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과 소식

올림은 무엇을 고민하는지 올림의 생각을 전합니다

컬럼과 소식 카테고리

53
게시물 검색
[Trend Insight_18] 낡은 시간의 무덤에서 피어난 힙한 유토피아_동묘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예전에는 뻔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박스를 깔고 앉은 어르신들, 산더미처럼 쌓인 낡은 옷가지, 그리고 “골라 골라, 무조건 오천 원!”을 외치는 투박한 목소리. 젊은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거리였다. 그런데 요즘의 동묘는 다르다. 옷더미 옆으로 와이드 팬츠를 입은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나비 자수가 놓인 청바지를 걸치고, 헌팅캡을 눌러쓴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해 골목 한켠에서 포즈를 취한다. 손에는 천 원짜리 토스트와 어쩌면 조금 전 삼천 원에 흥정한 선글라스가 들려 있다.숫자로도 변화는 선명하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5월, 데이트 장소 검색어에서 ‘동묘’가 처음으로 ‘성수’를 앞질렀다. 한때 성수의 절반 수준에 머물던 검색량이 어느 순간 역전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동묘’ 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60만 건을 넘어섰고, “성수보다 동묘”란 말은 이제 밈처럼 퍼지고 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브이로그가 줄지어 올라오고, 사람들은 그 브이로그 속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무언가 달라졌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보여주는 심리적 지형도에 가깝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묘는 탑골공원의 연장선이라 불렸다. 어르신들의 벼룩시장, 혹은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 속 비밀스러운 쇼핑 장소로만 소개되던 공간이었다. 그랬던 곳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세대의 문화 해방구가 되었다. 이 극적인 반전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낡은 골목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단지 값싼 물건 때문이라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이 이미 넘치도록 존재하는 시대에 굳이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화면 너머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셈이다.* AI 생성 이미지먼저 눈에 띄는 변화 하나. 예전 동묘의 상징이었던 가격 흥정이 요즘은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좌판에 가격표가 붙고, 정찰제가 자리 잡으면서 상인과 손님이 침 튀기며 실랑이하던 풍경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몰려든다. 이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동묘를 찾는 이유가 싸게 사는 쾌감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에 더 크게 반응한다. 백화점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상품을 사는 것과 옷더미를 헤집어 브랜드 로고를 찾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신경학적 경험이다. 후자에는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라는 불확실성이 있고, 그 불확실성을 뚫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은 훨씬 강렬할 것이다. 요즘 동묘를 찾는 청년들 사이에서 이 행위는 이미 이름을 얻었다. 게임 용어를 빌려온 ‘파밍(farming)’, 원하는 것을 캐낸다는 뜻의 ‘디깅(digging)’, 혹은 그냥 ‘보물찾기’로 말이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 행위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는 증거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물찾기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경험의 서사화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 돌아간다. “삼천 원에 이런 걸 건졌다!”라는 말은 단순한 득템 후기가 아니라, 자신의 안목과 운, 그리고 노력을 증명하는 하나의 무용담이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예측하고 추천해주는 시대에, 스스로 헤매고 골라내는 경험은 오히려 희소해지고 있는데, 동묘는 그 희소해진 경험을 값싸게 되돌려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된 셈이다.동묘 현상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리커머스(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 원 규모에서 2025년 43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소비자의 심리적 셈법도 정교해졌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꼽은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라는 말은, 소비자가 가격표 뒤에 숨은 가치를 스스로 해독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비싼 것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이 가격에 이 정도 만족이면 합리적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한다.그런데 여기서 사회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서 동묘를 찾는 청년들의 언어를 들어보면 ‘싸다’라는 말보다 ‘힙하다’라는 말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 인터뷰에서 20대 방문객은 “데이트 비용만 저렴한 게 아니라 힙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절약과 자존감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이 세대가 스스로 개발해낸 새로운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과거에는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이 궁핍함의 표시로 여겨질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싸게, 그러나 안목 있게’ 사는 것이 오히려 세련됨의 표시가 되었다. 절약이 부끄러움의 영역에서 자부심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자기 효능감을 지키려는 인간의 매우 건강한 심리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동묘가 힙한 공간으로 떠오른 이유를 이야기할 때, 성수동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수는 지난 몇 년간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팝업스토어의 격전지였다. 브랜드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벽하게 기획된 공간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함이 오히려 피로감을 낳기 시작했다. 모든 공간이 누군가에 의해 세심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는 감각, 내가 발견한 것이 사실은 마케팅팀이 발견하게끔 설계해둔 것이라는 자각이랄까. 이렇게 상업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공간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진짜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작위성의 감각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동묘는 성수가 뿜어내는 일종의 작위성,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이곳은 누구도 기획하지 않았다. 노점상과 청년 셀렉숍 점포가 나란히 존재하고, 지직거리는 트로트 가락 옆에서 힙한 패션의 청년이 옷더미를 뒤진다. 이 무질서함과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동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사람들이 동묘에서 찍은 사진에는 연출의 흔적이 없다. 낡은 간판, 색 바랜 라디오, 백발의 노신사가 우연히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인스타그램 시대의 청년들이 무의식적으로 갈구하는 것, 즉 보정되지 않은 진정성이 담긴 삶의 풍경이다.흥미로운 점은 이 진정성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타인의 존재에서 온다는 점이다. 동묘의 매력을 언급한 방문객들의 인터뷰에는 공통적으로 ‘중장년층과 함께 있다는 감각’이 등장한다. 세대가 분리되지 않은 거리, 노년과 청년이 같은 골목을 걷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정서적 자원이 된다. 우리는 나이대별로, 취향별로, 소비수준별로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 카페는 카페대로, 백화점은 백화점대로 암묵적인 연령 코드가 있다. 그런데 동묘에는 그 경계가 없다. 이 낯선 혼재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동묘에는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소비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고 LP판, 필름 카메라, 낡은 라디오, 옛날식 토스트와 미숫가루.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의 20대가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낡은 사물들 앞에서 향수를 느낀다.이를 심리학에서는 ‘매개된 노스탤지어(mediated nostalgia)’ 혹은 ‘대리 향수’라고 부른다. 직접 겪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도 미디어와 이야기를 통해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 콘텐츠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된 레트로 이미지들이 실제 기억이 없는 세대에게도 그리움의 감정을 이식한 것이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패션 스타일링의 방식이다. 동묘를 찾는 청년들은 정형화된 브랜드 룩이 아니라,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낸다. 나비 자수 청바지에 호피 무늬 상의, 그 위에 헌팅캡. 이것은 어느 매장에서도 세트로 팔지 않는 조합이다. 마치 주어진 재료를 이리저리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일컫는 ‘브리콜라주(bricolage)’와 같은 스타일링 방식이다.알고리즘 기반의 쇼핑 플랫폼은 우리에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끊임없이 예측해 들이민다. 편리하지만, 동시에 이는 개인의 취향을 점점 평균화하고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가두는 효과를 낳는다. 이와 다르게 동묘의 옷더미 앞에서는 어떤 알고리즘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눈과 손으로 골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정체성의 감각을 확인받는다.정말 많은 이유로 동묘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힙한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조금 더 근원적인 사회적 요인을 찾아보자면 역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연이 주는 위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지금 청년 세대는 취업, 주거, 미래 설계 전반에서 극도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감각, 계획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대적 피로감.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우연을 원하게 된다.동묘의 옷더미는 통제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작은 세계다. 무엇을 고를지, 얼마나 오래 뒤질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손에 넣을지, 이런 이 모든 결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작은 결정들이 쌓여 예상치 못한 만족으로 이어질 때, 사람들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효능감을 되찾는다. 커다란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삼천 원짜리 셔츠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안목과 운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 작은 승리들이 모여 하루의 기분을 바꾸고,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조금은 회복시켜준다.동묘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의 이동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고물가 시대의 합리적 소비 심리, 큐레이션된 세계에 대한 피로와 진정성에 대한 갈증, 세대 간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 대한 안도감, 경험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한 대리적 그리움, 알고리즘을 벗어난 자기표현의 욕구, 낯선 동선을 함께 걷는 이들과의 은근한 연대감, 그리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작은 통제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까지.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여러 심리적 흐름이 겹겹이 쌓여 있다.* AI 생성 이미지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편리함을 소비의 최고 가치로 여겨왔다.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물건이 다음 날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 취향마저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주는 시대.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굳이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동묘는 그 편리함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에어컨도 없는 골목에서 땀을 흘리며 옷더미를 뒤지고,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서는 날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느라 잃어버린 무언가—땀 흘려 발견하는 기쁨, 예측할 수 없는 만남, 몸으로 부딪히며 얻는 감각적 경험—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흥미로운 것은 동묘 자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옷더미는 여전히 옷더미고, 토스트는 여전히 천 원이다. 관우를 모신 유서 깊은 사당도,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가락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오히려 이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며, 그 시선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지금 무엇에 지쳐 있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 세대가 열광할 또 다른 동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을지 모른다. 그곳이 어디가 되든,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풍경, 예측할 수 없는 우연, 그리고 그 우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낯선 이웃들. 다음에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나설 일이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낯선 온도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옷더미를 뒤지는 그 손끝에, 어쩌면 우리 시대가 가장 절실히 찾고 있는 것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 관리자
  • 26.07.22
  • 54
[Research Lounge_17] 타인의 삶을 읽어내는 '간접경험'의 마법

요즘 <참교육>이란 드라마가 여러모로 화제다. 글로벌 수준의 인기도 화제이고, 교권보호국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도 화제고, 실제 교육 현장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도 화제다. 이런 화제에 이끌려 드라마의 보게 되었는데, 학부모의 갑질이 에피소드인 편을 보다가 갑자기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애 있어요? 아이는 낳아 봤어요?”라고 했다는 막말이 생각났다.‘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부모 마음을 헤아려 학생들을 교육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의 이 막말은 경험하지 못했으면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아주 오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조사 업계에 입문해 새내기 조사연구원의 때를 벗었다고 생각한 입사 2년 차의 어느 날, 분유 제품 관련 마케팅 조사에 합류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 진행된 회의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클라이언트는 참여 연구원 명단을 보다가 눈을 들어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아직 결혼도 안 한 미혼이라서 육아 경험도 없는데, 분유 제품에 대해 좀 아시나요? 아무래도 이런 조사를 하려면 육아 경험이 있는 연구원이 이해도가 높을 거 같은데.”물론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하는 선배 연구원들은 모두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니 그 자리에서는 그냥 반농담의 분위기로 넘어가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정성조사도 포함되는 프로젝트이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시 육아 경험이 있으면 훨씬 생생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조사결과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무래도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경험을 활용한 장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회의가 끝나고 저녁을 먹다가 선배 한 분에게 회의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난 얼마 전에 기저귀 제품 조사에 참여했잖아. 그때 아무래도 내가 직접 제품을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아서 기저귀를 차고 있었던 적도 있었어. 직접 경험을 해보니 그냥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긴 하더라.”2026년 오늘과는 달리, 1980년대나 1990년의 조사 현장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공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조사연구원 사이의 일종의 기싸움이라고나 할까. 특히 조사 주제나 대상과 관련된 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렵기도 했다. 조사결과의 숫자는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과연 소비자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경험에 기반한 정보와 지식을 조사연구원이 갖추고 있는가를 탐색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았다. 그때 조사연구원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듣던 뼈아픈 피드백 중 하나는 바로 “현실을 모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사연구원의 경험이 없느니 현실을 모를 테고, 그런 연구원이 만든 보고서는 신뢰하기 어려우니 가능하면 경험이 있는 연구원을 투입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그 시절의 기준에서 보면, 조사연구원의 전문성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봤는가’에 더 가까웠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기준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어떤 제품을 쓰고, 어떤 상황을 겪고, 어떤 감정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하지만 2026년의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조사연구원은 정말로 모든 것을 살아본 사람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최근 몇 년 사이, 우리가 다루는 시장은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알콜·저도주 시장을 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술을 안 마시는 선택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여기에는 건강, 자기관리, 사회적 이미지, 관계의 방식까지 다양한 의미가 얽혀 있다.이 시장을 조사할 때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연구원이 더 적합하다”라거나 “실제로 음주 문화를 경험한 연구원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구분은 현실적이지 않다.왜냐면 이 시장은 단순히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OTT 콘텐츠 소비도 마찬가지다.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헤비 유저의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서는 오히려 “왜 끝까지 보지 않는가?”, “왜 추천 콘텐츠를 무시하는가?”, “왜 구독을 해지하는가?”와 같은 비경험 혹은 중단의 경험이 더 중요한 인사이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AI 서비스 역시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용자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용자 사이에는 단순한 사용 빈도의 차이를 넘어, 기술에 대한 신뢰, 통제감, 그리고 자기 효능감에 대한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이때 조사연구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직접 헤비 유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용자 집단의 경험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이해하느냐다.이처럼 오늘날의 시장은 ‘경험의 유무’보다 ‘경험의 해석’이 더 중요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그렇다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현실적으로 조사연구원이 모든 소비자 삶을 살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시니어 시장이나 특정 질환 관련 헬스케어 시장처럼, 생애주기나 신체적 조건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시니어 대상 디지털 서비스 조사를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젊은 연구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화라는 경험 자체를 완전히 체화할 수는 없다. 결국, 조사연구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직접 해보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은 세계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바로 깊고 다정한 ‘간접경험’이 필요하다.그렇다면 노화를 경험하지 못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조사연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간접경험을 쌓고 활용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걸까? *AI생성 이미지우선, 활자 너머의 감정에 접속하는 ‘디지털 인류학자’가 되어보아야 한다. 요즘은 소비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창구가 너무나 많다. 맘카페, 익명 커뮤니티, 브이로그(Vlog),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들은 거대한 인류학적 관찰의 장인 셈이다. 조사연구원은 단순히 ‘어떤 헬스 케어 제품이 많이 언급되는가’를 크롤링(Crawling)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벽 3시에 맘카페에 올라온 “애가 분유를 토하는데 어떡하죠 ㅠㅠ”라는 글을 읽으며, 화면 너머 어머니의 떨리는 손과 초조한 마음을 함께 느껴야 한다. 텍스트 사이에 배어 있는 불안, 기쁨, 안도감을 채집하는 것이 간접경험의 첫걸음이다.두 번째는 일상을 연구실로 만드는 ‘미시적 관찰’을 평소 몸에 익혀야 한다. 마트에 갔을 때 분유 코너에서 엄마들이 분유통을 집어 들고 가장 먼저 어디를 보는지(영양 성분표인지, 원산지인지, 아니면 가격표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검색하며 비교하는지를 조용히 관찰해보자. 때로는 지인의 육아 현장에 방문해 분유를 타는 과정을 지켜보고, 젖병을 흔들 때 손목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물 온도를 맞추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보자. 이러한 미시적 관찰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것 못지않은 강력한 잔상을 남길 것이다.세 번째는 이종(異種) 경험을 결합해 보고 유추하는 연습이다. 분유를 타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지극히 돌보며 애태워본 경험들이 있다. 반려동물이 아파서 밤새 간호하며 가장 좋은 사료를 찾았던 경험, 혹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성분을 꼼꼼히 따져 영양제를 고르던 경험처럼. 결국, 절대적인 사랑과 책임을 담아 누군가의 먹거리를 고르는 마음이라는 본질은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가진 다른 영역의 짙은 경험을 조사 주제에 투영하고 유추하는 능력, 이것이 훌륭한 연구원이 간접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이렇게 쌓여서 활용되는 간접경험은 그럼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이렇게 정성껏 쌓아 올린 간접경험은 그저 연구원의 머릿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보고서라는 결과물에 어떻게 해서든 녹여내야 한다.우선 연구원들은 간접경험을 숫자에 체온을 더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야 한다. 데이터가 “A 브랜드 분유의 물에 잘 녹는 용해도에 대한 만족도가 45%로 1위입니다”라고 말할 때, 간접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이 문장을 그대로 보고서에 쓰겠지만, 간접경험을 깊이 쌓은 연구원은 아마도 다르게 쓸 것이다. 아래의 경우처럼.“새벽 3시, 잠투정하는 아이를 한쪽 팔로 안고 남은 한 손으로 분유를 타야 하는 엄마들에게 용해도는 단순한 기능이 아닙니다. 덩어리진 분유를 흔들어 녹이느라 아이의 울음이 길어지는 1분 1초는 엄마에게 죄책감과 스트레스입니다. A 브랜드는 스르르 녹아내리는 용해도를 통해 새벽 육아의 고단함을 덜어주었고, 이것이 만족도 1위의 진짜 이유입니다.”이렇게 숫자에 소비자의 체온과 땀방울을 더할 때, 조사결과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두 번째로는 조사결과에서 ‘What’을 넘어 ‘Why’를 찾아내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간접경험은 데이터의 이면을 보게 한다. 설문조사에서 유기농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더라도, 실제 매대에서는 가격 할인을 하는 일반 분유가 잘 팔리는 현상(What)을 마주했을 때, 연구원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깊이 이해한 연구원은 그 간극(Why)을 읽어낼 수 있다. 아이에게 최고만 주고 싶은 엄마의 이상과 팍팍한 가계부라는 가장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에 반영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마케팅 전략을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와의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 준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풍부한 간접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원의 언어는 클라이언트의 끄덕임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미혼의 연구원이 만약 소비자의 일상을 꿰뚫어 보는 생생한 묘사와 함께 데이터를 풀어냈다면, 클라이언트 역시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어도, 우리 고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군요!”라며 감탄할 것이다. 결국, 조사결과의 설득력은 연구원이 소비자의 삶에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가를 보여주는 태도에서 완성된다.가끔 조사연구원이란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마치 타인의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내 인생은 하나뿐인데 직업을 통해 매달 새로운 사람의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이번 달에는 이제 막 면허를 딴 20대 대학생의 설렘을 이해해야 하고, 다음 달에는 은퇴 자금을 굴리는 60대 가장의 불안감을 안아야 하며, 그다음 달에는 아이의 작은 발진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초보 엄마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우리가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조사가, 우리의 분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연구원의 진짜 자격은 직접 해본 물리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 필요와 결핍에 깊이 주파수를 맞추는 ‘공감의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직접 경험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조사연구원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경험의 유무를 넘어서는 ‘이해의 기술’이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재구성하고, 검증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로 더 깊이 들어가는 태도.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 살아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삶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런 시대에서 조사연구원의 일은 세상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연결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번역의 출발점은 경험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는 집요한 호기심일 것이다._ 이완정_『외로움의 함정』 저자/(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 관리자
  • 26.07.16
  • 94
[Trend Insight_17] 다시, 띠부씰_어른인 우리가 여전히 봉지를 뜯는 이유

편의점 매대 앞에서 봉지를 슬쩍 눌러보는 손이 있다. 눈은 진열대를 훑고, 손끝은 봉지 속 얇은 스티커 한 장의 두께를 가늠한다. 그 손의 주인은 열 살 아이가 아니다. 서른을 넘긴,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이다. 2026년 상반기, 포켓몬스터 탄생 30주년을 맞아 다시 불붙은 포켓몬빵 열풍 속에서 우리는 낯익은 풍경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부모님을 졸라 빵 하나를 겨우 얻어냈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손으로 카드를 긁어 박스째 사들이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뿐이다.지금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이천 원대에 팔리던 빵 속 스티커 한 장이 몇 만 원, 몇 십만 원을 호가하며 올라와 있다. 인기 있는 뮤츠 띠부씰은 육만 원대, 뮤는 이만 원대, 리자몽은 만 원대에 거래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제품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 숫자들은 단순한 품귀 현상을 넘어, 사람들이 이 작은 스티커 한 장에 얼마나 큰 마음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스페셜 에디션은 포켓몬 오리지널 아트 디렉터의 손길을 담은 백 종의 띠부씰을 랜덤으로 담았고, 함께 출시한 띠부씰북은 예약이 시작된 지 단 일 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서울숲에서 열린 포켓몬 메가페스타 행사장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경찰이 통제에 나설 정도였고, 그 줄의 상당수는 어린이가 아닌 이십 대와 삼십 대였다.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손에 넣으려 한 것은 다름 아닌 카드 한 장, 스티커 한 장이었다.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체 왜, 이 작은 종잇조각 하나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걸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향수다. 지금 삼십 대와 사십 대 초반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포켓몬스터가 처음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던 그 시절을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백 원짜리 뽑기를 돌리던 손끝의 긴장감,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 속상해하던 마음, 친구와 서로의 스티커북을 펼쳐 보이며 부러워하던 오후의 공기까지도. 그 시절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몸 어딘가에 접혀 보관되어 있다가,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매대 앞에 선 순간 조용히 펼쳐진다.흥미로운 것은 이번 30주년 에디션이 이 감정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게임 패키지와 카드 일러스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오리지널 아트워크로 스티커를 채운 것은, 지금의 수집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을 함께 불러오려는 기획이었다. 그리고 이 기획은 정확히 통했다. 사람들은 단지 새로운 캐릭터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 한 페이지를 다시 사는 기분으로 지갑을 열었다. 그야말로 추억이라는 이름의 타임캡슐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AI 생성 이미지여기에 경제력이라는 변수가 더해진다. 그 시절엔 마음뿐이었지 지갑은 얇았다. 엄마 아빠를 붙잡고 빵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게 전부였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번 돈으로 한 박스, 두 박스를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가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작은 해방감이 지갑을 여는 손을 더 가볍게 만든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어른이 된 지금 스스로 채워주는 셈이다. 이는 키덜트 문화 전반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유가 생긴 어른이 자기만의 세계를 다시 짓고, 그 세계 안에서 잠시나마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숨을 고르는 것이다.하지만 향수와 경제력만으로 띠부씰 열기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띠부씰이 가진 힘의 절반은 수집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수백 종의 캐릭터가 무작위로 봉지 안에 숨어 있고, 어떤 것이 걸릴지는 뜯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이 불확실성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끌어당긴다.하나를 얻으면 다음 하나가 궁금해지고, 열 개를 모으면 완성까지 남은 빈칸이 눈에 밟힌다. 도감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가는 그 과정 자체가 작은 성취감을 준다. 오늘 하루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더라도, 스티커북의 빈칸 하나를 채웠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손에 잡히는 성취로 남는다.여기에 희소성이 불을 지핀다. 한정된 시기에만 판매되고, 한 번 단종되면 다시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낳는다. 실제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리셀 시장의 과열은 이 조바심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원가로 따지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스티커가 수만 원, 수십만 원에 거래되는 것은, 그 스티커 자체의 가치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놓쳐 버릴지 몰라!”라는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그리고 이 수집이라는 행위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SNS와 커뮤니티에는 오늘 뽑은 스티커를 자랑하거나, 서로 중복된 스티커를 교환하자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낯선 이와 스티커 한 장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원하는 캐릭터를 손에 넣은 순간을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을 찾는다. 포켓몬이라는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감정으로 연결된다.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포켓몬이 30년 동안 쌓아 올린 IP 생태계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카드, 굿즈를 넘나들며 소비자를 계속해서 그 세계 안에 붙잡아 두었고, 그 결과 포켓몬의 누적 수익은 세계 IP 가운데 최상위권으로 집계될 만큼 거대해졌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결국 스티커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여기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왜 하필 지금, 이렇게 많은 어른이 작은 스티커 한 장에 이토록 마음을 쏟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향수도 있고 수집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 안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결의 마음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외로움이다.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들고, 혼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늘어난 시대다. 함께 웃고 떠들 사람이 곁에 없는 저녁, 손안의 작은 봉지 하나를 뜯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기쁨이 찾아온다. 원하던 캐릭터가 걸렸을 때의 그 짧은 환호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충분히 벅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개인적인 기쁨은 곧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낯선 이들과 이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의 수확을 올리는 순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중복된 스티커를 나누자며 말을 걸어온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들기 어려운 잔잔한 연결이, 이 작은 스티커 한 장을 매개로 스며들듯 생겨나는 것이다.키덜트 문화를 오래 관찰해온 이들은 이 현상의 배경으로 정서적으로 의지할 대상에 대한 갈구를 자주 언급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관계가 얇아진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두렵고, 그 두려움과 부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어린 시절의 상징들을 다시 찾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행위는 어쩌면 그런 마음의 작은 도피처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관계와 성과, 책임으로 가득한 하루 끝에, 규칙이 단순하고 결과가 명확한 이 작은 놀이 안에서만큼은 마음 편히 몰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봉지를 뜯고, 캐릭터를 확인하고, 도감의 빈칸을 채우는 이 반복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를 다독여주는 의식이 된다.디지털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에, 손에 잡히는 종이 한 장이 주는 위안도 무시할 수 없다. 화면 속 알림과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정작 누군가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런 시대에 손끝으로 만지고, 붙였다 뗄 수 있고,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아날로그의 물건 하나가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스티커북을 넘기며 오늘 하루 모은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완성해가고 있다는 감각, 혼자여도 괜찮다는 감각을 조용히 얻는다.결국, 포켓몬 띠부씰 열풍은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 갖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가질 수 있다는 작은 해방감, 빈칸을 채워가는 성취의 기쁨, 그리고 낯선 이들과도 스티커 한 장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은근한 연결감까지. 그 모든 마음의 밑바닥에는 조금 외로운, 그래서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우리의 진짜 얼굴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편의점 매대 앞에서 봉지를 슬쩍 눌러보는 그 손을,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유치한 소비도, 철없는 행동도 아니다. 바쁘고 팍팍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이나마 설렘을 느끼고 싶은 마음, 혼자인 시간을 조금 덜 외롭게 채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릴 적 그 순수했던 감정을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다. 30년 전 그 시절의 우리와, 지금 봉지를 뜯는 우리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스스로 알아채고,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그러니 오늘 저녁, 편의점 매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봉지 하나를 집어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그저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작은 위로 하나를 사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누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 관리자
  • 26.07.08
  • 144
[Research Lounge_16] 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의 문제, 조사회사의 지향점

리서치 라운지 컬럼을 쓰기 위한 정보를 찾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곳들이 있다. ‘일본마케팅리서치협회’가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일본마케팅리서치협회는 마케팅리서치회사가 모여서 마케팅리서치의 건전한 발전과 보급, 윤리 확립을 목표로 1975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이 협회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창립 50주년을 맞아 2025년 추진한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인터넷조사의 미래를 위한 대응’이었고, 이를 위해 ‘인터넷조사품질위원회’를 만들어 대응방안을 모색하여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2026년 1월 “조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인터넷조사 지속가능성 선언(調査の未来を守るために:インターネット調査サステナブル宣言)”이라는 발표자료를 공개했다.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한 배경은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인터넷 조사라고 부르는 온라인 조사의 품질이 저하되는 현재 상황에서 조사회사와 의뢰기업 모두, 품질저하에 조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조사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한때 온라인 조사는 가장 효율적인 조사 방식처럼 보였다. 빠르고, 저렴하고, 넓게 닿을 수 있었다. 응답자는 클릭 몇 번으로 의견을 전했고, 조사회사는 짧은 시간 안에 수백, 수천 개의 데이터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조사를 의뢰한 기업이나 기관도 빠르게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이렇게 시장이 요구한 것은 속도였고, 온라인 조사는 그 요구에 정확히 응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편리함이 오히려 새로운 고민을 낳고 있다. 응답자는 점점 줄어들고, 응답은 점점 가벼워지며, 데이터의 표면은 풍성해 보이는데 그 안의 밀도는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로 인해서 온라인 조사의 품질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조사패널의 규모도 축소되고, 패널 중 1년 이상 유지율도 떨어지고, 게다가 응답률 자체가 낮아지는 통계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통계 결과는 모두 품질저하를 의미하는 숫자가 된다.흔히 온라인 조사의 품질 저하 문제를 단순하게 ‘설문에 성의 없이 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축소하면 품질 저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왜냐하면 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는 조사 환경 전체가 바뀌면서 생긴 구조적 변화에 가깝기 때문이다.온라인 조사 응답률이 낮아지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피로감이다. 예전에는 설문이 비교적 드물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여러 채널에서 수많은 참여 요청을 받는다. 이메일, 문자, 앱 푸시, 커뮤니티, SNS, 패널 플랫폼까지 채널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설문은 일상의 배경음처럼 되어 버렸다. 매번 새롭고 중요해 보이기는 어렵다. 응답자 입장에서는 “이 설문도 결국 비슷하겠지”라는 무심함이 먼저 올라온다.두 번째는 보상의 인플레이션이다. 설문 참여가 하나의 노동으로 인식되면서 보상은 점점 더 강한 유인책이 되어 왔다. 하지만 보상이 커질수록 참여의 질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상만 보고 들어오는 응답자가 늘면, 목적에 대한 이해나 주제에 대한 관심이 약한 상태에서 응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응답률은 잠시 오를 수 있어도 데이터 품질은 떨어질 수 있다.세 번째는 모바일 환경의 습관화된 성급함이다. 대부분의 응답은 스마트폰에서 이뤄지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나지 않는 작업에 쉽게 이탈한다. 길고 복잡한 설문, 반복 질문, 불필요한 서술형 문항은 응답자의 집중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온라인 조사에서는 내용보다 먼저 경험이 평가된다. 설문이 불편하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네 번째는 응답의 진정성 저하다. 응답자들은 설문을 ‘의견을 전달하는 일’보다 ‘빨리 끝내야 하는 과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선적으로 체크하고, 비슷한 문항에는 같은 번호를 반복하며, 중간에 논리적 모순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더 심한 경우에는 자동응답, 중복응답, 성의 없는 랜덤 클릭 같은 문제가 섞인다. 온라인 조사에서 품질 저하는 단순한 불성실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유인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AI생성 이미지이러한 상황에서 조사회사들이 가장 먼저 시도하는 대응은 데이터를 더 많이 모으는 것보다, 덜 망가진 데이터를 가려내는 것이다. 즉, 수집 단계에서의 양적 확대보다 품질 관리 단계가 중요해진다. 대표적인 방법은 주의력 검사 문항, 응답 시간 기준, 직선 응답 패턴 탐지, 중복 식별, 논리 검증 문항 등을 활용해 이상 응답을 걸러내는 것이다. 이는 이제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기본 위생에 가까워졌다.또 하나의 변화는 패널 관리의 정교화다. 예전에는 대규모 패널 DB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패널의 활성을 얼마나 유지하고, 어떤 대상에게 어떤 빈도로, 어떤 조건에서 조사 요청을 보낼지 세밀하게 관리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무조건 많이 보내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응답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세분화하고, 피로 누적을 줄이고, 조사 이력과 참여 성향을 반영해 타게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성이다. 응답자를 하나의 숫자로 보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데이터를 만들어 가는 협력자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조사 요청 빈도를 줄이고, 참여 이력을 존중하며, 응답자의 시간을 귀하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응답 품질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대우받는 방식에 따라 응답한다. 온라인 조사라고 해서 이 원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현장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대응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첫째, 설문을 짧게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 조사에서는 길이가 곧 품질과 직결된다. 꼭 필요한 문항만 남기고, 반복 질문을 줄이며, 응답자의 인지 부담을 최소화하는 설계가 중요하다. 짧은 설문이 반드시 얕은 설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덜 묻고 더 정확하게 묻는 것이 좋은 조사일 수 있다.둘째, 모바일 최적화다. 문항 구조, 버튼 크기, 스크롤 동선, 보기 배열, 진입 설명, 종료 메시지까지 모두 모바일 기준으로 점검해야 한다. 응답자는 조사 플랫폼의 미학보다 사용성을 먼저 체감한다. 특히 작은 화면에서 복잡한 매트릭스 문항은 품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된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문항 하나하나가 응답자의 체력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셋째, 사전 테스트와 파일럿 조사다. 조사 설계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 응답자가 어떤 문항에서 멈추는지, 어떤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디서 흐름이 끊기는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조사의 품질은 파일럿에서 드러나는 작은 불편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넷째, 보상과 참여 동기의 균형이다. 보상은 필요하지만, 보상만 강조하면 설문은 거래로 축소된다. 왜 이 조사가 필요한지, 응답자의 의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참여자는 숫자가 아니라 이유에 반응한다. 설문 앞부분의 초대 문구, 조사 목적 설명, 예상 소요 시간 안내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참여 동기를 설계하는 장치다.다섯째, 품질 필터링의 자동화다. 응답 시간, 응답 일관성, IP·기기 중복, 패턴 이상, 오픈엔드 텍스트의 유사도 등을 점검해 이상치 후보를 자동 분류하는 방식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이 과정은 너무 강하게 적용하면 실제 의견까지 제거할 수 있으므로, 기계적 배제보다 사람의 검토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그렇다면 앞으로 조사회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대응은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더 많이 응답을 받느냐”보다 “어떻게 더 믿을 수 있게 하느냐”다.우선, 조사의 목적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응답자는 자신이 왜 이 설문을 받아야 하는지, 이 조사에 참여하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기업의 내부 필요만 선명하고 응답자 가치가 불분명하면, 설문은 쉽게 피로한 요청으로 전락한다. 조사 목적을 짧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이제 설계의 일부다.둘째, 응답자 중심 설계가 필수다. 문항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질문의 흐름, 보기의 구조, 문장 길이, 용어의 난이도, 중간 이탈 가능성까지 모두 응답자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좋은 설문은 조사자가 하고 싶은 질문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응답자가 무리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짜인 여정이다. 응답자가 길을 잃지 않아야 데이터도 길을 잃지 않는다.셋째, 품질관리 기준을 프로젝트마다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모든 조사에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브랜드 조사, 소비자 태도 조사, B2B 조사, 민감 주제 조사, 긴 추적 조사마다 허용 가능한 응답 패턴이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속도가 중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심층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품질 기준은 일괄 규칙이 아니라 조사 목적에 따른 운영 원칙이어야 한다.넷째, 무응답 편향을 정직하게 다뤄야 한다. 응답률이 낮다고 해서 무조건 실패한 조사는 아니다. 문제는 누가 빠졌는지, 어떤 집단이 응답하지 않았는지, 그로 인해 결과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다. 앞으로의 조사회사는 단순한 응답률 수치가 아니라 무응답 편향을 어떻게 추정하고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 부분은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핵심이다.다섯째, 응답 품질을 올리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조사 초대 메시지, 리마인드 문구, 종료 후 감사 메시지까지 모두가 하나의 경험이다. 사람은 사소한 문장에서도 진정성을 읽는다. 딱딱한 시스템 메시지보다 인간적인 톤, 지나친 압박보다 존중의 언어가 더 좋은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조사 커뮤니케이션은 기능적 문구가 아니라 관계적 언어가 되어야 한다.조사회사 관점에서 실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 목적은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설문은 가능하면 짧게, 불가피하게 길다면 구간별 몰입 장치를 넣어야 한다.- 모바일 화면에서 1분 안에 구조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의력 검사와 논리 검증은 필수지만 과도하게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보상은 참여의 동기이지, 품질의 대체재가 아니다.- 반복 참여자와 신규 참여자를 구분해 운영해야 한다.- 조사 이력과 피로도를 반영한 패널 관리가 필요하다.- 응답률만이 아니라 무응답 편향과 이상 응답 비율도 함께 봐야 한다.- 개방형 문항은 “많이”보다 “정확히 쓸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설문은 조사자가 아닌 응답자의 시간으로 완성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위의 기준들은 단지 운영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온라인 조사라는 도구를 다시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쓰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기도 하다. 품질 관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응답자를 존중하지 않는 설문은 오래가지 못한다.온라인 조사 품질 저하는 기술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의 약화에서 시작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응답자는 더 이상 “무조건 참여해 주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시간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자기 의견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좋은 조사회사는 단순히 설문을 잘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응답자가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조사가 점점 어려워질수록, 조사회사의 역량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능력보다,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의미 있는 데이터를 남기는 능력. 표면적인 응답률보다, 그 안의 진정성을 지키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응답자를 통계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다.온라인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예전처럼 쉽게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법만이 아니다. 사람의 피로를 이해하는 감각, 조사의 품질을 지키려는 집요함, 그리고 데이터를 얻는 일과 관계를 맺는 일이 서로 멀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결국, 좋은 조사는 응답을 많이 받은 설문이 아니라, 응답자가 자신의 시간을 납득하고 남겨 준 설문이다._ 박규상_사회정보학 박사/(주)조사연구컨설팅#올림 전문위원

  • 관리자
  • 26.07.01
  • 160
[언론보도] 인스타로 찾고 쿠팡서 결제… 확 바뀐 식음료 소비 트렌드

픽플리 소비자 2천명 분석 결과, 탐색은 SNS로 분산되나 결제는 특정 이커머스로 집중됐다. AI 쇼핑 비서 활용률도 40%를 돌파했다.국내 소비자들의 식음료(F&B) 구매 패턴이 일상적인 필요에서 출발해 최종 결제는 특정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강력하게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터 트렌드 플랫폼 픽플리는 조사연구컨설팅 기업 올림과 함께 최근 3개월 내 식음료 소비 경험이 있는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식음료 구매 여정을 분석한 결과를 1일 발표했다.세대와 성별에 따라 소비 양상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2030 여성은 월 2에서 3회, 1만 원에서 3만 원대의 소액 반복 결제로 신선식품과 간편식을 고루 구매했다. 반면 4050 여성은 구매 빈도는 비슷하나 1회 지출액이 가장 커 신선식품 중심의 장보기형 소비를 주도했다. 2030 남성은 소액 위주로 간편식에 집중했으며, 4050 남성은 5만 원 이상 고액 지출 비중이 타 집단 대비 높게 나타났다.F&B 소비자의 분기 쇼핑 행태 및 주요 소비 품목 – 2030 여성 (n=768) (사진 제공 - 픽플리)간편식과 즉석식품은 평소 필요해서 구매한다는 응답이 61.9%로 압도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구매 단계에서의 채널 집중 현상이다. 정보 탐색 단계에서 34.4%를 기록한 쿠팡은 실제 구매 단계에서 45.9%로 비중이 크게 뛰었다. 비교와 탐색은 여러 채널에서 하더라도 최종 결제는 익숙한 한 곳에서 마무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신선 및 냉장식품 역시 식재료 비축 목적이 64.8%로 가장 컸다. 이 품목에서도 쿠팡의 점유율은 탐색 단계 43.1%에서 구매 단계 51.5%로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 픽업의 편리성, 교환 및 반품의 용이성을 핵심 선택 기준으로 꼽았다. 신선도가 생명인 만큼 안정적인 물류 인프라가 채널 충성도로 직결된 것이다.최근 3개월 신선·냉장식품 이용 응답자의 제품 구매 시 활용 채널 및 이유 (사진 제공 - 픽플리)간식과 디저트류는 다른 품목과 확연히 다른 분업형 구매 여정을 보였다. 소셜미디어나 광고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응답이 14.1%로 타 품목 대비 두 배 이상 높았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쇼츠 등 시각적 자극이 강한 플랫폼에서 제품을 발견한 뒤, 실제 결제는 커머스 플랫폼으로 이동해 진행하는 패턴이 두드러졌다.음료와 커피, 차 품목은 유튜브 영상과 쇼츠의 광고 영향력이 45.0%에 달해 인스타그램을 압도했다. 박스 단위나 정기 배송이 많은 품목 특성상 가격 비교와 정기배송 옵션이 중요하게 작용했으며, 무거운 부피 탓에 배송 편의성이 뛰어난 쿠팡(46.7%)이 최종 결제 채널로 꼽혔다.최근 3개월 음료·커피·차 등 이용 응답자의 제품 인지 계기 및 광고·콘텐츠 노출 유형 (n=360) (사진 제공 - 픽플리)식음료 쇼핑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트렌드도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3개월 내 식음료 구매 시 대화형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0.7%에 달했다. 주로 챗GPT(55.0%)와 구글 제미나이(39.8%)가 활용되며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특히 식음료 소비 빈도가 높을수록 AI 의존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주 3회 이상 소비하는 집단의 AI 활용률은 65.9%에 달했다. 소비자들은 AI에게 조건에 맞는 제품 추천, 상황별 메뉴 제안, 유사 제품 비교 등을 기대했다. AI가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 복잡한 의사결정을 돕는 맞춤형 큐레이션 비서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F&B 소비 빈도에 따른 AI 활용 여부 및 AI에 기대하는 기능 (사진 제공 - 픽플리)픽플리 관계자는 "앞으로의 식음료 커머스 시장은 AI 기반의 추천 및 비교 기능을 자사 플랫폼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식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이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출처: 코리아스타트업포스트 / 서영준기자https://www.kspost.biz/ko-kr/articles/2678

  • 관리자
  • 26.07.01
  • 156