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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9] <왕과 사는 남자>로 배우는 공감 언어 능력의 필요

[Research Lounge_9] <왕과 사는 남자>로 배우는 공감 언어 능력의 필요우리는 어떤 것을 가지고 ‘한국 사람’이라는 동질성을 느끼는 걸까?얼마 전 끝난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를 함께 응원하는 모습일 수도, 해외에 나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태극기일 수도, BTS를 보려 해외에서 몰려오는 외국인들을 다룬 기사에서 느끼는 뿌듯함일 수도 있다. 결국, ‘한국 사람인 우리’라는 동질성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회와 문화의 공통적 체험이 아닐까 한다.이 컬럼을 쓰는 지금 우리의 동질성을 아주 흠뻑 느낄 수 있는 공통체험으로 자리한 것이 있다. 바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다.설날 연휴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배우들의 열연과 감동적 스토리, 그리고 학교에서 배웠던 가물가물한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서 전해지는 충격 등이 버무려진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계속 생각나는 한 대사가 있었다. 단종(노산군)이 수양대군을 치러 가기 위해 유배지를 벗어나는 장면에서 엄흥도와 나눈 대화이다. 단종은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자 엄흥도가 이렇게 묻는다.“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아마도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이 대사가 참으로 감명 깊었나 보나. 어느 유력 정치인도 영화 관람 인터뷰에서 “‘저도 포함이 됩니까?’ 이 대목에서 저도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다른 말로 하자면 분명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를 평소 사용하는 언어였다면 ‘저도 거기에 포함됩니까?’일 것이다. 영화를 봤다는 지인 몇 명에게 물어보았는데 위의 정치인처럼 ‘포함’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대사라고 기억하고 있었다.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포함되다’와 ‘그 안에 있다’는 사실 의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단지 ‘포함되다’는 ‘포함하다’가 아닌 수동적 상태를 좀 더 강조하면서, 왠지 공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다시 말해 감정이 포함되지 않은 언어처럼 들린다.이에 반해 ‘그 안에 있다’는 ‘있다’에 방점이 찍혀서, 수동적 상태보다는 능동적 의미의 표현으로 다가온다. 평소에 사용하는 일상어라서 딱딱하거나 공식적인 표현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단어에 액센트를 넣느냐에 따라서도 감정을 실을 수 있는 표현이 된다. 실제로 이 대사를 말하는 유해진 배우의 얼굴을 보면 복잡한 심정을 담아 이 말을 꺼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온갖 감정이 모두 실린 대사인 셈이다.하지만 오늘 컬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이 물음이 아닌, 물음에 대한 답으로 단종이 말하는 대사이다.단종은 엄흥도가 “그 안에 저도 있습니까?”라 묻자, 연민, 고뇌, 슬픔, 고통, 무력함 등을 모두 담은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한다.“그대는… 아닌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대사는 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아마도 “당연하지. 자네도 있네.”라거나, “물론 자네도 있네.”와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물었으니 이에 대해‘YES’라고 밝히는 대답을 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하지만 단종은 대답하지 않는다.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다.단종과 엄흥도는 묻고 답하지 않고, 서로 묻는다. 그 물음에는 이미 모든 답이 있으니 굳이 ‘묻지도 따지도 않아도(?)’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단종과 엄흥도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왕과 촌장이 아닌 인간으로서 두 사람의 대등한 관계, 서로를 아껴주는 관계, 그리고 앞날을 예견하면서 애틋함을 지닌 관계라는 것을 깊게 느끼게 된다.관객들에게 어떤 장면, 어떤 대사보다 큰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두 사람이 나눈 언어의 힘이다. 어떤 언어를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언어가 지닌 공감력의 크기는 차이가 있다.* AI 생성 이미지를 기반으로 작성  대학과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과학적 글쓰기이다. 가능하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애매한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 글쓰기를 늘 염두에 둔다.특히 신경쓰는 것은 가능한 형용사와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숫자를 활용하여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근거를 반드시 밝히려고 애쓴다.감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글쓰기는 일기나 에세이, 소설 등에서는 ‘지향’해야 할지 모르지만, 과학적 글쓰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보고서는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요즘 문득 그렇게 과학적 글쓰기의 신념에 맞게 정돈된 글을 읽다 보면 왠지 ‘너무 차갑기만 하고, 생활의 냄새도 나지 않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지울 수만은 없다.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연구원들은 팩트, 숫자, 객관성이 말해주지 않는 행간의 침묵을 읽어내는 심장도 함께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공감적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의 필요성도 그런 흐름에서 시작되었다.조사회사 연구원의 책상은 대개 차가운 숫자로 가득하다. 시장 점유율의 상승폭, 브랜드 인식도의 변화율, 만족도 점수의 평균값이 결과의 형태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응답자는 사용자이자 소비자이지만, 그 이전에 한 명의 ‘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결국 연구원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정답이라 믿어왔던 수 많은 숫자가 가두어 놓았던 말하는 존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한다.숫자는 현상을 지시할 뿐, 그 현상을 만든 인간의 눈물이나 설렘, 망설임까지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연구원의 능력은 그 침묵하는 숫자들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복원해 내는 것, 즉 ‘타인의 목소리를 해석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복원의 도구는 엑셀 활용 능력보다는, 바로 연구원의 감성적이고 공감적인 언어 사용 능력이 될 것이다. 조사에서 공감 언어 능력이 전략적인 무기가 되는 이유는 조사란 결국 ‘묻고 답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응답자는 기계가 아니기에, 질문의 결에 따라 마음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심층 인터뷰(FGI/IDI) 현장에서 연구원의 공감적 언어는 응답자의 경계심을 허물기도 한다. “귀하의 소비 패턴은 어떠합니까?”라는 건조한 질문보다, “그 제품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라는 공감적 접근은 응답자의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진실을 끌어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응답자와 조사자가 서로 공감하는 상태를 ‘라포르(Rapport)’라고 하는데, 이 공감적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응답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응답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보니 사용자 만족도가 낮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팩트를 서술하면서 “사용자는 이 지점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는  공감적 해석을 붙인다면, 클라이언트는 비로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어디에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재미있는 가상적인 사례를 한번 함께 생각해 보자. 한 가전 기업으로부터 신형 세탁기 사용자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의뢰받은 연구원 최지안은 그동안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의 기대와는 달리, 30대 워킹맘들의 만족도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제품이었지만, 설문조사 결과 수치만으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최지안 연구원은, 응답자들의 개방형 응답에서 언뜻 보았던 ‘오후 4시’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최 연구원은 오후 4시를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뭔가 의미를 지닌 다른 단어로 해석해 보기로 했다. 사용자들에게 오후 4시의 의미가 어떤지 스스로 사용자가 되어 공감해 보기로 한 것이다.주변 워킹맘에게 오후 4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걱정을 하는지, 그리고 만일 본인이 집에 있다면 오후 4시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물었다.그 결과, 워킹맘에게 오후 4시는 퇴근 전 업무가 몰아치면서도 아이의 하교를 걱정해야 하는, 가장 마음이 분주하고 죄책감이 고개를 드는 시간임을 알았다. 사용자의 상황과 공감대가 형성된 순간, 최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보고서 첫 페이지의 문장을 시작했다.“이 제품은 빨래를 깨끗하게 빨아주지만, 오후 4시의 불안함까지 씻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탁 완료 알림’이 아니라, ‘오늘도 수고했다’는 정서적 지지였습니다.”클라이언트는 이 문장에 감동했고, 단순한 기능 개선이 아닌, 감성적 UX 설계라는 새로운 전략을 기획하게 되었다.공감 언어 능력을 갖춘 연구원은 조직과 클라이언트에게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 우선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구원은 분석가인 동시에 작가가 되는, 다시 말해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낼 때, 클라이언트는 보고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될 것이다.공감적 언어는 딱딱한 제안서를 거부할 수 없는 한 편의 이야기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그린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도 그 스토리텔러 연구원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가?”라고.그때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만일 이 물음을 누군가에게서 듣는다면 등을 펴서 자신 있게 “그대는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기를.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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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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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Insight_9]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모순적 트렌드, 텍스트 힙

[Trend Insight_9]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모순적 트렌드, 텍스트 힙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문장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 누군가는 책장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텍스트를 곁에 둔다. 인스타그램의 캡션, 셔츠에 새겨진 짧은 문장, 커피 컵에 프린트된 짧의 시의 구절, 그리고 밈처럼 떠도는 철학자의 한 문장. 읽는 행위는 사라졌지만, 텍스트는 여전히 유행의 한복판에 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의 트렌드로 떠오른 ‘텍스트 힙(text hip)’의 모습이다.텍스트 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멋지다는 뜻의 ‘힙하다’를 합성한 신조어로, Z세대를 중심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멋지고 개성 있는 트렌디한 문화로 향유하는 현상을 의미한다.과거의 힙은 새로운 음악, 낯선 향, 혹은 반짝이는 디지털 감각에 속했다. 하지만 요즘의 힙은 놀랍게도 ‘글자’에 있다. 사람들이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누군가는 책의 밑줄친 문장을 캡처해 올리고, 누군가는 책을 다 읽지 않았어도 일부 문장을 인용한다. 어떤 이는 그저 문장이 예뻐서, 문장이 주는 분위기가 좋아서 책을 사서 소장한다. 필사를 하기도 하고, 도서 전시회에 가서 멋진 문구가 적힌 에코백, T셔츠, 키링과 같은 굿즈를 사기도 한다. * AI 생성 image그렇다. 이제 문장은 더 이상 지식의 통로가 아니라 감각의 장식이 되었다.그래서 텍스트 힙 트렌드는 읽지 않는 시대의 글자 소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통계로 보자면 한국의 독서율은 매년 하락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중 1년간 종이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은 32.3%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은 1년 내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지표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SNS에는 끊임없이 글귀 이미지나 문학적 어구들이 떠돈다.서점은 여전히 문장을 인쇄한 굿즈로 넘쳐나고, 명품 브랜드조차 인용문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이 소비되는 현상. 이 모순은 단순히 ‘읽지 않으면서 지적인 척하는 세태’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텍스트가 지식에서 감성으로, 감성에서 자기표현의 상징으로 이행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예전의 독서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정보를 얻고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텍스트 힙은 ‘누군가와 공감하거나 공명하기’ 위한 루틴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어쩌면 문장을 통해 생각하지 않고, 문장을 통해 분위기를 만드는 듯이.그래서 이 텍스트 힙이라는 문자 속 행간을 풀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그러려면 우선 힙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힙하다’는 말은 원래 ‘남보다 한발 앞선 감각’을 뜻했다. 하지만 요즘의 힙은 조금 어렵게도 ‘나만 알고 있는 듯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감각’이다. 한때는 인디 음악이, 또 어떤 시기엔 빈티지 패션이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짧고 날카로운 텍스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문장은 더 이상 깊이를 통해 매혹하지 않는다. 오히려 짧고 이해하기 쉬운, 그러나 의미심장해 보이는 문장이 힙하다고 평가받는다. 예를 들자면 다음의 문장처럼.“너무 사랑해서 슬프다.”“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아마 사소했던 순간에서.”이 짧은 문장들은 수많은 피드에서 반복된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어딘가 ‘감정의 깊이’를 암시한다.* image by sewonkim from unsplash      사람들은 이 문장들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또 타인을 끌어들인다. 지금 시대의 텍스트는 독해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프레임이다. 그리하여 ‘읽기’보다 ‘공유하기’가 더 중요하다.그럼 왜 우리는 텍스트로 힙해지고 싶은 걸까?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적 이미지는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실제로는 긴 글을 읽을 여유가 없지만, 문장이 주는 인상은 강하다. 어떤 문장들은 무게를 지니고, 사람을 성찰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SNS에서 문장 수집을 하는 행위는, 지식인을 모방하면서도 감성을 연출하는 새로운 자기 연출법이다. 이때의 문장은 정체성의 메이크업이다. 내면의 결핍을 감추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그러니 소비 트렌드의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 힙은 분명 심리적 보상 소비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생각할 시간은 부족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은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장을 품는다. 행간의 의미를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느낌’이니까.텍스트 힙을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의 이미지 소비’의 특징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텍스트를 읽는 대상이 아니라 시각적 대상으로 소비한다. 짧은 캡션, 화면에 떠오르는 한 줄, 영상에 삽입된 문장 자막 등등. 텍스트는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고, 문장은 시각적 요소로 작동한다. 글자를 읽는 행위는 장시간의 이성적 해석의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글자가 이미지로 소비되면 즉각적인 느낌에 투자되는 아주 작은 에너지만이 요구된다.이렇게 텍스트는 보여지는 시각적 언어로 진화했다. 누군가는 예쁜 손글씨로 한 문장을 쓰고, 누군가는 문장 이미지를 스토리에 올린다. 그 행동은 일종의 의식과 같다. 실제로 이해하지 않아도, 문장을 곁에 두는 행위만으로도 위로를 느낀다.이렇게 현대인은 문장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생성하고, 자신을 꾸민다. 이를 위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문장을 통해 설계한다. 문장은 그 사람의 세계관, 취향, 감정의 결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SNS 속 문장은 일종의 감정의 브랜딩, 문장으로 꾸미는 자아가 된다.그래서 각자 추구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텍스트를 선택한다. 촌스럽지 않은 감정노출을 원하는 사람들은 짧은 시구로 마음을 표현한다. 대놓고 “슬프다”고 쓰지 않고, 대신 “어제의 공기가 이상했다.”라고 말한다. 감정의 심도를 유지하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는 방식. 이런 언어의 절제가 ‘힙한 텍스트’의 정체인 셈이다.이 텍스트 힙의 트렌드에는 어쩌면 ‘공감 피로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현대인은 끊임없이 감정을 노출하고 공유하지만, 정작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에는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텍스트 힙의 짧은 문장은 이런 피로감을 우회하여 자신의 감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전달해 준다. 마치 이렇게 호소하듯이.“이 한 문장으로 모든 걸 이해해줘.”그러니 공유되는 텍스트는 타인에게 보내는 간결한 신호이자, 감정을 최소한으로 번역한 언어인 셈이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발신하는 언어들이 상대방에게 읽히기를 원하긴 하지만, 이 언어에 대해 굳이 설명하고 싶다는 마음은 갖지 않는다. 그래서 한마디로 텍스트 힙은 공감 피로 시대의 감정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다.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를, 농축한 한 문장이 사람을 대신해 말해 준다.성인 10명 중 7명이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시대. 지금 우리 사회는 책을 읽는 행위는 줄었지만, 흘러가는 문장은 더 늘어났다. 흥미롭게도, 이런 빠르게 소비되는 문장들이 오히려 더 현대인들에게 의미를 더해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마치 향수의 잔향처럼 짧은 문장이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서 풍요로운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텍스트 힙은 긴 문장을 읽고 문장 속의 담긴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무겁고 진지한 사유의 부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어쩌면 ‘무겁고 진지한 사유’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유를 흉내 내며, 문장을 통해 그 빈틈을 채운다. 아이러니하게도, 텍스트 힙은 사유의 모조품이자 그 갈망의 증거다.많은 사람이 “요즘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들 하지만, 과연 그럴까?사실 우리는 “여전히 생각하고 싶다!”고 이렇게 텍스트 힙을 빌어서라도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긴 글 대신 짧은 문장, 이해 대신 감각, 독서 대신 수집. 텍스트 힙은 어쩌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와 사회가 보여주는 사유의 마지막 흔적이자, 사유의 부재를 슬퍼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자 그럼, 우리는 검은 활자가 가득 채워진 책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걸까?2시간 영화도 2배속으로 보다보니 15분이 넘는 동영상은 시청하기 어려워 숏폼으로 핵심만 쏙쏙 빼먹는 시대. 역시 긴 호흡의 책은 과연 몇 개의 문장으로 대체되고 마는 걸까? 흥미롭게도, 텍스트 힙 덕분에 사람들은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연예인이 읽고 있다는 책에 흥미를 느끼고, 드라마에 나오는 책을 구매하고, 화제가 되는 작가의 한마디를 찾으려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다. SNS에 떠있는 짧은 한 줄의 텍스트를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출처를 찾아보기도 한다.이렇게 밈으로 소비되고 있던 문장이 실제 작품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를 찾아보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읽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그래서 텍스트 힙은 어쩌면 읽기의 회복을 위한 우회로일지도 모른다. 문장을 소유하려는 욕망 끝에서, 우리는 다시 이렇게 텍스트의 생명력을 만난다.책을 읽는 일이 사라져도, 텍스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다만 그 존재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더 이상 텍스트는 깊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각과 이미지로 읽힌다. 어쩌면 이것이 새로운 리터러시일지도 모른다.바로 ‘문장을 통해 사유하지 않아도, 문장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감각’이라는 리터러시.그렇게 텍스트는 여전히 힙하고, 텍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언어 속에서 살고 있고 언어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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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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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국내 뷰티 소비자 10명 중 4명, 화장품 구매 과정에서 AI 활용

제품 탐색은 AI, 구매는 올리브영…뷰티 소비 여정 변화[더케이뷰티사이언스] 국내 뷰티 소비자 가운데 약 10명 중 4명은 화장품 구매 과정에서 대화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 추천보다는 성분과 기능 정보를 정리하고 비교하는 ‘지능형 검색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소비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데이터 수집 플랫폼 픽플리(Pickply)가 조사연구컨설팅 기업 올림(OLIM)과 함께 발표한 ‘2026년 1분기 뷰티 산업 소비 여정 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 뷰티 제품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 2,000명 가운데 37.5%가 구매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ChatGPT 이용률 63.7%AI 서비스 가운데에서는 ChatGPT 이용률이 63.7%로 가장 높았고, 구글 제미나이(Google Gemini)가 25.8%로 뒤를 이었다. 소비자들이 AI에 기대하는 기능은 상황에 맞는 제품 추천(27.7%), 성분·기능·효과 정보 제공(19.9%), 예산 범위 내 제품 추천(17.5%) 순으로 나타났다.구매 빈도와 AI 활용률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도 확인됐다. 최근 3개월 동안 5회 이상 뷰티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AI 활용률은 45.7%였다. 반면 1회 구매 소비자는 24.7%에 그쳤다. 구매 경험이 많을수록 제품 비교와 정보 탐색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AI를 정보 필터링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이번 조사 결과는 뷰티 소비 구조에서 ‘AI 기반 정보 탐색 → 온·오프라인 구매’로 이어지는 새로운 소비 여정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SNS 콘텐츠와 커뮤니티 리뷰가 제품 탐색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AI가 성분과 효능 정보를 정리하는 새로운 소비 접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2030 여성, 가장 적극적인 뷰티 소비층성별·연령별 소비 행태를 보면 2030 여성은 가장 적극적인 뷰티 소비층으로 나타났다. 최근 3개월 동안 5회 이상 제품을 구매한 비율이 34.7%였고 소비 금액은 10~20만 원대(29.0%)가 가장 높았다. 이들은 스킨케어(52.9%)와 메이크업(36.2%)을 함께 소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4050 여성은 구매 빈도보다는 지출 규모가 큰 특징을 보였다. 20만~50만 원 미만 소비 비중이 22.0%로 다른 집단보다 높았으며 스킨케어 제품 비중(55.2%)이 가장 높았다.남성 소비자는 전반적으로 스킨케어 중심의 실용 소비가 나타났다. 2030 남성은 스킨케어 비중이 70.8%로 가장 높았고 소비 금액은 5~10만 원대(37.0%)가 많았다. 4050 남성 역시 스킨케어(59.4%)가 주력 품목이었지만 바디·헤어 제품 비중(33.4%)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뷰티 디바이스 정보 탐색 단계유튜브서 뷰티 디바이스 정보 탐색 제품군별 구매 여정을 분석한 결과,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시장에서는 올리브영의 채널 지배력이 두드러졌다.스킨케어 제품의 정보 탐색 단계에서 온라인 올리브영은 30.6%, 오프라인 올리브영은 68.9%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실제 구매 단계에서도 온라인 31.5%, 오프라인 69.8%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스킨케어 구매의 출발점은 대부분 ‘구매할 때가 되어서’라는 응답(64.8%)이었다.메이크업 제품 역시 올리브영 중심 구조가 이어졌다. 온라인 구매 채널에서는 올리브영이 42.4%, 오프라인에서는 72.2%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다만 제품 인지 과정에서는 SNS 영향력이 더 크게 나타났다. SNS 및 광고 콘텐츠 노출을 통한 인지 비중은 37.9%였으며 유튜브(38.3%)와 인스타그램(30.3%)이 주요 채널로 조사됐다.반면 바디·헤어 및 뷰티 잡화 제품은 채널 구조가 분산된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 정보 탐색에서는 네이버 검색(20.1%), 쿠팡(16.4%), 올리브영(14.6%), 네이버 쇼핑(14.2%) 순이었다. 실제 온라인 구매에서는 네이버 쇼핑(32.5%)과 쿠팡(21.9%)이 1·2위를 차지했고 올리브영은 11.4%로 3위에 머물렀다. 가격 비교와 배송 편의성이 중요한 실용 소비재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뷰티 디바이스는 다른 제품군과 달리 고관여 소비 특성이 나타났다. 인지 단계에서는 인스타그램(58.3%)의 영향력이 가장 컸고 지인 추천 비중도 18.2%로 높았다. 정보 탐색 단계에서는 유튜브(25.8%)가 주요 채널로 나타났으며 구매 단계에서는 네이버 쇼핑(28.6%)과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25.0%)가 주요 경로로 조사됐다.출처 : 더케이뷰티사이언스(주)국내 뷰티 소비자 10명 중 4명, 화장품 구매 과정에서 AI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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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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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Lounge_8] 리서처가 마주하는 거대한 모자이크, 데이터 파편화

[Research Lounge_8] 리서처가 마주하는 거대한 모자이크, 데이터 파편화오후 2시, 사무실은 건조한 히터 바람과 타자 소리로 가득 찼다. 입사 4년 차, 강민우 대리는 자신의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직함은 ‘시니어 리서처’였지만, 민우는 스스로를 디지털 고물상이라 불렀다.“대리님, A사 화장품 프로젝트 데이터 다 통합(merge)됐어요?” 옆자리의 신입, 지은 씨가 해맑게 물었다. 민우는 얼굴을 한번 쓱 문지르고는 대답했다. “지은 씨, 데이터는 통합되는 게 아니야. 그냥 접착제로 억지로 붙여놓는 거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로.”이번 조사의 클라이언트는 2030 여성 대상의 코스메틱 브랜드. 그들의 요구는 심플했다.“고객이 우리 제품을 인지하고 구매하기까지의 완벽한 여정(customer journey map)을 그려주세요.”문제는 그 여정이 고속도로가 아니라, 폭격 맞은 비포장도로처럼 끊겨 있다는 점이었다. 민우는 한숨을 쉬며 엑셀 파일을 열었다.민우의 모니터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세계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지긋지긋한 ‘데이터 파편화’의 실체였다.[세계 1: 설문조사 속의 김지영] 설문조사 결과 파일 속 소비자 김지영(가명, 28세) 씨는 매우 이성적이었다. 그녀는 구매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친환경 성분’과 ‘기업의 윤리’를 꼽았다. 텍스트만 보면 그녀는 완벽한 개념 소비자였다.[세계 2: 검색 데이터 속의 김지영] 하지만 검색 키워드 분석 툴이 보여주는 김지영 씨는 딴판이었다. 성분이나 윤리는 순위권 밖이었다. 압도적 1위는 ‘올영 세일 추천템’, 2위는 ‘000 토너 1+1’, 3위는 ‘좁쌀 여드름 박멸’이었다. 여기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격에 민감하며, 즉각적인 효능을 갈구하는 소비자였다.[세계 3: 행동 데이터 속의 김지영] 마지막으로 자사 몰 로그 데이터의 김지영 씨는 또 달랐다. 그녀는 새벽 2시에 비회원으로 접속해 결제했다. 쿠키가 만료되어 그녀가 아까 그 설문조사의 김지영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 AI 생성 결과를 수정한 이미지  “이봐, 강 대리.” 팀장인 박 부장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거 ‘싱글 뷰(Single View)’로 쫙 뽑히지? 인스타에서 보고, 네이버 검색하고, 앱에서 산 거 한 줄로 꿰어서.”민우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부장님, 그건 유니콘 같은 겁니다. 인스타의 김지영과 네이버의 김지영을 연결하려면 주민등록번호라도 받아야 해요. 지금은 그냥 다 다른 사람 취급이라고요.” “에이, 전문가가 왜 그래? 비식별 결합 기술 있잖아. 그럴듯하게 연결해 봐. ‘추정’이라고 각주 달고.”박 부장은 ‘그럴듯하게’라는 폭탄을 던지고 사라졌다. 민우는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읊조렸다. “데이터가 파편화된 게 아니라, 내 멘탈이 파편화되고 있군.”야근은 필연적이었다. 서베이와 검색, 그리고 행동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메우는 건 과학이라기보단 문학에 가까웠다.민우는 파편화된 데이터를 억지로 기워 맞추며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소비자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나, 고물가로 인해 ‘할인’이라는 자극이 주어질 때만 지갑을 엽니다.”사실은 그냥 싸니까 산 거겠지만, 보고서엔 그렇게 쓸 수 없었다.가장 큰 골칫덩어리는 숏폼이었다. 틱톡과 릴스 데이터는 API 제한으로 긁어올 수가 없었다. 민우는 영상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며 엑셀에 수기로 태그를 달았다. [영상 1: 표정 밝음 / "개꿀"] [영상 2: 찌푸림 / "별로"]최첨단 AI 시대를 사는 데이터 연구원이, 모니터 앞에서 원시인처럼 표정 읽기를 하고 있다니. 데이터는 흩뿌려진 별가루 같았고, 민우는 빗자루도 없이 맨손으로 그걸 쓸어 담고 있었다.프레젠테이션 당일. 클라이언트 마케팅팀장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여성이었다. “저기, 연구원님. 자사 몰 장바구니 이탈률이 70%인데, 보고서엔 이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고 다시 돌아온다고 돼 있네요? 근거가 뭐죠?”민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보고서의 내용은 부장님 말대로 추정한 것이었으니까. “아, 그건… 데이터 파편화로 직접 추적이 어려운 구간이라, 검색량과 조회수로 시계열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는 아니잖아요?”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때 팀장이 덧붙였다.“제 조카 보니까 SNS에서 보고 카톡 선물하기로 사달라고 조르던데, 그런 건 데이터 어디에 있어요?”민우는 쓴웃음을 삼켰다. 카카오톡이나 DM 같은 사적인 채널은 분석가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이다. 그는 솔직해지기로 했다.“팀장님, 맞습니다. 현재 데이터 환경에선 그 사각지대를 볼 수 없습니다. 저희는 흩어진 뼈조각으로 공룡을 복원하는 고고학자와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파편화된 채널 속에서 고객들이 엄청난 정보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 팀장이 피식 웃었다. “사각지대라…. 우리가 뭘 모르는지를 아는 것도 결과긴 하죠. 알겠습니다.”프로젝트는 무사히(?) 끝났다. 자리로 돌아온 민우에게 새 메일이 와 있었다. Z세대 남성의 편의점 하이볼 구매 요인 분석을 부탁하는.민우는 허탈하게 웃으며 새 탭을 열었다. “이번엔 커뮤니티를 뒤져야 하나, 편의점 POS 데이터를 사야 하나.”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완벽한 Z세대 남성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디시인사이드의 익명 유저와 편의점 포인트 적립 안 하고 나가는 쿨한 손님 사이의 연결고리는 영원히 미지수일 테니까.어쩌면 아침엔 직장인, 밤엔 익명의 악플러, 주말엔 효자가 되는 우리네 삶 자체가 이미 산산이 조각난 파편일지도 모른다.“지은 씨, 엑셀 켜. 하이볼 마시는 유령들 잡으러 가보자.” 민우의 손가락이 다시 춤추듯 Alt + Tab을 눌렀다. 수많은 데이터 조각이 그의 안경알 위로 쏟아져 내렸다.소설처럼 그려본 어느 조사회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습이 반드시 소설 속의, 그러니까 가상의 모습뿐인 것은 아니다.현대 리서치 시장에서 연구원의 책상은 예전보다 훨씬 분주해졌다. 과거에는 설문조사 데이터(survey data) 하나만 잘 분석해도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냈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엑셀 시트뿐만 아니라, 로그 데이터, 소셜 리스닝 결과, 카드 결제 내역, 그리고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비정형 데이터까지. 넘쳐나는 정보에 정작 진실을 보기에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어려움은 ‘데이터 파편화’가 만들어 놓은 산물이다.데이터 파편화는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맥락의 단절을 의미한다. 조사 대상자의 움직임을 볼 수 엿볼 수 있는 각종 플랫폼의 정보는 분산되어 있고, 서로 형식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성 데이터의 언어도 서로 다르다. 게다가 실시간 트렌드 데이터와 분기별 추적 조사 데이터 간의 시차도 발생한다.푸드 업계의 조사를 담당하는 A 대리는 “설문조사에서는 80%가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을 사겠다’고 답했는데, 실제 이커머스 매출 데이터에서는 저가형 비친환경 제품이 완판되었네. 과연 무엇이 진짜 소비자의 마음일까?”를 고민한다.플랫폼 담당 B 팀장은 “앱 로그 데이터를 보면 체류 시간이 길어 긍정적인 줄 알았는데, CS 데이터를 보니 인터페이스가 불편해서 헤매고 있던 것일 뿐이었네. 파편화된 수치만 믿었다가 큰일 날 뻔했군.”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처럼 데이터가 조각나 있을 때, 연구원은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 전체를 설명해야 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술이 아닌 사람, 그러니까 리서치 연구원의 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 파편화는 연구원에게 세 가지 심리적 압박을 준다.우선 완전성에 대한 집착과 불안이다. “내가 보지 못한 데이터에 결정적인 단서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은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완벽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것 같은 공포를 야기한다.확증 편향의 유혹도 있을 것이다. 파편화된 데이터 중 내 가설에 유리한 조각들만 골라 맞추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면, 객관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가장 문제는 번아웃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데이터를 맞추어 나가는 작업은 시간과 땀과 눈물을 요구한다. 이렇게 피로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연구원의 창의적 에너지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그래서 연구원은 자신을 ‘데이터 큐레이터(curator)’라고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이제 파편화된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단순한 분석가(analyzer)를 넘어서, 그 조각들 사이의 연결고리(context)를 찾아내는 큐레이터라고 생각해 보자.데이터가 왜 파편화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고, 누락된 데이터가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파편화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일 테니, 이에 대한 이해의 힘을 이르는 인문학적 소양도 가져야 한다.그래서 이런 데이터 파편화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써 말이다.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통일된 데이터는 차별화된 통찰을 주지 못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데이터 조각들을 나만의 시각으로 엮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때, 연구원의 가치는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과연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리고 중간중간 구멍이 난 세상의 데이터를 하나로 그러모아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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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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