아지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빨라진다.물론 합성소비자의 활용은 명확한 한계와 위험성도 존재한다. AI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니 완전히 새로운 혁신 제품에 대한 반응이나, 인간 특유의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선, 미묘한 문화적 뉘앙스를 완벽히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영국의 시장조사협회(MRS)는 이와 관련해서 “더 많은 합성 데이터가 항상 더 나은 통찰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며, 편향된 학습 데이터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과적합(overfitting)'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AI 생성 이미지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합성소비자 활용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런 미래에 대해 많은 조사회사와 리서처들이 조사업계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AI 중심으로 모든 비즈니스 재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합성소비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래서 조사회사가 합성소비자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먼저 관련 기술을 경쟁자로만 보지 말고 조사 체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필요하다. 오히려 리서처의 역량을 한 차원 끌어올릴 가장 강력한 무기로 합성소비자 기술을 활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첫째, 하이브리드 리서치(Hybrid Research)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단순하고 반복적인 A/B 테스트나 초기 아이디어 스크리닝, 제품의 사용성 테스트(UX)는 합성소비자에게 맡겨 속도와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지만,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하는 복잡한 심리 조사, 숨겨진 결핍을 찾는 심층 면접은 철저히 인간 리서처가 담당하는 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합성소비자에게 방향을 묻고, 실제 소비자에게 확신을 얻는 구조가 될 것이다.둘째, '데이터 통역가(Data Interpreter)'로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이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의 가치는 하락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쏟아낸 방대한 결과물 속에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그 결과가 현실의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셋째, 날카로운 '의문력(Questioning Power)'의 내재화가 필요하다.합성소비자에게 훌륭한 대답을 얻으려면 훌륭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은 물론, AI가 내놓은 매끄럽고 그럴싸한 결과물 앞에서도 “왜 이 타겟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 데이터에 숨겨진 편향은 없을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고드는 질문하는 힘이 리서처의 핵심 경쟁력이 되리라 본다.마지막으로, 공감적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합성소비자가 아무리 정교하게 인간을 모방한다 해도, 그들은 타인의 아픔이나 기쁨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기계가 도출한 차가운 인사이트를, 클라이언트와 실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언어로 번역하여 전달하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기술은 거들 뿐, 결국 본질은 사람이다”랄까.합성소비자의 등장은 시장조사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물리적 제약을 없애고, 리서처들로 하여금 인간 행동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해주는 도우미라고 보면 어떨까 한다.가짜 소비자가 진짜 소비자를 흉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업계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통찰과 공감 능력일 것이다. 도구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본질에 집중할 때, 합성소비자는 어쩌면 조사업계의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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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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